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지혜로운 삶 유교(儒敎) 또는 유학(儒學)의 핵심은 바로, 儒(유)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비를 뜻하는 儒(유) 는 사람을 의미하는 人(인)과 쓰이고 구하고 바란다는 의미의 需(수)를 합한 글자다. 따라서 선비란 이 세상에 없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있으나마나 한 사람도 아니다. 꼭 있어야 하는 쓸모있는 사람이 바로 선비로, 달리 표현하면 군자(君子)라고 할 수 있다. 군자(君子)란 요즘 말로 하면, 대중들이 나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올바른 정도(正道)를 제시할 수 있는 지혜로운 ‘리더’ 정도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이 같은 맥락에서 ‘군자’ 내지 ‘리더’의 선결 요건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연 닿는 모든 사람들이 지혜로운 삶,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군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서의 하나인 ‘중용(中庸)’은 군자의 도에 대해 다름과 같이 설파함으로써, 군자의 삶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간단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君子之道(군자지도) 辟如行遠必自邇(비여행원필자이) 辟如登高必自卑(비여등고필자비)” 즉,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갈 때는 반
칼럼 사주팔자 똑같은 임금과 여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조선시대 성종 임금이 한가해서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일관(日官)을 들라고 하였다. 일관이 임금 앞에 나아가 부복하자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사주팔자로 사람의 운명을 안다고 했는데 전국에 과인과 사주팔자가 똑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꼬? 내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니 전국에 지시하여 과인과 똑 같은 사주를 지닌 사람을 모두 조사해서 불러 들이도록 하라.” 흔히 사주팔자(출생년월일시)가 같으면 살아가는 모습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운명을 보는 학문에 깊은 지식이 없어서다. 명리학을 공부할려면 물상법도 같이 공부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사주가 똑 같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다르다. 특히 명리학, 물상법 등 운명학은 대가(大家)의 제자로 입문해 배우지 않으면 터득하기 어렵다. 일종의 불도와 같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사주팔자가 같아도 각자 살아가는 모습은 어떻게 다른지 사례를 보자. 성종 임금의 지시에 따라서 조사해 보니 마침 한 사람의 중년 과부가 있어서 임금 앞에 불러 왔다. 임금은 앞에
과거 숲은 봄철 산나물과 가을철 버섯류 등을 채취하고 겨울철에는 땔감으로 난방을 해결하는 등 생활의 일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중년층 이상에게는 아버지가 산에서 나무를 해오거나 아니면 본인이 직접 산에서 나무를 해오면 어머니께서 음식을 조리해주셨던 추억의 회상이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산림은 2015년 말 산림기본통계 기준으로 6,335천ha이며, 전 국토의 63%를 차지하고, 평균축적은 1ha당 146㎥이다. 평균축적은 가로·세로 각100m 넓이(1ha) 내에 있는 나무의 부피를 의미한다. 세계 산림 현황(2015 FAO)을 보면 전 세계 국토면적은 130억ha이고, 그 중 산림이 40억ha로 약31%를 차지하며, OECD국가 평균 입목축적은 1ha당 130.5㎥이다. 축적이 높은 산림 부국은 뉴질랜드(392㎥/ha), 스위스(353㎥/ha), 일본(170㎥/ha) 등이 있다.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화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산림은 2014년 기준으로 약 126조원의 공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세부 기능별로는 토사유출방지기능(18.1조원, 14%), 산림휴양기능(17.7조원, 14%), 수원함양기능(16.6조원, 13%), 산림경관기능(1
칼럼 사자왕의 억지 이유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곰과 원숭이와 토끼를 시종으로 거느리고 있던 사자왕은 함께 지내보니 곰은 미련하고, 원숭이는 교활하고, 토끼는 눈치만 살피면서 일하기를 싫어하자, 사자왕은 구실을 만들어 몽당 잡아 먹을려고 생각했다. 사자왕은 세 시종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지 시험해 볼테니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해라!” 먼저 곰 앞에 가서 커다란 아가리를 짝 벌리고 “내 입에서 무슨 냄새가 나느냐?” “예, 대왕님, 비린내가 어찌나 고약한지 맡기조차 어렵습니다.” 사자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에끼, 이 미련한 놈. 왕의 체면에 먹칠을 했으니 넌 죽어 마땅하다!” 사자왕은 곰을 잡아 먹었다. 그리고는 또 아가리를 벌리고 원숭이에게 똑 같이 물었다. “냄새가 정말 향기롭네요. 향수인들 어찌 이런 냄새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에끼. 이 교활한 놈, 왕을 속이려드니 네 놈도 죽어 마땅하다!” 사자왕은 원숭이도 잡아 먹었다. 역시 토끼에게도 물었다. 토끼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요새 감기에 걸려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습니다. 감기가 좀 낫거던 다시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
