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당연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일에는 항상 시시비비(是是非非)가 있고, 좋고 나쁜 것이 있으며, 어떤 일은 당연하지 않는 것도 있다. 당연하지 않는 것은 거부하고 원망하며, 거북해 하기도 하고 마음도 불편하다. 우리가 하는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는 괜찮지만 만약 일이 잘 되지 않아 곤경에 부딪쳐서 당연하지 않는 것이라도 당연한 듯이 대할 수 있다면 곤경에 부딪쳐도 순순히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 마음 자세가 되어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된다. 자연계에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만물을 생육하고 번창하게 하지만 눈과 서리도 심지어 비바람도 만물을 성숙하게 한다.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부모님의 엄격한 훈육이 당연한 것은 자녀가 장래에 큰 재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지시하는 게 당연한 것은 선생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을 위해, 학생이 공부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급우들끼리 경쟁하는 게 당연한 것은 경쟁하는 가운데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스피드 빙상 선수가 혼자 뛰지 않고 두 사람을 경쟁시키는 것도 그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수
칼럼 자유한국당 물갈이 안하면 완패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광훈 대표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고, 애국 우파세력을 결집하는데 전국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대국민 집회를 열고 있다. 한기총은 최근 대표회장 명의로 낸 선언문에서 “문재인 정권이 주체사상을 종교적 신념의 경지로 만들어 청와대를 점령했다”면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연말까지 하야할 것과, 내년 4월 총선에서 대통령 선거와 4년 중임제 개헌 헌법 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한기총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 정권으로 규정하고 정권 퇴진을 주장해 왔다. 전광훈 회장은 지난 3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기총을 방문했을 당시 “황 대표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 지도자가 됐으면 한다”며 “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200석을 얻어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건져 달라”고 말한 바 있다. 한기총 시국 선언문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135년 전에 이 땅에 들어와 민족의 개화, 독립운동, 건국, 6.25, 새마을운동, 민주화의 중심에 서 있었고,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대국이 되기까지 모든 희생에 앞장 서 왔지만
칼럼 兩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13세기 때 일본의 도원(道元)선사가 중국에서 선(仙)을 배우고 귀국했을 때 무엇을 배우고 왔느냐고 묻자, 도원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이 옆으로 나고 코가 세로로 달려 있는 것을 진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空手(공수 : 빈손)로 돌아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웃음 소리에 묻어 있는 인생의 공허함을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눈은 옆으로 코는 세로로(眼橫鼻直)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는 말 속에는 오직 한번 뿐인 이 인생의 엄숙함을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경지가 숨어 있다. 매우 단순한 이 사실에 감사할 수 있게 되기까지 타국에서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수행해야 했다는 것을 도원선사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눈과 코와 귀와 입이 갖춰진 얼굴을 / 내가 갖고 있음을 깨달았노라」 마지막의 「깨달았노라」라는 구절이 헤아릴 수 없는 무게로 가슴에 와 닿는다. 그것은 도원선사가 수행한 10년의 무게이다. 「버들은 푸
칼럼 가난하다고 불평하지 말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살고 있는 한 도사는 천문, 지리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도 예언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자, 저명한 학자는 도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테스트 해 볼려고 작은 새 한 마리를 두 손에 움켜쥐고 물었다. '도사님의 뛰어난 능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손에 있는 새가 한 마리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 맞춰 보십시오.“ 도사는 말했다. ”만일 내가 살았다고 하면 당신은 손에 힘을 줘서 새를 죽일 것이고, 죽었다고 하면 손을 펴서 날려 보낼 게 아니겠오. 그러니 당신 손에 잡힌 새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는 당신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요.“ 도사는 논리학적 이분법을 알아 자칫 난처하게 될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남자가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공원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그런데 한 무리의 백인들이 잔디밭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미국 사람들은 그 동안 내가 듣던 것처럼 정말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넉넉한 생활을 즐길 줄도 알아야 사는 맛이 날테지.‘ 조금 후 흑인 몇 명이 역시 잔디밭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
