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바르지 못한 정치는 적을 이기지 못해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위나라 관구검은 고구려(동천왕)를 침공하여 위험에 빠뜨린 적이 있어서 한국인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인데 훗날 사마사와 싸우다가 힘없이 패하고 만다. 어떤 사람들은 관구검을 위나라의 마지막 충신으로 알고 있지만 중국 역사를 보면 그는 성공하지 못한 관원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통치나 싸움은 권력에 대한 야욕이나 지배층의 권력 쟁탈에 그칠뿐 절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다. 반대로 가흑한 착취에 저항하여 일어난 민중의 봉기는 한 때에는 욕을 먹었다 하더라도 후세에는 높은 평가를 듣게 마련이다. 한(漢)나라가 위(魏), 촉(蜀), 오(吳)로 쪼개져 위주 조조와 촉주 유비가 싸울 때 유비는 언제나 백성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점령지에 입성해서도 백성들을 괴롭히거나 재물을 약탈하는 장수나 병사는 가차없이 목을 쳤다. 심지는 유비는 항복하지 않는 적군의 장수도 달래면서 항복을 받아내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조조는 유비와 달랐다. 관구검도 지방의 태수를 지내면서 뇌물을 좋아해 백성들의 인심을 얻지 못했고 결국 도망가다가 자신의 부하의 손에
칼럼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관의 고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수원 지방 법원의 재판장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인 21세의 임창조 씨에게 징역형을 언도하는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판사는 그날 이미 다른 5건의 형사 사건을 처리하면서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판결을 내렸지만 이 사건의 경우는 부당한 현실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다른 대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인 피고인에게 18개월 형을 선고했다. 매달 한국의 판사들은 이와 동일한 상황에 직면한다. 어떤 젊은이가 법정에서 자신을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고 밝히면, 그의 상황이 어떠하든 판사는 정해진 18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김영식 판사는 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내린 결정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서는 법관이 ‘범죄인을 처벌한다’는 의식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한 내적 갈등 때문에 그는 입영 기피에 관한 법률 규정을 근거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매월 징역형을 선고받는 여호와의 증인의 수는 40 - 50명이며 양심적 병역 거부로 현재 수감 중인 여호와의 증인
칼럼 尙同求異, 같아도 다르게 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상동구이(尙同求異)라는 말은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하라’는 말이다. 즉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더라도 그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나라 손빈이 방연의 계략에 휘말려 발뒤꿈치를 베어 병신이 되자 황급히 제(齊)나라로 도주했다. 그런데 방연의 위(魏)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하자 한(韓)나라는 합종과의 약속에 따라 제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러자 이번엔 손빈이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황급히 위나라를 공격했다. 방연은 급히 군사를 돌려 자기 땅으로 들어간 제나라 군사를 추격했다. 손빈은 군사들에게 먹이려고 첫날 밥 짓는 부뚜막 숫자를 10만 개로 정했다. 그리고 이튿날은 5만 개로 줄이고 다음 날은 다시 2만 개로 줄였다. 그러자 추격해 오던 방연이 이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 군사들은 겁쟁이로구나! 사흘 만에 5분의 4의 군사가 달아났으니 말이다. 달아나지 않았으면 군사들에게 먹일 밥을 저렇게 줄이지 않을 텐데” 이렇게 방연은 손빈의 군사를 얕잡아보고 추격했다. 그런데 매복하고 있던 손빈의 군사들
칼럼 현명한 군주가 현신을 얻는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현명한 군주는 충신을 얻고, 무능한 군주는 간신을 얻는다‘는 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충신을 얻기 위해 유능한 신하보다 적어도 나라를 배신하지 않을 인재를 택했다. 신하가 권력과 재물에 탐욕이 없어야 함을 가장 소중하게 보았던 것이다. 절대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이치에 닿는 말이다. 주(周)나라 왕 문후가 여망(呂望 : 강태공)을 얻고, 한(漢)나라 왕 유방이 장량(張良)을 얻고, 촉(蜀)나라 왕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 제(齊)나라 왕 환공(桓公)이 관중을 얻었다. 연(燕)나라 명장 악의가 여러 나라 연합군을 거느리고 제(齊)나라를 깨뜨려 빛나는 공로를 세웠다. 그래서 왕이 악의에게 벼슬을 내리려고 하자 그는 ”나는 임금의 명령을 받아 전쟁에 나가 싸우는 장수이지 조정의 신하로서는 도리를 다 하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관직을 사양했다. 촉나라 유비가 위나라 조조와 수없이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를 이끌어 낸 제갈량도 조조, 손권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 전술만 논의했을 뿐 관직에 나가 벼슬은 하지 않았다. 전국시대 첫 강국
