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에 인생의 길이 있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폴레옹은 죽을 때까지 8천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1769년에 태어나 1821년에 사망했으니 이 땅에 산 기간은 52년간이다. 그 동안 8천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니 일 년에 평균 몇 권의 책을 읽은 셈인가? 한 권의 책을 독파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3시간 내지 4시간으로 잡는다면 10만 시간이라 하더라도 일생에 3만여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작 몇 천 권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아무 책이나 무턱대고 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선현들의 경고가 있다. 다독가로 널리 알려진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는 회갑의 나이가 되어 자신이 그때까지 읽은 책을 계산해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자신이 읽은 책의 10분의 1은 사실은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되도록 적게 읽으라’는 역설적인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다만 일회뿐인 삶을 부여한 것은 신(神)의 현명한 처사가 아닌지 모른다. 일회적인 삶이 아니라면 누가 책을 고르려 할 것인가? 두 번 세 번 거듭 살 수 있는 인생이라면
칼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많은 사람은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 산다. 또 예술적 재능을 완성시키려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남을 돕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러닿면 당신은 어떠한가? 자신이 사는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는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정말로 성취감과 만족감을 가져다주는지 알아보자. 성서 전도서 7 : 12을 보면 이러한 말씀이 있다. “돈도 보호가 되고 지혜도 보호가 되지만, 지식이 이로운 점은 지혜가 그 소유자를 살아 있게 보존한다.” 돈은 분명히 가치가 있는 것을 사실이다.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할 입장이라면 특히 그러하다.(디모데 전서 5:8) 그런데 삶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즐거움이 전혀 없다면 어떠할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였지만, 때로는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즐기기도 하였다. 또한 그분은 값비싼 옷을 입기도 하였다.(마태 8:20; 요한 2:1-11; 19:2
칼럼 자연 재해와 인간의 역할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이언스」지에 실린 기후 변화에 관한 사설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뿐인 지구에 통제할 수 없는 대규모 실험을 감행하고 있는 중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연현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허리케인과 같은 심한 폭풍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지구의 기후 체계는 태양 에너지를 변환하여 분배하는 기계에 비할 수 있다. 태양열의 대부분을 열대 지역이 받다 보니 기온의 균형이 맞지 않게 되어 대기가 순환하게 된다. 또한 습기를 머금은 이 움직이는 공기 덩어리에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소용돌이들이 형성되는데, 일부 소용돌이는 저기압 즉 기압이 낮은 부분이 된다. 이러한 저기압이 발전하여 폭풍이 되기도 한다. 열대성 폭풍의 일반적인 진행 경로를 관찰해 보면, 적도에서 북쪽이나 남쪽에 있는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지역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폭풍 역시 거대한 열 교환기 역할을 하여 기후가 온화해지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칼럼 열병을 앓고 있는 지구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지구의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온도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한 사례를 북극권 가까이 있는 알래스카의 누톡이라는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톡은 이전에는 하층토가 얼어 있던 땅 즉 영구 동토로 알려진 곳 위에 건설된 마을인데 지금은 그 땅이 녹고 있다. 그곳 주민인 프랭크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영구 동토 지대에 살고 싶지 않다. 땅이 너무 질척거려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해안 마을은 앞으로 10년 안에 쓸려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기후의 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국제 기후 변화 회의(IPCC)에서는 결론 내렸다. 전 세계적인 기온 상승이 이 점을 입증해 준다.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라고 부르는 현상 때문에 세계 전역에서 가뭄, 폭우 및 폭설, 폭염, 허리케인과 같은 극단적인 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지구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병원에서 입원한 환자의 맥박이나 호흡과 같은 생명 징후를 관찰하는 것처럼, 기후학자들도 지구의 생명 징후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그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빙하를 인공위