칼럼 최고 지도자는 자신부터 재점검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대체로 군주는 자신에 대한 평판을 크게 의식하여 그것이 스스로 내린 평가와 동떨어져 있기라도 하면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백성의 눈은 청맹과니가 아니다. 백성의 눈은 끊임없이 위정자에게 쏠려 있어 아무리 작은 과오도 놓치지 않는다. 군주가 선정을 베풀면 백성들은 당장 그것을 칭송하지만 과오를 범하면 즉시 그것을 비난한다. 백성들의 칭송이나 비난은 군주가 측근에게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대체로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명군(名君)은 백성들을 두려워 했다. 백성들의 눈에 의해서 명군이라고 인정되면 명성은 저절로 얻는다.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 지도자의 일거일동에는 수천수만 사람의 눈이 항상 쏠려 있다. 평판에만 신경을 써서 외양만 그럴듯하게 꾸미는데 전념하더라고 한 두 사람은 모를까 만인의 눈을 속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보다는 자기 자신의 재점검을 항상 게을리 하지 않는 일이 긴요한 것이다. 송(宋)나라 명신 여공저(呂公著)는 재상 자리에 오른적이 있는데 그는 학문과 식견이 탁월하여 황제의 교육담당으로 훌륭한 과업을 완수한 사람이다. 그는 황제에게 이렇
칼럼 군주는 백성을, 장군은 부하를 사랑해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제 때에 기회를 포착하여 잘 활용한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미미한 생물들도 기회를 잘 알아 대처하는 것을 보면 이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요 신비인 것이다. 까치가 집을 지을 때 높게 지으면 그 해는 태풍이 불어 닥쳐 피해가 큰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미 인간 세상에 알려진 일이다. 그러한 감지적 사실은 사람으로서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쥐는 배가 파선이 될 것 같으면 먼저 알고 도망친다. 개미는 비가 올 것 같으면 출입구를 잘 봉쇄한다. 사람 몸에 붙어 먹고 사는 이(lose)란 놈도 죽을 사람에게는 미리 떠나 버린다. 이처럼 미래를 예측하는 미생물들의 초능력은 인간을 능가하는 것이어서 창조주들에 받은 특혜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만물의 영장인 인간, 특히 현자들은 점(占)을 좋아해서 체계화 하다보니 운명을 예측하는 역학이 나왔고 주역은 주나라 때부터 성행했다. 특히 문왕은 자신의 스스로 주역으로 국운을 점쳐 나라를 다스리기도 했다. 이는 군왕이나 필부 가릴 것 없이 똑 같은 심리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성공의 열쇠 막신일호(莫神一好)라는 말이 있다. 하나를 좋아하는 것만큼 신명나는 일은 없다는 의미다.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와 달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바 있는 중국 주나라 말기 전국시대의 유물론적 유가였던 순자(BC 298년 ~ BC 238년)의 말이다. 순자가 강조한 ‘막신일호’와 동일한 맥락의 가르침인 ‘逐鹿者(축록자) 不顧兔(불고토)’ 즉,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에게 한눈팔지 않는다는 가르침도 전해진다. 토끼를 쫓는 자 또한 다르지 않다. 토끼를 쫓는다면 사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를 좋아하고 그 하나를 추구해야만 원하는 바를 이를 수 있다. “바늘 끝이 두 개면 옷을 꿰매기가 어렵듯, 마음을 두 갈래로 사용하면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티베트의 속담도 오직 한 가지 일에 지극정성을 다할 때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성공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말이다. 누구도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을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고자 할지라도, 오직 한 마리의 토끼에 집중해서 그 토끼를 잡은 연후에, 동쪽이나 서쪽으로 도망가는 나머지 한 마리 토끼를 쫓아야
칼럼 정보를 많이 가져야 승리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21C IT시대에 살아가자면 각종 정보의 확보가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기업은 각종 산업정보와 첨단기술 정보를 빼내기 위해 회사의 운명을 걸고 치열한 정보 전쟁을 벌리고 있다. 최근 일본의 어느 기업은 미국에서 산업정보를 빼내가려고 하다가 미국의 공항에서 적발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한 기업에서도 직원이 돈을 받고 고급 기술정보를 중국의 모 기업에 넘기려다가 적발된 일도 있다. 이런 일 때문에 고급 인력은 채용한 후 5 - 6년 동안은 그 직원의 행동을 면밀히 감시하고 관찰하기도 한다. 특히 회사의 첨단기술 정보를 빼가지고 다른 회사로 직장을 옮기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산업정보와 각종 기술정보를 비싼 값에 팔아 먹는 사람도 있다. 이런 정보 팔아먹기는 부동산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개발예정지의 정보를 부동산업자에게 팔아 먹는 일부 부패 공직자들도 있다.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고 부동산 투기의 근절을 위해 누구 보다도 발벗고 나서야 할 공직자들이 국가의 개발예정지 기밀을 부동산업자에게 팔아 먹는 행위는 엄격히 처벌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 좀처럼 근절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주장은 대체로 세 가지로 보는데, 우리가 잘 아는 성선설(性善說)은 맹자(孟子)의 주장입니다. 당연히 휴머니즘입니다. 또 하나는 성악설(性惡說)로 순자(荀子)와 실존주의 철학 그리고 불교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존 로크의 주장으로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 또는 백지설(白紙說)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은 백지와 같은 성품으로 태어난다는 주장입니다(J. Wieman, J. Huxley).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떤가? 대부분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해석을 추종합니다. 인간은 창조되었을 때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완전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때 자유의지라는 것을 통하여 죄를 범하지 않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동으로 선악과를 따 먹게 되었고, 그때부터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통한 십자가의 구원이라는 복음이 필요했고 이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서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영화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은 무구(無垢)에서 유죄(有罪)로, 유죄(有罪)에
