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숭이 탐욕 닮은 인간의 모습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부(富)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인류의 모습을 닮은 원숭이의 탐욕을 연상케 한다. 알제리의 커바(kabyle)일족 농부는 원숭이를 잡기 위해 호리병을 나무에 아주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고 그 안에 쌀을 조금 넣어둔다. 호리병 주둥이의 크기는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 갈 정도이다. 원숭이는 밤에 나무에 와서 손을 집어 넣고는 쌀을 꽉 움켜쥔다. 쌀을 쥔 채로 손을 다시 빼려고 하면 빠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원숭이는 쌀을 도로 놓고 손을 빼낼 지혜가 없다. 그렇게 쌀을 손에 쥔 채로 아침이 될 때까지 그대로 있다가 사람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 작은 이야기가 인간에게는 주는 교훈은 아주 광범위 하게 적용될 수 있다.
경제학 분야의 획기적 저서인 「자본론」을 집필한 ‘칼.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분리되어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제체제이며, 바로 그 때문에 생산력은 향상되나 생산관계가 악화돼 자본주의는 저절로 붕괴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자본주의의 붕괴 과정을 현실적으로 해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마르크스의 예언과 달리 자본주의, 특히 미국의 자본주의는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이 없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이런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대자본가에 의한 독점기업이 생겨나며 이 독점의 경향은 흔히 ‘동맥경화증’ 같은 증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본주의는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 내기도 했지만 반면 우려스런 측면도 없지 않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는 전문가에 의한 합리적인 경영방법 보다는 자본가에 의한 총수 일가의 1인 지배구조에 빠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주식회사의 법인이 가족회사로 변질되어 탈세 등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둘째, 대규모 자본을 가진 기업가는 이익에 대한 지나친 탐욕으로 문어발식 경영으로 기업을 확장함으로써 정당한 「룰」에 의한 자유시장경제를 포기하게 된다. 이로 인해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잠식당하기도 한다. 셋째,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이 분리됨으로써 기업가나 중역도 자신이 고용주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자본가들은 사회공익적 기질을 잃고 개인주의를 사수하려는데 정열을 쏟게 되면서 총수 휘하 계열사간에 일감 몰아주기나 자본이동 형식으로 총수 일가 개인의 치부에 일조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문어발처럼 여러 개로 쪼갠 기업을 거느린 대기업은 총수를 중심으로 가족체제로 기업경영을 하게 된다. 전문성이 없는 족벌경영은 이익을 위해 정경유착이나 분식회계(은익자금 조성) 등 불법 탈법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있는 우려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일정한 지역에서 자급자족할 제품만을 생산했던 과거와 달리 사회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져 간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소외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노동자들은 열심히 생산과정에 참여해도 자신이 만든 생산물을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노동과정이 분업화하면서 한 사람이 맡은 생산과정은 단순, 반복적으로 변하게 되고 이것은 노동의 소외를 더욱 가중시킨다. 또 자본가는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면서 생산량을 늘리려고 한다. 이는 노동자들 간에 치열한 경쟁을 가져오고, 그로 인해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에 의해 소외되기도 한다.
특히 자본가들은 이윤추구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은 항상 뒷전이다. 노동자들에게 주어야 하는 월급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 가급적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대상일 뿐인 것이다. 특히 방대한 자산을 가진 재벌들은 그것도 부족하여 끝없는 인간의 탐욕에 편승하여 더 많은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다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부자나 재벌이 존경받지 못한다면 불행한 사회다. 한줌 부끄러움 없고 깨끗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 인격의 힘은 재산의 힘보다 강하다. 그러므로 재산을 갖기에 앞서 인격의 힘을 키워야 한다. 특히 행동이나 말의 진실성은 의(義)로운 인격의 핵심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