칼럼 판단은 신중하게, 결단은 신속하게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그것은 바로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그만 둬야 할까 그만두지 말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전연 해보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신속히 가야할 방향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랜시간을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어떤 일을 선택하기까지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고민도 한다. 하지만 검토는 오래 하지만, 일단 결정이 나면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판단에서는 매우 오랫동안 고민하지만, 결단은 신속하게 한다」는 것이 나의 처세술이다. 판단과 결단은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매우 크다. 그것은 바로 판단에는 정답이 있어도 결단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결단이 행동으로 옮겨지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결단을 할 때까지는 판단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한다. 「판단」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엇비슷해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리는 것이다. 아무리 여건을 고려하고, 이해득실을 심사숙고 해도
칼럼 구두쇠 양반과 목수 총각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 어느 마을에 돼지처럼 욕심이 많은 구두쇠 양반이 살고 있었다. 원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많은 것으로 골라 먹으려 하고 감기조차 남들이 가져갈까봐 조심하는 위인인데다가 성질까지 어찌나 고약했던지 장사꾼도 그 집앞을 지나기조차 꺼려했다. 하루는 솜씨 좋기로 소문난 한 목수 총각이 읍에 장보러 가다가 양반네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양반은 이 목수 총각을 보자 불러 세우며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보게 목수 총각! 마치 기다리던 참이네. 다음번 산에서 내려올 때 나막신 한 켤레를 만들어 주게, 나는 키는 작아도 발은 큰 편이니 좀 여유있게 만들게, 값은 후하게 주겠네.” 총각은 읍에서 돌아오자 산에 올라가 고운 참나무를 골라 나막신 한 켤레를 곱게 파서 동백기름을 발라 윤기나게 해 두었다가 며칠 후 양반에게 갔다 주었다. 나막신을 받아 신은 양반은 만든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값이 꽤 될 것 같아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물었다. “그래, 값은 얼마나 받겠나?” “거저 해 드렸으면 좋겠으나 이 일로 먹고 사는 처지이니 알아서 품값이나 주시지요.” “음,
2019 기해(己亥)년 가을을 막 보내고 난 아쉬움 때문인지 하늘은 더욱더 높고 청명하며, 꽃들은 더욱더 예쁘고 아름답기만 하다. 하늘이 높고 맑으며 밝은 것은 우리의 마음이 높고 맑으며 밝기 때문이다. 꽃들이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높음과 맑음과 밝음이 없다면, 하늘은 결코 높고 맑고 밝을 수 없다. 우리 마음에 예쁨과 아름다움이 없다면, 그 어떤 꽃도 예쁘고 아름다울 수 없다. 心不在焉(심부재언) 視而不見(시이불견) 聽而不聞(청이불문) 食而不知其味 (식이부지기미)라는 가르침이 있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는 성현의 말씀이다.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는 속담이 있다. 나에게 마누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못해 밖으로 철철 흘러넘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일 뿐, 처갓집 말뚝이 특별나고 대단해서가 아니란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어떤 마음이 내재해 있느냐에 따라, 즉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한 온갖 기억 뭉치인 업식(業識)에 따라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만나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참 나쁜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바로 가져야 하는 버릇입니다. 누구든지 소유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다 있기 마련이지만, 특히 인간관계에서 지나친 소유욕(所有慾)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를 보면,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에 트라우마(trauma. 마음의 상처)로 자리해서 그런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꼭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꼭 사고 싶은데, ‘눈도 안 보이는 게 책은 뭐하러 사느냐’라는 계모의 핀잔이 큰 상처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 흔한 딱지 한 장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형편, 게다가 맹아원에서는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던 시간, 이런 것들이 제겐 고스란히 마음의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소유욕(所有慾)입니다. 잊어버려야 할 사람을 끝까지 마음속에 품고 괴로워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마음속에 품어야 할 인연들이 다 있을 겁니다. 시각장애인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에겐 특히 더 많