칼럼 정치인의 신념과 표심 발언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후보 유세에서 ‘한국은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는 등 한미동맹 관계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듯한 발언을 하여 한국인의 우려를 자아냈지만 결국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그의 발언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했다고 해서 트럼프 대통령 혼자 대외정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미동맹 관계는 미국의 국익에도 영향이 적지 않는 문제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유세에서 발언한 한국방위비 증액이나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듯한 발언은 현실성이 없는 것일까? 이와 같은 발언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늘 있어 왔던 표심잡기의 발언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현재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은 나라는 일본, 한국, 영국. 호주,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한국은 방위비를 50% 부담하고 있는데, 인구비율로 보면 방위비 부담은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정치에 경험이 전연 없는 트럼프가 한국의 방위비 부담액과 부담여건을 몰라서 한 발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방위비 증액’ 뿐만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와 멕
칼럼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연락을 취하려면 3명 중 한명을 거쳐야한다는 뜻에서 '문고리'라는 말이 나왔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최순실 의혹에서 나온 3명이 있는데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이다. 많은 분들은 이 문고리 3인방이라는 통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것이다.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하는 권력의 핵심인물을 말한다. 이 3인방과 함께 안종범 수석, 우병우 수석 등을 포함해 야당의 한 국회회원은 이들을 십상시라고 했다. 그런데 최순실 의혹이 사실로 들어나면서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함께 우병,우 안종범은 현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니 아마 이들에게는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십상시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이 말은 중국 후한시대에서 나온 말인데 그후 권력의 핵심 인물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후한시대에 일어난 권력 투쟁에서 가장 큰 싸움은 여섯 번 째로 일어난 황제(영제)의 외척과 환관의 싸움이었다. 이때 군권을 쥔 대장군은 동탁이었고, 조조는 동탁의 수하에 있었다. 조정의 권신들과 결탁해 큰 벼슬을 맡게
칼럼 인간의 탐욕, 어디가 끝인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요즘 최순실 사건을 보면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 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무한한 탐욕은 과거에도 수 없이 있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최근에 발생한 군납비리, 법조·정·관계 로비 사건 등도 그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의 내면을 들어다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 돈에 대한 탐욕이다. 이런 인간의 탐욕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다. 돈을 벌 때에는 궂은일을 가리지 말고 번 돈을 쓸 때에는 어엿하고 보람 있게 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속담에서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개같이 벌어’라는 대목이다. 이 말이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무한 욕망적 자본축적 궤도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원래 개는 학처럼 귀티가 나는 동물이 아니라 먹을 것이 있으면 오물 구덩이에도 들어가는 동물이다. 그런데 그런 개처럼 돈을 벌라고 했으니 어찌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이 속담이 생겨날 당시의 경제상황은 아마 못 먹고 헐벗은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칼럼 유태인의 힘을 배워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마이 모니 데스’는 1135년 코르바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랍 학자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유태민족의 역사 가운데 뛰어난 사상가이며 더러는 제2의 모세라고 불린다. 그는 부친 ‘마이몬 벤 요셉’에 의해 꼭 랍비(지도자)를 교육시키듯이 길러졌다. 어렸을 적에 아랍인 학자에게 맡겨졌는데 어리지만 당시 알려져 있는 모든 분야의 학문에 관해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코르도 바’가 이슬람의 광신적인 종파인 ‘아르모 하데스’에 의해 공격을 당하자 함락되기 직전 ‘마이 모니 데스’ 일가는 거기서 빠져 나와 12년 동안 방랑 생활을 했다. 그는 한 때 페즈에서 이슬람 교도로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마이 모니 데스’는 유태인의 전통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가까스로 처형을 면했다. 그후 페즈에서 아크라로 옮겼다가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은 아직 십자군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당시 ‘포스타트’라 불리던 카이로에 정착했다. 여기서 ‘마이 모니 데스’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에 온 힘을 쏟았고 결국 사라딘 교관의 시의(侍醫)가
