칼럼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 이대로는 안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필자는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에 환멸을 느낀다. 그 나라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 수준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다. 국민 수준은 높은데 정치인 수준은 낮다. 그렇다면 정치인 수준과 국민 수준의 격차가 생기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당은 괴물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물론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정치인이 올바른 인품의 소유자라야 한다. 하지만 올바른 정치인은 극소수이고 막말이나 국민들이 듣기에 민망한 말들을 합부로 쏟아내는 다 그렇고 그런 정치꾼이 적지 않다. 설사 올바른 정치인이 있다고 해도 정치판에 물들면 동골동태(同骨動態)가 된다.
그건 왜 그런가? 구조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투표는 국민이 선택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정당이 자기들끼리 이해타산에 따라 미리 각본을 만들어 놓은 ‘메뉴’ 중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 선거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 ‘메뉴’가 싫어도 다른 ‘메뉴’가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년 총선 때도 국민들은 입에 맞지 않는 ‘메뉴판’에 올라 온 ‘메뉴’를 보고 선택할 것이 자명하다. 원래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취지는 국민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지도자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며 막연하게 선정해야 할 절차를 간소화 하기 위해 선택하도록 돕는데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당들은 자기들끼리 정치적 흥정을 해서 국민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데서 원래의 대의 민주주의 취지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세장에 가보면 모두 손가락 한 개나 두 개를 펴고 선택하도록 할 뿐 후보자가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학력은 어느 정도이며 어떤 재능을 가졌으며 형벌은 받았는지 받았으면 감옥에는 얼마나 들어가 있었는지 등은 알 길이 없고 오로지 기호 1번 새누리당, 기호 2번 새민연합 하는 식으로 기호만 보고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파렴치한 범법자가 당선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성숙된 미국에서는 우리처럼 출마자가 누구인지 알지고 못하고 손가락 한 개 손가락 두 개로 출마자를 선택하도록 국민에게 요구하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서는 언론이 민주당과 공화당 둘 뿐이지 선거전에서 출마자는 이름만으로 유세를 하고 평가를 받는다.
공인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고 그 사람이 소속된 정당은 그 다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거는 미국과는 정반대다. 그러다보니 국회나 선출직 공직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서 저런 사람이 뽑혔을까’ 할 정도로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파렴치한 범법자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잘못된 정치제도가 빚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지난 5월 보궐선거 때를 보면 패배한 새정치민주연합은 패배의 원인을 ‘공천이 잘못됐다’고 더들어 됐다. 물론 공천이 잘못된 것은 맞다. 이길 수 있는 여건인데도 패했기 때문이다. 왜 공천이 잘못됐는가? 공천을 흥정하는 장사판처럼 몰고 갔기 때문이다. 새민연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천정배 의원의 당선은 잘못된 공천의 대표적인 사례다.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그대로 간다면 내년 총선에서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계파끼리 자리를 나눠 먹는 공천 방식으로는 국민이 제대로 된 인물을 뽑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의식이 국민수준에 맞아야 하고 또한 잘못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천을 둘러싸고 온갖 잡음이 무성하게 잃어날 것은 자명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오래전부터 미국식 예비선거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국식 예비선거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여.야 정당이 경선 과정에서 하고 있는 ‘여론조사’ 대입방식은 민의가 충분히 반영될 수 없다. 조사 대상자 1000명이 어느 한 후보가 모두 찬성했다고 해도 고작 1000명이다. 이런 숫자로 마치 모든 유권자의 의견처럼 판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국민이 선거에 재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출마자의 자질을 충분히 유권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투표장에 나갈 의욕이 생기고 투표율도 상승한다. 내각이긴 하지만 일본은 선거와 투표가 일상생활처럼 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여기에 재미를 느낀다. 따라서 우리도 투표를 생활처럼 바꿀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수준에 맞은 정치인의 의식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