칼럼 덕(德)이 없으면 잔인한 통치자가 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일본 전국시대에 다이묘(大名 : 영주를 소유한 무사)로 상승한 대표적인 인물에 이세 신쿠로(伊勢新九郞)가 있다. 전국의 다이묘들은 국도(國盜 : 나라를 훔친 도둑) 또는 효웅(梟雄 : 사납고 용맹스러운 영웅)이라고 불렀다. 나라를 훔친다는 것은 그 지역의 주민과 토지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세 신쿠로는 자기 세력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직접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이라고 생각하고 농민의 지지를 얻어 세력을 확대할 방침을 세웠다. 그 방침은 「농민을 위한 정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이념이었다. 이세 신쿠로는 부하들을 이끌고 그 지역 다이묘인 호리고에를 기습하여 살해했다. 그러자 이세 신쿠로에게는 지금이 영주보다 더 무서운 잔악성이 있다고 판단한 농민들은 멀리 도망을 쳤고, 병든 노인들만 남게 되었다. 이세 신쿠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농민들은 무서운 존재야, 그리고 대응이 매우 빠른 존재야,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이세 신쿠로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세 명의 병사가 교대로 환자 한 명을 간호하도록 해라, 스물 네시간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어선 안된다.“ 실제로 그렇게
칼럼 적개심 없는 국민, 나라 망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는 태양계의 행성인 지구의 역사와 여기에 생존하는 인간의 역사가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황금밭이란 사실을 항상 느끼고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모든 이야기를 쓰는데 열중하고 있다. 지구는 무한대의 우주에 비하면 원자나 분자보다 작은 천체이지만 인간은 수 많은 슬픔과 고통스러운 역사를 끝없이 기록해 가며 서로가 자기 자신이 주인임을 강조한다. 한 사례를 보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의 지도자였는데 페르시아 군의 침입이 예상될 때 그는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하여 함대를 만들었다. 이때가 기원전 460년, 마침내 페르시아 군이 북쪽으로부터 공격해 들어와 아테네를 짓밟고 불바다로 만들었다.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을 연상케 한다). 아테네 시민들은 섬으로 피난하였으며 아테네 함대들이 아테네와 살라미스 섬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에서 페르시아 함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기다렸다. 그 함대의 지휘자는 스파르타의 ‘에우리비아데스’였다. 그 당시 스파르타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 중에서 최고의 군사 강국이었다. 스파르타 군은 육상에서는 용감했으나 해상에서의 싸움은
칼럼 「적자생존」, 강자만 살아남는 원리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의 생존은 치열한 전쟁과 같다. 일찍이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는 모든 생물의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생존경쟁」 또는 「적자생존」이라고 표현했으며, 「양육강식」은 생태계의 기본 원리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내가 아닌 모든 것들과 부단히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이든 국가든 가혹한 경쟁에서 이겨내야만 생존할 수 있으니, 삶의 엄숙함과 심각함은 바로 그 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역사의 공통점은 분열과 통합의 연쇄반응적인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끓임없이 분열하여 계속 불어나게 마련인데, 분열과 개체군이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속에서 장기적인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부득이 다른 종족과 싸워 이겨야만 한다고 했다. 「적자생존」과 「양육강식」의 논리는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며, 그 이론은 개인이나 국가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사례를 보자. 어떤 사람이 사업능력이 탁월하여 여러 사업체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 기업가는 후손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조만간 여러 사업체를 자식들에게 1∼2개씩
공자님께서는 “無可無不可也(무가무불가야)”를 역설하신 바 있다. 할 만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는 말이다. 이 세상일에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된다거나, 또는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거나 하는 고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물 흐르듯 상황 상황에 딱 들어맞는 무애 자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맹자는 사서집주를 통해 “孔子可以仕則仕(공자가이임즉임) 可以止則止(가이지즉지) 可以久則久(가이구즉구) 可以速則速(가이속즉속)” 즉, 공자께서는 벼슬을 할 만하면 벼슬을 하고, 그만둘만하면 그만두고, 오래 할 만하면 오래 하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나심으로써, ‘무가무불가야’의 삶을 몸소 실천하셨다고 말했다. 벼슬할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만하면 그만둘 수 있는 삶은 주체적이면서도 자유롭고 여유로운 행복한 삶이다. 이와 같은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사로운 욕심을 벗어난 지공무사한 마음이다. 또한 목전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지혜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한 삶이다. 누구나가 사리사욕을 벗어던지고 ‘머물 때와 떠날 때’를 아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계 및 재계에서 마지못해 타인에 의해 쫓겨나는 것이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