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뢰성 가설」 정책은 실패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우리는 우리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흥미 있는 경제법칙을 규명할 수 있다. 1990년도의 더운 여름밤을 식혀주는 영화 「강화도령」을 보면서 재미있는 경제법칙을 발견 할 수 있다. 더벅머리 강화도령 이원범은 두메산골 처녀인 양순이와 즐거운 날을 보내다가 하루 아침에 왕으로 등극한다. 하지만 강화도령 이원범은 아름다운 궁녀들에게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양순이를 잊지 못하면서 늘 우울한 날을 보낸다. 더벅머리 강화도령은 헌종의 뒤를 이어 철종 임금이 된다. 그러나 그는 힘 없는 허수아비 왕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런데 철종은 시골의 빈대떡과 막걸리를 마시고 싶어 하면서 궁궐의 미녀들은 싫다하고 첫사랑인 양순이를 오매불망 그리워한다. 이를 경제학으로 보면 철종의 효용함수는 왕으로서 진수성찬을 드는 것이 아니라 양순이와 함께 시골냄새가 나는 된장 뚝배기를 먹는 것이었다. 경제학에서 보면 효용(utility)이란 어떤 재화를 소비함으로써 얻어지는 인간의 감정적, 주관적인 만족감을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철종은 진수성찬과 수 많은 예쁜 궁녀들 속에서 사는 왕의 생활에서 자기의 효용
칼럼 정치인은 周恩來의 품성을 배워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중화민국 주은래(周恩來)는 삼국시대 유방을 도와 촉한을 건국한 제갈량과 매우 닮은 인물이다. 주은래 삶의 기록을 보면 그는 어렸을 때 숙부 밑에서 성장한 제갈량과 닮았고, 생전과 사후를 불문하고, 한 나라의 영원한 승상의 2인자 자리를 고수한 것도 두 사람은 닮았다. 주은래는 중국 공산당 내에서 엘리트 계층에 속하지만 모택동이 중국혁명을 이끌 당시에는 모택동을 보필하면서도 권력에서 쫓겨난 등소평을 다시 끌어 들여 중국의 2인자로 서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의 현대사에서는 모택동과 주은래는 동일한 위치에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 통인 하버드대학의 ‘페어뱅크’ 교수가 중국의 모택동 시대를 「모택동, 주은래 시대」라고 불렀다는 것도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전 닉슨 미국 대통령도 모택동이 없었더라면 중국의 혁명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이는 중화민국의 실질적 기반을 구축한 인물은 주은래라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주은래의 충성심도 촉한의 제갈량과 닮았다. 승상 제갈량이 평생동안 군주 유방에게 충성하고, 나라에 보답하는 「국궁진췌(鞠躬盡瘁)
칼럼 부자 사주와 빈천한 사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 주일을 계속하면 성실한 것, 한 달을 계속하면 신의가 있는 것, 일 년을 계속하면 생활이 변할 것, 십 년을 계속하면 인생이 바뀔 것, 세상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자도 남자의 사주가 좋은 사람을 골라서 결혼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재산이나 겉모습만 보고 결혼했다가 성격 등이 맞지 않아 후회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 자기에게 맞는 남편을 고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인에게 궁합을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여자가 원하는 남자 사주명국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남자의 명국이 너무 강하지 말아야 여자를 을(乙)의 관계로 알고 꺾는 일이 없어진다. 그러나 너무 나약하면 남편으로 맞이한 그 사람의 활동력이 없으니, 무능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남자의 사주명국은 약간은 신강사주라야 좋다. 그리고 남자의 명국에서는 정재(正財)나 편재(偏財)를 아내로 보기 때문에 아내가 되는 사람인 사주에 정재나 편재가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 역시 한 자는 천간(天干)에 그리고 또 한자는 지지(地支)에 들어 있어야만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바람을 불러 일
칼럼 기업 경영의 세 가지 형태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느 선비가 깊은 산골을 지나가다가 밤이 깊었다. 인가(人家)도 없는 곳을 헤매다가 집을 한 채 발견하고 찾아가서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과부로 사는 중년 여인이 혼자 있었고, 추운 겨울이라 불을 지핀 방은 하나 뿐이어서 함께 잘 수 밖에 없었다. 이 여인이 방 가운데 줄을 그어 놓고 절대로 선을 넘지 말자는 말을 하기에 잠자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약속을 했다.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건너편에서 자는 여인이 허연 속살을 거의 내비치는 얇은 옷을 입고 두 다리를 묘하게 움직이며 뒤척이더란다. 그러나 이 선비는 장부일언 중천금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꼼짝 않고 하룻밤을 지샜다. 다음날 아침 고맙다는 이 선비가 인사를 하면서 떠나려는데 그 여인이 하는 말이 “이 양반아 주는 떡도 못먹소” 하더란다. 관상(觀相)에서 빈상(貧相 : 가난한 상)이 있는데 부자(富者)이면서 가난한 상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상이면서도 부자상이 있다. 즉 재산은 별로 없는데 좋은 음식에다 옷 잘 입고 돈 쓰는 데도 잘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산은 별로 없는데 자기가 먹는 것에도 아까워 벌벌 떠는
