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집착함이 없는 공(空)의 자유로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있지 않다(竹影掃階塵不動)」 이 선어를 자세히 설명하면 대나무에 바람이 불어 그 그림자가 섬돌 위를 휩쓸고 지나가지만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라 섬들의 티끌은 그대로인 채 일지 않는 가는 것이다. 이 글에 이어 「달이 연못 속을 비추지만 물에는 흔적이 없다(月芽潭低水無痕)」 즉 달빛은 깊은 연못 밑바닥까지 비추지만 물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이 모두가 집착없이 자기를 잊은 공(空)의 자유로운 행동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어떤 일에도 얽매이지 않는 움직임 하나하나를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채근담」에서는 이런 생각을 다소 유교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유가(儒家)에서도 말한다. 「물이 급하게 흘러가도 주위는 조용하고, 꽃이 자주 떨어져도 내 마음은 조용하다」 사람이 이런 마음을 잊지 않고 일에 대처하면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 수 있다. (吾儒云水流急境常靜 花落蜼頻息自問 人常此意以應事接物 身心河等自在) 「대 그림자가 섬들을 쓸어도 티끌하나 일지 않는다」와 「물이 급히 흘러가도 주위는 조용하다」는 말은 「달은 연못속을 비추지만 물에는 흔적을 남기지
칼럼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 할 것이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계급이 없는 사회, 즉 계층의 구분이 없는 사회는 가능할까?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독립 선언서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이 자명한 진리를 옹호한다. 정신과 몸의 불평등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본성을 만드실 때 너무나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이나 정책으로도 결코 그것을 완전히 평등하게 만들 수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꿈꾼 평등주의 사회가 나타난 적은 없었다. 인간은 전혀 평등하지 않으며, 계층 간의 차별은 여전히 사회의 뚜렷한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러한 계층 간의 차별로 인해 사회 전반에 어떤 유익도 얻지 못했다. 사회 계층에 차별을 두는 제도는 사람들을 분열시켜서, 시기와 증오와 상심과 많은 유혈 사태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한때 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존재했던 백인 우월주의 사고방식은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왔다. 그중에는 반디멘스랜드(지금의 태즈메이니아)에서 자행된 원주민 학살 행위도 포함된다. 유럽에서는 유대
칼럼 기업의 고객 중심 전략을 세워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오늘날의 시장경제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코스트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이지 제품이나 기술을 가진 기업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업이 자유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래와 차별화된 조직과 구조가 필요하다. 고객 위주의 기업에서는 직원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직의 활성화에 따라 지금까지 피라미드 저변에서 명령에만 복종하던 직원들에게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다. 즉 전통의 계층적 기업구조에서 수평적인 구조로 변한다. 제품이 아니라 고객에 주도하는 서비스 업계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객 위주의 기업에 되려면 우선 최일선에 있는 직원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가 직원들의 자발적으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은 경영자의 수완과 능력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직원들이 맡은 바 직무를 지혜롭게 수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도록 노력하는 리더가 바로 경영자인 것이다.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실천에 옮기도록 하기 위해 직원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경영자가 무관심
칼럼 개인보다 집단의 우수성을 중시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때였다. 패튼(pateon) 장군은 어느날 연합국 고위급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장시간 계속되자 패튼이 피우던 담배가 동이 나고 말았다. 패튼은 보좌관 해군 중위 부치(booch)에게 담배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부치는 패튼이 마음대로 피울 수 있도록 담배 한 보루를 탁자위에 놓아 두었다. 담배 골초였던 패튼 장군은 줄 담배를 피우다 순식간에 한 보루를 다 피우고 말았다. 회의가 끝나고 나자 패튼은 부치 중위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담배를 빌려줘서 고맙네. 아주 맛있게 잘 피웠네. 나중에 시간이 나면 갚겠네.“ 부치는 대수롭지 않은 듯 흘려 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수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부치 중위는 오래전 그 일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런데 뜻밖에 소포가 배달되었다. 바로 패튼이 보낸 최상급 담배 한 보루였다. 패튼은 사방으로 연락처를 수소문 하다가 어렵게 부치 중위의 연락처를 알아냈던 것이다. 부치 중위는 매우 감복했다. 패튼 장군은 지난 날 부치 중위가 건성으로 한 말을 바쁜 군사업무 속에서도 기억해 놓고 잊지 않았던 것이다. 부치 중위는 만나는 사
