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무엇일까?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거짓된 성공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할 경우 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조처를 취할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실패한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된 성공은 다르다. 거짓된 성공의 길을 걷는 사람은 실제로는 중요한 것을 잃고 있으면서 자기가 성공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다. 한 사례를 보자. 예수께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마태복음 16:26) 이 말씀은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치는 사람들에게 잘 적용된다. 이것은 거짓된 성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 카운슬러인 톰 데넘은 이렇게 지적한다. “승진할 생각, 돈을 더 벌 생각,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생각만 하는 사람은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한다. 단순히 금전적인 측면에서만 성공을 평가하는 사람은 깊이가 없는 것이며
전통시장 및 마트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는 저울은 ‘계량에 관한 법률’ 관계 규정에 따라 2년마다 국가기술표준원의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무리 정확하게 저울질을 한다고 해도, 사용하고 있는 저울의 정확한 0점 조정 및 정확한 계량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확한 무게를 잴 수 없기 때문이다. 판수동 저울, 접시지시 저울, 판지시 저울, 전기식지시 저울 등 사용되고 있는 모든 저울은 그 어떤 저울일지라도 예외일 수 없다. 이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中)의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 자신의 업식(業識)에 따른 생각놀음일 뿐, 지공무사한 정견, 정사, 정언, 정행일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같은 까닭에 인도의 성자인 ‘라마나 마하리쉬’는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에게 묻는 명상을 통해 생각의 근원인 참 자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영적 수행임을 강조했다. 무념무상의 참자아가 바로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사라진 마음의 0점으로, 그 안에서는 지공무사할 뿐, 평화를 방해하는 어떠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불교 선가의 수행 과정을
칼럼 지도층 탐욕과 부패는 패망 지름길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삼국시대에 조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하면 「대담성과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제갈량을 상징하는 브랜드라고 하면 「취질계(就庢計) : 겉치레를 버리고 실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유비에게 발탁되어 27세의 젊은 나이에 촉한의 2인자인 승상자리에 올랐지만 죽을 때까지 개인적인 영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유비의 뜻을 받들고, 국가에 목숨을 바쳐 충성했으며, 승상이라는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서도 결코 개인의 사리사욕은 취하지 않았다. 위,촉,오 삼국시대는 혼란한 시기였다. 혼란한 시기일수록 국가의 조직은 단순하고 효율적이어야 했다. 국사를 집행함에 있어서 공평무사하고 청렴결백한 지도자로서 제갈량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삼국연의」 ’치란‘에서 ’겉치레를 버리고 실제적으로 나야갈 것‘을 강조했다. 춘추시대 제환공을 도와 폐업을 달성한 관중은 ’부국강병‘책과 흡사한 내용이 있다. 「무릇 치국의 길은 반드시 우선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 백성들이 부유하면 다스리는 것이 쉽고, 백성들이 가난하면 다스리는
칼럼 日本人 모르면 韓∼日 갈등 풀지 못해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미국은 과거 정부가 취한 조치에 대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서해안의 포로수용소에 일본계 미국인을 감금한 일을 공식 사죄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사죄에 더하여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생존자에게 각각 배상금 2만 달러를 지급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의 문화와 역사발전을 위해 기금을 지원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1993년에는 미국 의회가 1세기 전(前) 하와이 독립왕국을 정복한 잘못을 사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가는 역사적 잘못을 사죄해야 할 책임이 있는가? 공개 사죄를 정당화 하는 주요 근거는 정치공동체에 의해서거나 또는 정치공동체 이름으로 부당함이나 억압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부당함이나 억압이 희생자와 후손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식하여 부당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나 그것을 응호한 사람들의 잘못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 행위로서 공식사죄는 과거의 속죄를 표시하는 수단인 손해배상이나 금전지원도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희생자와 그 후손에게 미치는 부당행위의 후유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배상이나 금전지