칼럼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거리에 나가보면 싸야만 잘 팔린다는 이유로 업자끼리 가격 인하 경쟁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필자는 웃음이 나온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소비자신문에서 몇 년간 편집장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소비자 문제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전문지식을 쌓았다. 가격을 내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영업부장 자리에 앉혀 놓으면 회사를 말아 먹는다. 예를 들어보자. 20% 할인 - 50% 할인이 엄청난 차이로 보이겠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별로 달갑지 않다. 이것은 경영자로서 머리를 쓰지 않고, 가장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방법이라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런 파격적인 세일 행사를 하지 않아도 없어서 못파는 상품이 있다. 서울의 y 백화점 1층은 해외 유명 브랜드 고가의 화장품, 의류, 손목시계, 반지, 보석 매장이 넘친다. 샤넬, 불가리, 구찌, 프라더, 크리스챤디올 등 화장품 하나 가격이 수십만 원을 넘고 손목시계 한 개 가격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뛰어 넘는다. 고가의 와인이 불띠나
칼럼 최초의 동성연애 ‘맷돌 부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문종의 후비 현덕왕후 권씨는 충청도 홍주의 합덕현에서 아버지 안동 권씨 화산 부원군 권전과 어머니 해주 최씨의 딸로 태종 18년에 태어났다. 세자 향은 세종 3년 8세에 세자로 책봉되어 세종 9년 14세 때 김오문의 딸 김씨와 혼인하였으나 세자가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자, 김씨가 세자의 사랑을 되돌릴려고 해괴한 비방을 사용하다 폐출되었다. 세종 13년에 현감 봉여의 딸 순빈 봉씨를 세자빈으로 맞아 들였지만 세종 14년 세자가 무관심 하게 대하자, 순빈 봉씨는 동성연애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예조에서는 ‘세자도 후궁을 들여야 한다’고 제도화를 했는데, 이때 열 다섯 살의 권씨가 임신하자, 후궁으로 책봉되었다. 이때 19세인 순빈 봉씨는 시비 ‘소쌍이’와 매일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소쌍이의 능란한 애무 솜씨는 순빈 봉씨의 몸을 마음대로 다루었다. 소쌍이의 손놀림에 순빈 봉씨는 황홀해지며 호흡이 거칠어지자 소쌍이가 말했다. “마마, 시원하시와요?” “응응, 더 세게. 그래, 더 세게 눌러 다오.” “네, 마마, 알겠사옵니다.” 소쌍이는 세자빈 봉씨를 마음대로 다루었다. 그
칼럼 부자는 대운이 용신을 밀어줘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흔히들 사주를 인용한 속담 비슷한 말이 몇가지 있다. ‘사주팔자 잘못 타고 난 죄밖에 없다’ ‘사주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겨진다’ ‘팔자소관이다’ ‘팔자는 못 고친다’ ‘팔자는 독에 돌어가서도 못 피한다’ ‘팔자가 좋으면 동이장수 며느리 됐겠느냐?’ 등이 있는데 이와 같은 말들은 결과에서 나온 현실 타협용이거나 위안 겸 자위용이기 쉽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가장 빠른 동물 중의 하나가 사람이다. 체념의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희망이 있기에 다음을 위해 도전을 준비한다. 또한 망각이란 편리한 약이 있기에 어느새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에 흥미를 갖게 된다. 결과론에서의 팔자타령보다 그 팔자를 앞서 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새로운 흥미를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부자(富者)의 종류를 크게 5가지로 나눈다. (1) 종신부자형(終身富者型) =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부자로 사는 사람이다 (2) 선부후빈형(先富後貧型) = 태어나서 중년까지 잘 살고 중년 이후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다. (3) 선빈후부형(先貧後富型) = 태어나서 중년까지는 가난하게 살고 중년 이후는 잘 사는
칼럼 원님과 「관상쟁이」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느 산골 마을에 사는 젊은이가 일자리를 얻으려고 읍내에 와서 주막집에 묵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마을 원님의 하인이 술에 잔뜩 취해 거들먹거리며 주막집에 들어오더니 무턱대고 주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질을 하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젊은이는 못된 하인이 너무 미워서 “그 녀석, 관상을 보니 이틀을 못넘기고 저승으로 가겠구만!”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하인은 이틀째 되는 날 갑자가 죽고 말았다. 그러자 젊은이가 용한 관상쟁이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온 읍내에 쫙 퍼졌다. 이 소문을 들은 원님은 자기의 하인을 죽인 젊은이를 혼내주려고 젊은이를 관아로 잡아 들였다. “네 이놈! 관상을 그렇게 잘 본다는데 네 놈은 언제 죽을 것 같으냐?” 주위를 살펴보니 숱한 병졸들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 보아하니 원님이 하인의 원수를 갚으려는 병졸들을 보낸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젊은이는 즉시 꾀를 내서 대답했다. “예 나으리, 저의 관상을 보고, 또 나으리의 관상을 보니 저는 나으리보다 이틀 먼저 죽게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자 원님은 겁이 덜컥 났다. ‘만일 오