칼럼 신의로 살아가면 인생이 편안하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장을 보러 집을 나서자, 어린 아들이 어머니를 따라 가겠다고 치맛자락을 잡고 울며 떼를 쓰자 아내는 아들에게 말했다. “착하지, 엄마가 잠간 장에 갔다고 돌아오면 돼지를 잡아 맛있게 볶아서 줄게, 잠시만 기다려라.” 돼지고기를 맛있게 볶아 준다는 말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놓아 주었다. 얼마 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깜짝 놀았다. 남편이 칼을 갈며 돼지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재빨리 가까이 남편에게도 달려가 말했다. “아니 정말로 돼지를 잡을려고 하십니까?” “그렇소” “아까는 아이를 달랠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정말로 돼지를 잡겠다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증자는 심각한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고 말했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게 마련이오. 그런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가르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오? 오늘 내 자식에게 거짓말을 하면 다음에는 옳은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가르치기
칼럼 단추 하나 때문에 참패한 나폴레옹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폴레옹 군대는 가장 막강했던 1812년 6월에는 병력수가 60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막강한 군대가 그해 12월에는 1만명 이만으로 대폭 줄었다. 나폴레옹은 빨리 군대를 재건하고 불안정한 수도의 정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근위대를 뒤따라 오게 하고 일부 측근들만 대동하여 전선에서 출발, 파리로 향했다. 총지휘권은 뮈라에게 인계했는데 나폴리 왕이기도 했던 뮈라는 빌뉴스를 포기하고 남은 군대와 함께 얼어붙은 네만 강을 건너 바르샤바로 후퇴한 후,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왕국 내에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외젠 드 보아르네에게 총지휘권을 넘겨주고 나폴리로 떠났다. 남아 있는 병사는 원정 직전과 비교하면 얼마 되지 않아 네만 강 서쪽에 도착한 때에는 나폴레옹 병력은 겨우 5천여 명만이 싸울 수 있는 상태였다. 마크도날이 이끄는 라트비아의 나폴레옹군은 그해 12월 20일 철수를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남은 병력은 누더기 같은 군복을 걸치고 서(西)러시아 보리소프 인근의 베레지나 강을 건너 모스코바로부터 멀어지는 길고 긴 퇴각 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때 러시아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생존한
칼럼 적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쟁에 있어 수비는 내가 하기에 달려 있으므로 완벽하게 할 수 있으나, 적에게 이기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옛부터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철벽 수비를 한 다음, 적이 약점을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1943년 1월, 스탈린 그라드에서 승리한 후 퇴각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던 소련군은 독일 최고 지휘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교묘한 후퇴작전과 보급로 차단으로 3월에는 우크라이나 동단에서 진퇴양난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소련군을 남북에서 협공하여 격파시키고, 단번에 동부전선의 전황을 만회하려는 히틀러 총통의 제안으로 실행된 것이 「세계 최대의 전차전」이라는 불리는 「치타델 작전」이다. 군사적으로 이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작전이었으나, 히틀러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즉 작전 개시를 너무 늦춘 것이다. 그는 이 계획을 더욱 완벽하게 실행하기 위해 소련의 우수한 T-34 중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티거를 확보하기 위해 3개월이라는 시간을 낭비하면서 결국 소년측이 미리 대비할 시간을 주었다. 이때 소련군이 취한 전법은
칼럼 사슴도 섰다가 앉았다가 하지요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느 시골에 청년이 장가를 들었는데 아내가 매우 예뻤다. 그래서 이 청년은 아내를 매우 사랑해 밤마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사는 동안 아내는 부부관계의 희열을 알았고, 이웃에 사는 한 총각과 눈이 맞아 두 사람은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남편은 아내가 이웃 총각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아내가 너무 예쁘니 항상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하루는 종일 집을 떠나 있게 되자 그는 아내에게 한 가지 장치를 해 놓으려고 마음먹고 아내를 불렀다. “여보! 당신이 너무 예쁘니 내가 아침부터 밤까지 집을 비우게 되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당신 옥문 양쪽 허벅자에 사슴을 한 마리씩 그려 놓을테니 내가 없는 동안 누가 당신을 유혹해도 절대로 넘어가선 안돼요. 내가 돌아 와서 그려 놓은 사슴이 그대로 선명하게 있어야지 만약에 조금이라도 지워졌으면 당신을 의심을 의심할 것이오.” “예. 그렇게 해 놓고 마음 놓고 잘 다녀와요.” 아내는 옷을 벗고 반듯이 눕자 남편은 벼룻집을 가지고 와서 먹을 갈더니 오른 손에 붓을 들고 왼손으로는 아내의 옥문 두둑을 짚고 몸을 구부려 열심히 양쪽 허벅지
