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 순간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함으로써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원만 구족한 상태를 일러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행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뭔가 부족하고 결핍한 불만족의 상태를 일러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순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고요하고 또렷하게 깨어서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마음을 쏟는다면, 무엇이든 뜻하는 바를 이루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욕심을 내서 분에 넘치는 능력 밖의 일을 한다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음도 당연하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으로 인해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하면 화를 내게 된다. 화의 불꽃에 휩싸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끝내 이성을 잃고 어리석어 진다. 욕심은 화를 불러 오고, 화는 어리석음으로 이어지며, 어리석음은 다시 과욕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탐진치(貪瞋痴) 즉,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란 세 가지 독(毒)은 서로 서로를 자양분 삼아 끝없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우리를 불행의 수렁으로 추락하게 한다.
욕심이 없다면 분수 밖의 일에 마음 낼 일이 없다. 분수 밖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실패와 좌절로 화날 일이 없다. 화낼 일 없는 담연한 마음은 고요하면서도 또렷한 까닭에 어리석어 지는 일이 없다. 욕심이 없으니 분수 밖의 것을 탐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고, 상황에 딱 들어맞는 해야 될 일과 인연을 맺게 된다. 뭐든 인연 따라 원만 성취하며 안분자족(安分自足)하게 된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지복(至福)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욕심 없이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매 순간 순간 자기 자신의 현주소를 알지 못한다면, 분수 밖의 욕심에 허덕이고 있는 것인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으르고 소심한 마음으로 주변의 눈치나 보면서 잔뜩 움츠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이 호랑이인 줄도 모르고 여우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여우인줄도 모르고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허세를 부리고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나는 호랑이인가? 아니면 여우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뭣꼬?
[칼럼니스트 방 석영(청원 무이) 프로필]
청주고 및 한국외대 정치외교 및 러시아어 전공.
무심선역원장.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수선모임 지불회 지도법사
기업 및 공무원 연수원, 군교육단, 해양경찰청 및 충북지방경찰청 특강
SBS 청주방송 교양강좌 출연
충청타임즈 시론 칼럼 연재 및 유불선 통섭을 위한 집필 활동 중.
저서 : ‘반야심경 禪解(선해)’, ‘금강경 禪解(선해)’, ‘도마복음 禪解(선해)’, 유불선 통섭을 위한 아다지오 ‘알 수도, 모를 수도 없는’, 수행의 실제와 깨달음의 연금술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