칼럼 책은 말 없는 스승이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교육이나 교양의 목적은 지식을 통해 견식을 기르고 행위를 통해 덕을 기르는 데에 있다. 교양 있는 사람이나 이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니 하는 것은 반드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올바르게 아끼고 보호하며 증오할 것은 증오할 줄 아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독서에서 얻어진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 생활에서 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쓸모 없는 지식을 껴안고 동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사려를 동반하지 않는 학식은, 학식을 동반하지 않은 사려보다도 위험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곧 경망하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곧 위태롭다’는 말과 같다. 독서는 지식의 습득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 사색과 사유를 할 수 있는 심성을 기르는 데에 있다.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을 피하고 지식의 보편성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자세에서라야 과학과 사상과 예술이 꽃피는 것이다. 독서는 자기 껍질을 벗고 자기 울타리를 확대해 나가는 작업이다. 육신의 성장을 정신 연령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세상은 온통 어리석음에게
칼럼 민주사회에서 군중의 심리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서 벗어나지 않는데, 한번 당론(黨論)이 갈린 뒤로 조정에서는 오직 언의(言議)의 가부(可否)만을 일로 간주하고 백성의 근심과 나라의 계책은 우선 한쪽에 놓아두고 있으니, 이 어찌 나라를 위해 깊이 생각하는 도리겠는가. 사대부가 조정에 서서 임금을 섬기면서 백성과 만물을 사랑하는 데 뜻을 두었다면 이와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爲國之務. 無出愛民. 而一自黨論歧異之後. 朝廷之上. 惟以言議可否. 看作事業. 而民憂國計. 且置一邊. 是豈體國之道哉. 士大夫立朝事君. 有志於仁民愛物. 不應如此.)” 정조이산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인류의 역사로 보면 인간이 언제부터 정치를 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씨족사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씨족사회란 혈연관계인데 같은 친척들이 모여 사는 소규모 공동체를 뜻한다. 이런 여러 씨족사회가 모여 국가형태의 부족사회로 진일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뭉친 이 부족국가의 통치가 바로 정치의 시작일 것이다. 여기서 제일 강력한 사람을 부족장으로 앉히는데 이 부족장은 후에 군장국가에서 군장에 오
칼럼 미래에 희망이 담긴 성서 예언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도 베드로는 인류와 땅의 미래를 이렇게 말했다. “그분(하느님)의 약속대로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으니, 거기에는 의가 깃들여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3:13) 원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주어졌다. 베드로는 이사야의 그 예언을 인용함으로 당시에는 그 예언이 아직 온전히 성취되지 않았음을 시사하였다. 그 후 기원 96년경에 사도 요한을 통해 주어진 계시록에서는 그 새 땅을 하느님의 나라가 통치할 때 누릴 축복들과 연관 지었다. (계시 21:1-4) 성서 이사야에서 그 점을 알려 준다. 세계적인 평화와 연합된 숭배. “그들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가지 치는 낫을 만들 것이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칼을 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도 않을 것이다.” (이사야 2:2-4.) “이리가 실제로 어린 숫양과 함께 얼마간 거하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갈기 있는 젊은 사자와 잘 먹인 동물이 모두 함께 있을 것인데,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끄는 자가 될 것이다. 암소와 곰이 먹으며, 그
칼럼 귀하의 얼굴은 어디에 해당 되나요?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공자가 제자 안연의 뛰어남을 칭송한 이야기가 있다. 다른 제자인 자로 앞에서 안연의 학문과 덕을 칭송하자 힘이 센 자로가 “그러면 선생님은 군대를 이끌고 싸우러 갈 때는 누구를 데리고 가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는 “맨손으로 호랑이에게 덤벼들거나 큰 강을 도보로 건너고자 하는 무리들과 어떻게 행동을 같이할 수 있겠는가? 면밀히 계획하고 신중하게 실천하는 인간이라야 한다”고 말하며 안연을 칭찬했다. 안연이 죽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쳤구나!”라고 통탄하며 슬퍼했다. 가난하거나 요절할 운명도 팔자에 나타난다. 사람의 얼굴로 운명을 판단하는 관인법이 있다. 귀상(貴相) = 얼굴이 맑고 기품이 있어 보이고 귀티를 타고나 사심이 없어 보인다. 얼굴이 약간 긴 편이며 이마가 발달해 있고 눈썹과 눈이 깨끗하며 턱이 두둑하고 얼굴빛이 해맑은 모양새다. 지능이 뛰어나고 자존심이 강하고 결백해 불의나 부정에 물들지 않는다. 교육자, 공무원, 법관, 의사, 약사로 성공한다. 부상(富相) = 얼굴이 보기에도 복스럽게 생겼고 웃는 상에다가 볼이 풍만하고 턱이 넓적하게 생겼다. 코와
칼럼 인간은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식물은 재배로써, 인간은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교육은 자연, 인간, 혹은 사물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으로써 인간의 능력과 내부의 성장은 자연의 교육이며, 그 사용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인간의 교육이며, 인간을 자극하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경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사물의 교육이다. 그러므로 이를 가르치는 교사의 교육이 모순되지 않고 동일한 묵적을 향할 때 비로소 그 아이는 원만한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 교육도 어떤 가정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어린이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언행을 누구도 일치하게 지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을 하나의 기술로 본다면 교육은 전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겠다. 그것은 성공의 기본적인 조건이 능력 밖에 있으며 모든 노력을 집중해도 목표에 어느 정도 접근 할 뿐이며, 설령 목표에 도달해도 그것은 우연히 얻은 행운인 것이다 그렇다면 목표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의 목표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자연, 인간, 사물 세 가지 교육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 밖에 있는 자연의 교육에 인간, 사물 교육을 일치시켜야 한다.