칼럼 실패해도 성공적으로 실패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당신이 현재 2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돈을 사용하지 않으면 영원히 2억이겠지만 잘만 굴리면 3억도 되고 4억도 될 수 있다. 2억이 4억으로 되면 누구나 사용하는 게 좋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돈을 불리기 위한 돈의 사용법, 즉 현명한 투자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골동품 수집가는 오랜 세월 수집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눈이 트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역시 돈을 쓰다 보면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비즈니스에 있어서 돈을 잘 쓴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현명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 해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골동품 수집가 역시 처음엔 몇 번씩 속아 비싼 가격에 구입하기도 하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이러한 지출은 「수업료」인 셈이다. 경영자는 누구보다도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수업료를 내는 것을 꺼려해서는 배울수도 없고 성장 할 수도 없다. 절대로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경영자는 적극적인 투자를 결코
칼럼 통치자는 사람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 한(韓)나라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누워 있었다. 그때 전관(典冠)이 군주가 잠든 것을 보고는 추워서 감기라도 들까 염려하여 옥체위에 옷을 덮어 주었다. 소후는 잠에서 깨어나자 대단히 기뻐하면서 신하들에게 누가 옷을 덮어 주었느냐고 묻자 신하들은 전관이라고 하자, 관모(冠帽)에 관한 일을 맡고 있는 전의(典衣)와 옷을 덮어준 전관 두 사람을 처벌했다. 여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에게 옷을 덮어 준 것이 왜 나쁘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데 왜 처벌했을까? 그 이유는 임금과 신하간에는 사사로운 개인 감정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엄격한 규정 때문이다. 군주가 낮잠을 자고 있다면 옷을 담당하고 있는 내관이 덮어 주는 것이 마땅한데도 내관은 방심하여, 다른 사람으로의 손을 빌렸으므로 결국 직무를 태만히 했고, 전관은 자기의 직무가 아닌 일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군주의 의관을 담당하는 내관이 있는데, 전관이 자신의 직무 범위를 벗어 났다는 것이다. 소후는 추위에 병에 걸리는 것을 즐겼던 것이 아니라 직무의 권한을 범하는 것은 감기보다도 더 큰 해(害)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칼럼 핵 보유국이 핵 포기한 국가는 없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세계2차대전 발발 당시 21세였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비롯한 동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될 때 계급은 중위였다. 그는 함부르크 정부의 경제부서에서 근무했다. 함부르크시청에서 내부참사관(Innensenator)으로 일하던 1962년 2월, 엘베강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는 재난대책을 진두지휘, 경찰, 군병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함부르크시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크게 줄였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 서독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각종 납치와 테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교훈을 얻은 슈미트 내각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며 일괄적인 강경대응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7년 소말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루프트한자의 민항기를 납치하자 특공대를 파견해서 민간인 피해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거한 사건이다. 그는 1972년 미·중 간의 교류로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자,
칼럼 공허한 인생을 살지 말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유태인 속담에 「만일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면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지지 않는 것을 하늘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몸이 매우 불편한 어느 미국인 집에 도둑이 들었다. 상당한 재산을 잃은 이 미국인에게 어느 친구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런 내용의 답장을 썼다. 「편지 고맙네, 하지만 사실 나는 지금 마음이 아주 편하네. 왜냐하면 도둑이 내 물건만 훔쳤갔지 내 생명은 다치게 하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 편한 이유이고, 도둑이 가져간 것은 내 재산의 일부라 매우 다행스러운 것이 두 번 편안한 이유이고, 전 재산이 아니라 일부를 가지고 간 것이 세 번째 편안한 이유라네. 그런데 그 보다 더 다행한 것은 내가 도둑질 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것을 훔쳐 갔다는 것일세.」 언듯 들으면 바보 같이 들리는 말이지만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떠한 고난이나 역경을 만나도 긍정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굴까? 바로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즈벨트’이다. 그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네 번이나 연임한 대통령이다. 이처럼 위대한 사람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