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오십 번째회 (50)
봉이 김선달
“ 저 선달님.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쌀을 다섯 말만 꿔달라고 하셨죠? 아니 그냥 달라고 하셨죠 ? 꿔 드리는 게 아니라 제 성의로 그냥 드릴테니 제발 지금 하시려던 그 말씀은 비밀로 해 주셔요 네? 선달님.... ”
“ 허허. 조금 전까지 없다던 쌀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모양이구려. 으흠... ”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은 술잔을 잡으면서 넌지시 비꼬았다.
“ 앗따. 그런 말씀은 마시고 어서 쌀 자루나 이리 내셔요. 그리고 꼭 그 얘기만은 남편한테 비밀로 해 주셔요. 비밀이예요? 아셨죠? 헤헷... ! ”
오달평 마누라는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애교愛嬌를 부리면서 요염한 자태로 봉이 김선달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이었다. 오달평 마누라는 자신의 부정不貞을 비밀로 해 달라는 조건으로 봉이 김선달이 요구한 쌀 다섯 말을 속은 쓰리지만 아낌없이 퍼주고 말았다.
“ 염러 마시오. 석쇠 엄마! 비밀은 내 꼭 지키리다. 아니 뭐 죽어서 무덤에 갈때까지라고 입을 봉하고 있을 터이니 그 일에 대해서는 걱정 붙들어 매시오! ”
봉이 김선달은 거뜬하게 쌀 다섯 말을 공짜로 얻어 가지고 능라도 주막집을 나오며 한마디 덧붙였다.
“ 이 다음에 내가 오거들랑 그 약주로 해장이나 시켜 주시오! ”
( 흥 세상은 이토록 추잡하고도 어수룩한 것이야 )
봉이 김선달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쌀 자루를 어깨에 둘러 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에도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은 똑 같은 방법으로 함께 꽃놀이를 간 여자들을 찾아가서 쌀을 공짜로 얻었다.
(8)
7월의 찌는 듯한 삼복 더위 속에서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은 안방에서 부채질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 어디로 훌쩍 바람이나 쏘이려 갈까? )
이 생각이 문득 머리 속에 떠오르자 한시도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길을 떠나려고 생각하니 갈 곳이 선뜻 떠오르지 않아 부채질만 하고 있는데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옳지. 황주까지는 백 오십리 길이다 ”
웬만한 사람 같으면 이 더위에 오라는 사람이 있어도 갈까말까인데 워낙 길 떠나기를 좋아하는 봉이 김선달이라 갑자기 떠날 준비를 했다.
“ 어딜 가시려우? ”
김선달金先達의 아내가 남편의 거동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 심심하니 황주엘 다녀 와야겠소! ”
“ 아니 이 더위에 그 먼 곳까지 어떻게 가시려우? ”
“ 그야 더우면 흐르는 개울물에 목욕이라도 하면서 가면 되지 황초시한테 시원한 매실주라도 얻어 먹고 오리다. 그리고 장사라도 해서 돈 냥이나 벌 수 있으면 벌어 오리다! 쌀은 넉넉하게 독에 들어 있어니 한참 동안은 쌀 없단 소리는 안할테니 걱정없이 내 갔다 오리다! ”
봉이 김선달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갓 대신 커다란 삿갓을 쓰고서 길을 나섰다.
“ 아니 여보! 노자는 안가지고 가셔요? ”
마누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