칼럼 둔감한 사람이 오래 살 수 있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은 감각기관이다. 눈∼귀∼코∼혀∼피부 이 다섯 감각기관은 우리 몸과 마음에 외부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중요한 관문이다. 인간의 생사(生死) 문제도 이 감각기관이 그 역할을 다했는지 못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다섯 감각기관이 모두 민감해서 전문 의학서적을 탐독하면서 민감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공부했다. 그 결과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오감(五感) 즉 눈(시각) ∼ 귀(청각) ∼ 코(후각) ∼ 혀(미각) ∼ 피부(촉각)가 지나치게 예민하면 「마이너스」란 사실을 알았다. 첫째는 눈, 즉 시각이다. 눈의 시력이 너무 좋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시력은 1.0에서 1.2정도가 정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눈이 너무 잘 보여서 1.5에서 2.0이 된다. 물체가 지나치게 잘 보이는 불편함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진실로 알고 보면 이게 적지 않는 장애물이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사회에서는 1.0에서 1.2정도의 시력에 적합하도록 모든 시스템이 설계되고
매 순간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함으로써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원만 구족한 상태를 일러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행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뭔가 부족하고 결핍한 불만족의 상태를 일러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순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고요하고 또렷하게 깨어서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마음을 쏟는다면, 무엇이든 뜻하는 바를 이루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욕심을 내서 분에 넘치는 능력 밖의 일을 한다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음도 당연하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으로 인해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하면 화를 내게 된다. 화의 불꽃에 휩싸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끝내 이성을 잃고 어리석어 진다. 욕심은 화를 불러 오고, 화는 어리석음으로 이어지며, 어리석음은 다시 과욕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탐진치(貪瞋痴) 즉,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란 세 가지 독(毒)은 서로 서로를 자양분 삼아 끝없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우리를 불행의 수렁으로 추락하게 한다. 욕심이 없다면 분수 밖의 일에 마음 낼 일이 없다. 분수 밖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실패와 좌절로 화날 일이 없다. 화
칼럼 현명한 신하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에 한 임금이 있었는데, 신하 중에는 권세욕에 가득찬 간악한 신하와 매사에 공정하고 현명한 신하가 있었다. 그런데, 현명한 신하를 가시처럼 미워하던 간악한 신하는 현명한 신하가 임금을 해치려 한다고 임금에게 거짓으로 일러 바쳤다. 포악한 임금은 그의 말을 듣고 무슨 방법을 강구하여 그를 처단하라고 엄명했다. "방법이야 있사옵니다. 단지 속에 「생(生)」와 「사(死)」를 각기 써놓은 쪽지 두 개를 넣고 내일 아침에 폐하 앞에서 제비를 뽑게 한 다음, 「생」자를 뽑으면 살려주고 「사」자를 뽑으면 죽이기로 하시옵서.“ 임금은 말했다. ”거참 묘한 방법이군, 그런데 꼭 「사」자를 뽑게 해야 하지 않느냐?“ 간악한 신하는 간사한 웃음을 띠고 임금을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염려마십시오 폐하!“ ”음, 그러면 경을 믿고 있겠노라!“ 간악한 신하는 임금이 수락하자 하인을 시켜 쪽지 두 개에 모두 「사」자를 써서 단지 속에 넣게 했다. 간악한 신하의 흉계를 알아차린 하인은 이 일을 즉시 현명한 신하에게 알려주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다가 묘한 방법을 생각해 낸 현명한 신하는 아침에 임금이 호출하자 궁궐안
칼럼 정치도 기회비용 최소화 해야 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누구나 여러 가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개인은 능력에 따라 재산을 사유할 수 있으며, 경제의 원리에 따라 개인적인 이윤을 추구할 수 도 있다. 따라서 부동산 재산도 사유할 수 있으며, 시간의 이용도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으며, 모든 경제활동에서 누구나 여러가지 선택의 자유를 향유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누구나 각자 여러가지 선택의 자유를 향유하지만 소득과 자원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주어진 자기의 소득으로 여러가지 물품을 구매한다. 만약 소득이라는 제약조건이 없다면 누구나 고급 호텔에서 잠을 자고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고가의 외제 자동차를 탈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소득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잠을 자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돈을 저축하기도 한다. 자원에도 제약성이 있다. 만약 자원에 제약성이 없다면 인간 사이에서는 경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생산 자원이 무한대로 존재한다면 인간은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칼럼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잭 캔 필드’의 「꿈을 도둑맞은 사람들에게」란 저서를 보면 나폴레온 힐이 에디슨을 처음 인터뷰 했을 때의 대화가 나온다. “에디슨 선생님, 전구를 발명하려고 수천 번에 걸쳐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뭐라구요? 