“나 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라”는 말이 있다. 저 자신만 아는 에고 또는 아상(我相)을 타파하기 위한 방편설(方便說)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생각한다면, 이 말만큼 위선적이고 어불성설인 말도 없다. 내가 있고 남이 있는 가운데,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챙기고 배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짐짓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라는 판단이 서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는 있다. 무조건 우산이나 양산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더 사랑하며 애정을 쏟을 필요는 없듯이, 무조건 나보다 타인을 배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 비가 오면 우산을, 햇볕이 쨍쨍 내려 쬐면 양산을 쓰면 그 뿐, 어느 하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넌 센스 듯이, 나 보다 무조건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짓도 무늬만 그럴듯한 지독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내 발등의 불이 급한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보다 급하지도 않는 남의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은, 이웃사랑도, 자비의 보살행도 아니다. 정견이 배제된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이웃이 급하면 이웃을 먼저, 내가 급하면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 올곧은 행동
칼럼 가난하다고 불평하지 말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살고 있는 한 도사는 천문, 지리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도 예언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자, 저명한 학자는 도사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테스트 해 볼려고 작은 새 한 마리를 두 손에 움켜쥐고 물었다. '도사님의 뛰어난 능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손에 있는 새가 한 마리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 맞춰 보십시오.“ 도사는 말했다. ”만일 내가 살았다고 하면 당신은 손에 힘을 줘서 새를 죽일 것이고, 죽었다고 하면 손을 펴서 날려 보낼 게 아니겠오. 그러니 당신 손에 잡힌 새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는 당신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요.“ 도사는 논리학적 이분법을 알아 자칫 난처하게 될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남자가 처음 미국에 도착하여 공원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그런데 한 무리의 백인들이 잔디밭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미국 사람들은 그 동안 내가 듣던 것처럼 정말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넉넉한 생활을 즐길 줄도 알아야 사는 맛이 날테지.‘ 조금 후 흑인 몇 명이 역시 잔디밭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
칼럼 정치인은 아집과 독선을 버려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는 보수와 진보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도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 왔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사대강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처음부터 사대강 사업을 반대했다. 특히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살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그건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말로만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념적인 입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 가를 따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지금은 문재인 친북좌파 정권이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 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의 화살이 주로 그들을 겨냥하게 될 뿐이다. 특히 한미동맹 약화로 국방과 안보는 매우 위기에 빠져 있고, 경제도 추락한 상태다. 그래서 수많은 국민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서울광화문 거리에 모여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정권은 오래가지 않았다. 따라서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미 도박이 상당히 진행되었기에 향후 여기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