칼럼 원님과 봇짐장수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에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장군들 속에 들어가 창과 방패를 들고 목청을 높여 말했다. 「여러분! 이 방패보다 더 단단한 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창으로 찔러도 끄덕 없습니다」 이번에는 창을 들고 소리쳤다. 「이 창만큼 날카로운 건 이 세상 아무데도 없습니다. 이 창에 찔리기만 하면 아무리 단단한 방패라고 뚫리고 맙니다!」 그러자 한 젊은이가 큰 소리로 물었다. 「당신의 말대로 하면 당신의 창은 그 어떤 방패도 뚫고 나가며, 당신의 방패는 그 어떤 창도 뚫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된다는 말이요?」 구경꾼들이 와!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질문에 대답이 막힌 장사꾼은 급히 자리를 떠났다. 장사꾼은 왜 말문이 막혔을까? 그것은 모순율을 위반하고 자체 모순에 빠졌기 때문이다. 「모순율」이란 어떤 사고 대상에 대하여 동일한 시간과 관계 하에서 두 가지 모순되는 판단을 가질 수 없다고 확정하는 사고의 법칙이다. 즉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동일한 시간과 관계 하에서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순율은 어떠한 사고나
칼럼 화목하게 생각을 돌아보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사람은 다투기도 하고 화목하게 지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면서 화목함이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이익으로 화목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지애로 화목을 이끌어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사람이 있는 곳에는 견해가 다르기 마련이고,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기 마련이어서 화합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들의 가정에서 사회에까지 심지어는 국가와 국가간에도 갈등과 불화 아니면 이런저런 시시비비가 끓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는 인종, 언어, 습관, 풍습,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는 인화(人和)와 국민 단결에 힘써야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불가에서는 흔히 「총림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것을 흥성하는 것으로 삼는다」고 하는데, 사람관계가 화목해야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승단(僧團)에서는 평소 「육화경(六和敬)」에 의해서 사람과 일의 화합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즉 신체적으로 화합하여 대중을 이루고 함께 지낸다(身和同住), 언어가 다툼이 없다(口和無諍), 뜻
칼럼 사흘만에 쫒겨난 사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 어느 고을에 한양에 사는 대감의 외아들이 신관 사또로 부임에 왔다. 이 사람은 워낙 천방지축 철부지였지만 애비덕에 영특한 아내를 얻고 고을 원님으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부임하여 이튿날이었다. 남의 소를 빌려 밭을 갈다가 점심때가 되어 언덕에다 소를 매어 놓고 점심을 먹고 와 보니 소가 벼랑에서 굴러 떨어져 죽자 소 주인은 당장 소를 사 내라느니, 농부는 차차 벌어서 변상을 하겠다느니 하면서 서로 다투다가 사또의 현명한 판결을 받으려고 상소하러 왔다. 사연을 다 듣고난 신관 사또는 「여봐라, 게 좀 기다리고 있거나!」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랐거니와 또 집을 떠날 때 「어떤 일이든 혼자 처리하지 말고 네 아내와 상의한 후 처리하도록 하라」고 한 애비의 당부가 있었기에 부인에게 상의하러 들어간 것이다. 남편의 말을 듣고 부인은 「아니 그만한 일도 처리하지 못하십니까?」하고 핀잔을 준 다음 말했다. 「소 주인이야 어찌 소 값을 물어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소를 빌려 쓴 사람은 무슨 돈이 있어 당장 소를 사주겠습니까? 죽은 거야
칼럼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무엇일까?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거짓된 성공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할 경우 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조처를 취할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실패한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된 성공은 다르다. 거짓된 성공의 길을 걷는 사람은 실제로는 중요한 것을 잃고 있으면서 자기가 성공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다. 한 사례를 보자. 예수께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마태복음 16:26) 이 말씀은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치는 사람들에게 잘 적용된다. 이것은 거짓된 성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 카운슬러인 톰 데넘은 이렇게 지적한다. “승진할 생각, 돈을 더 벌 생각,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생각만 하는 사람은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한다. 단순히 금전적인 측면에서만 성공을 평가하는 사람은 깊이가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