저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수천 번의 학습 실험을 한 거지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충분한 학습 실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수천 번의 학습 경험을 가진다.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도 다른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걷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두 번 세 번 혹은 사오십 번 실패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이 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 만큼 충분히 학습했다고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한 번 밖에 경험하지 않았으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여기고 포기한다. 과거에 한 번이나 두 번 혹은 그 이상 많이 실패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시 실패할까 두렵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에디슨처럼 몇 번 실패했다고
칼럼 인간의 수명, 업보에 따라 결정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바의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의 모습이 천태만상이라고 하는데 이를 요약해 보면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사실상 기술을 배우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농사를 짓는 것도 이 모두가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벌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이며, 인생살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명예를 누린다고 해서 인생을 인간답게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평을 들을 때만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0세에서 50세 사이를 중, 장년이라고 하고 50세 이후를 말년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말년이 되어야만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며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또한 이 시기가 되면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 보게 되고 후회도 하게 되며 못다한 일들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참맛을 느낄정도 라면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와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멋없고, 덧없는 인생이지만 어
칼럼 마음속의 재물도 보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42장경」에 사람의 목숨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다. 어떤 비구는 사람의 목숨이 수년지간에 달렸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며칠간에 달렸다고 했으며, 하루에 달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음식 먹는 사이에 달렸다고도 하였다. 끝으로 부처님은 “사람의 목숨은 아주 소중한 것이다. 소중한 생명이 짧은 순간의 숨쉬는 사이에 달렸으니 호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햇빛이 있을 때는 햇빛의 소중함을 모르고, 강물이 흐르고 있을 때는 한 방울의 물이 소중함을 모른다. 그러므로 숨을 쉴 수 있을 때는 들이쉬는 이 「숨」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지 못한다. 사람에게 숨이 끓어지게 되면 친지, 권속이 자신에게 무슨 중요한 것이 되겠는가?” 하셨다. 호흡은 눈처럼 보는 것만 아니라 환경의 변화를 느낄 수 있으며, 호흡은 귀처럼 듣는데 쓰이는 것만이 아니라 분위기가 다른 것도 파악할 수 있다. 호흡은 외부 환경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으며, 마음속의 움직임도 관찰해 낼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의 즐겁고 가벼운 마음이라는 것을 느
칼럼 불교, 존귀한 인생이 되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종교란 으뜸 종(宗)자에 가르칠 교(敎)이다. 으뜸가는 가르침이란 의미다. 「으뜸」이란 다른 가르침과 비교하여 가장 뛰어나거나 수준이 높다는 의미는 아니며, 우주의 인생에 관하여 진실된 모습 그대로를 밝혀주는 절대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생이라고 하면 우주 생성의 근본적인 원인에서부터 모든 생(生)과 사(死)에 대한 진리까지 진실 그대로를 밝혀주는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고 연구나 관찰없이 무조건 믿는다면 맹신(盲信)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 초기에는 인도 전역에 많은 종파들이 있었고, 종파마다 자기들의 가르침이 으뜸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때 어떤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부처님, 여러 스승들은 모두가 자기의 가르침이 제일이라고 하니 어떤 가르침을 믿어야 옳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삼증(三證)하는 바의 가르침을 믿어라”고 하셨다. 물리적으로 증명되고(物證), 이치적으로 증명되고(理證), 현실적으로 증명되는(現證) 가르침을 믿으라고 하신 것이다. 어떤 가르침이 종교인지를 바르게 판단하는 지혜를 일러준 것이다. 불교는 현실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