칼럼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지식의 상징은 책이다. 옛날 유태인 사회에서는 책을 빌려 달라는 데도 그 책을 빌려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벌금이 부과되는 조례가 규정되었다. 또 유대인의 가정에서 침대의 발 쪽에 책꽂이를 놓아 주어서는 안되고, 항상 머리쪽에다 놓아 두어야 한다고 전해 오고 있다. 이는 유태인들이 책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성(知性)이 유태인 사회에서 얼마만큼 중요시 되어 왔는가 하는 증거로 이들 사이에서는 학자는 왕보다 훌륭하다고 하여 높은 존경의 대상이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유태인만이 갖는 자랑할 만한 전통이다. 다른 대부분의 민족은 왕후, 귀족, 혹은 군인, 부자들을 학자 위에 두었다. 그러나 유태인은 이러한 계급적인 직위 보다는 학문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유태인은 지식보다 지혜를 중요시 해 왔다. 이것은 지식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지혜가 없는 사람은 많은 책을 잃지 않고 ‘등에 실은 당나귀와 같다’고 비유 하기도 했다.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지식 보다
칼럼 자연 재해와 인간의 역할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이언스」지에 실린 기후 변화에 관한 사설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뿐인 지구에 통제할 수 없는 대규모 실험을 감행하고 있는 중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연현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허리케인과 같은 심한 폭풍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지구의 기후 체계는 태양 에너지를 변환하여 분배하는 기계에 비할 수 있다. 태양열의 대부분을 열대 지역이 받다 보니 기온의 균형이 맞지 않게 되어 대기가 순환하게 된다. 또한 습기를 머금은 이 움직이는 공기 덩어리에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소용돌이들이 형성되는데, 일부 소용돌이는 저기압 즉 기압이 낮은 부분이 된다. 이러한 저기압이 발전하여 폭풍이 되기도 한다. 열대성 폭풍의 일반적인 진행 경로를 관찰해 보면, 적도에서 북쪽이나 남쪽에 있는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지역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폭풍 역시 거대한 열 교환기 역할을 하여 기후가 온화해지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칼럼 자연재해, 왜 많이 일어나는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요즘 들어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에 관한 뉴스가 상당히 많아진 것 같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재난으로 인한 희생자 수도 이전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벨기에 소재 재해 역학 연구 센터의 보고에 따르면, 2010년 한 해에만도 373건의 재해가 있었으며 최소한 29만 6000명이 사망했다. 또한 매년 보고되는 재해 건수가 지난 몇 십 년간 눈에 띄게 증가해 왔다. 예를 들면, 1975년에서 1999년 사이에 매년 기록된 재해 건수는 300건에 훨씬 못 미쳤다. 그런데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해마다 평균 400건에 육박하는 재해가 일어났다. 우리는 누구나 “요즘 와서 재해가 부쩍 많아진 이유가 뭐지?”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러한 재해를 가리켜 “하느님이 내린 벌”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 재난은 하느님이 일으키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재해가 있을 것이라고 성서에 기록돼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4:7, 8에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내용이 나온다. “곳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