칼럼 지성으로 유지되는 강한 힘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유태인은 바빌로니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아랍인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하여 유태인이 방랑의 생활을 보내고 있는 동안 바빌로니아 제국, 페르샤 제국, 페니기아 제국, 힛타이트 제국 등 강대한 제국이 쇠퇴해 갔다. 중국, 인도, 이집트 같은 오랜 민족도 그렇게 됐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도 흥했다가는 쇠망해가는 과정을 되풀이 해 왔다. 물론 그들은 국외로 추방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에 살고 있는 그리스인과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로마인은 이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못한다. 하지만 유태인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기네의 이상에 따라 노력해 왔다. 3천년 동안이나 나라가 없어 지내 왔는데도 이질문화 속에서 스스로의 독자성을 잃은 적이 없었다. 유태인은 자기들의 말이 아니라 이민족의 말을 사용하면서도 많은 업적을 남겨왔다.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아랍어, 라틴어, 그리스어와 같은 모든 언어를 유태인들은 사용해 왔다. 유태인은 자기네 국가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힘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무엇일까? 이미 기원전부터 유태 민족은 소멸할 위험에 빠져
칼럼 미실을 떠올리게 하는 순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요즘 최순실이라는 여자가 대한민국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온 국민의 분노가 터져 나라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이는 한 여자가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신라의 박미실을 떠올리게 한다. 신라 진흥왕 중반기에서 진지왕을 거쳐 진평왕 초기까지 약 40년간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손에 쥐고 군권까지 잡았던 여자는 박미실(朴美室)이다. 박미실은 제2세 풍월주 박미진부의 딸이다. 미진부의 부친은 아시공이며 어머니는 법흥왕과 소지왕 두 왕의 후궁인 벽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상엽궁주다. 법흥왕은 정비에게는 아들이 없어 후비 옥진궁주에게서 아들 비대를 얻었고, 그는 비대에게 왕위를 계승하려고 했지만 법흥왕의 정비 소생의 딸 지소부인은 비대의 어머니 옥진이 골품이 없기 때문에 태자가 되지 못한다고 반대했다. 아시공과 상엽궁주가 지소부인을 지지하고, 옥진의 아버지 위화랑이 또한 지소부인을 지지함으로써 비대의 왕위 계승은 실패했다. 그 대신 지소부인과 법흥왕의 동생인 입종 사이에서 상맥종이 태어나 왕위에 올랐다. 이 분이 진흥왕이다. 진흥왕이 7살에 즉위하자 지소부인이 섭정으로 권력을
칼럼 돈을 깨끗하게 벌어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분리되어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제체제이며, 바로 그 때문에 생산력은 향상되나 생산관계가 악화돼 자본주의는 저절로 붕괴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자본주의의 붕괴과정을 현실적으로 해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좁은 골목’에 들어선 것 같지만 또 다른 발전의 여지를 자체 내에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파괴’ 과정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는 계속 발전해 왔다. 철도와 발전소의 건설, 자동차, 선박, 제철공업 등 새로운 생산 활동은 카네기. 록펠러와 같은 기업가가 창조적 파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 결과물이다. 마르크스의 예언과 달리 자본주의, 특히 미국의 자본주의는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이 없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이런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대자본가에 의한 독점기업이 생겨나며 이 독점의 경향은 흔히 ‘동맥경화증’ 같은 증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본주의는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 내기도 했지만 반면 우려스런 측면도
칼럼 학교는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떤 유태인 학생이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면접시험을 봤는데 면접관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네는 왜 이 학교에 들어오려고 하는가?” 그러자 학생은 “저는 이 학교가 좋습니다. 그래서 입학하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엔 시험관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만일 자네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학교란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니까.“ 그러자 이번엔 학생이 시험관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그렇다면 학교는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그러자 시험관이 이렇게 대답했다. ”학교에 가는 것은 훌륭한 인간 앞에 앉기 위해서라네. 살아있는 본보기로부터 배우기 위해서지. 학생은 훌륭한 랍비(유대교 성직자)나 스승을 지켜봄으로써 배우는 것이라네.“ 이 대화는 유대인의 성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2016년 6월 기준 우리나라 전국 학교 수의 통계를 보면 유치원이 8천930개, 초등학교가 5천 978개, 중학교 3천 204개, 고등학교가 2천 344개이다. 그리고 대학교는 175개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학교들이 주위에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