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사십 두 번째회 (42)

봉이 김선달

“ 그건 모르는 소리요. 꽃이 피었으니까 봄이 아니라 봄이니까 꽃이 핀 것이오. 말은 바르게 해야지.... 그런데 이 꽃피는 호시절을 그냥 보낸대서야 말이 되겠소. 그래서 올 봄에는 저 울밑에 살구꽃이 시들기 전에 구월산九月山으로 꽃놀이를 갔다 왔으면 하는 생각인데 석쇠 엄마 생각은 어떻소? ”

봉이 김선달은 그 뛰어난 재주에 반짝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오달평의 아내를 물끄럼이 쳐다 보았다.

“ 꽃놀이요 ? ”

또 무슨 수작이라도 부릴려나 싶어 가뜩이나 불안을 느끼고 있던 오달평의 아내는 뜻밖에도 꽃놀이라는 말에 긴장이 풀리면서 되묻자 봉이 김선달은

“ 음. 구월산으로 꽃놀이를 가자는 계획인데 석쇠 엄마가 서둘려야 하겠소 ”

“ 제가요? ”

“ 그렇소 ”

“ 구월산으로 꽃놀이를... ”

하며 오달평의 아내는 혼자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결코 싫은 말이 아니었다. 원래 놀기라면 기를 쓰고 달려드는 오달평의 아내라 그렇지 않아도 봄날에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몸이 간질간질 하던 터인데 꽃놀이라는 말을 들으니 어깨가 올라가면서 환희가 치솟기 시작했다.

“ 그럼. 누구하구 같이 가는 건가요? ”

결국 오달평의 아내는 이렇게 하여 참가의 뜻을 밝히면서 물었다.

“ 그야 물론 우리 동네 사람들이지. 억지로 가자고 할 게 아니라 누구든지 가고 싶어하는 사람만 뭉쳐서 즐기다 오자는 말이오. 남자들은 내가 모울 터이니 석쇠 엄마는 여자들을 모아 보구려. 이번에 마음 먹은 참에 구월산 구경을 해야지 언제 또 가겠소? 간다고 생각만 했다가는 못가는 법이지... 이번에 눈딱 감고 한번 갔다 옵시다! ”

“ 글쎄... 좋기는 합니다만... ”

“ 좋으면 됐지 또 뭔가? ”

“ 그저 해 본 소리지요 ”

“ 그저 할 소리가 따로 있지.. 흥 좋으면 좋다고 솔직히 말하시오 ”

오달평의 아내는 생각해 보니 김선달金先達과 같이 간다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멋들어 질 것 같았다. 평소에 공짜 술을 자주 빼앗겨 온 터이라 좀 밉살스럽기는 하지만 워낙 김선달이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짓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놀려주는 재주가 천하에 일품이라 이번 꽃놀이에도 무슨 재미있는 사건이 꼭 있을 것만 같은 예감에 가슴이 꽃송이처럼 부풀었다. 그로부터 닷세가 지났다. 선교리 마을에서는 이른바 요샛말로 표현하면 구월산 꽃놀이 관광단이 만들어져 따나려는 중이었다. 물론 관광단을 인솔하는 단장은 봉이 김선달이요 총무는 능라도 주막집의 오달평의 아내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때는 춘삼월 호시절好時節이라 꽃놀이가 무슨 큰 경사라도 되는 것처럼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로 들떠 있는데 꽃놀이를 가는 집에서는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동구 밖으로 하나 둘 모여 들고 있었다. 그날 선교리 마을의 구월산 관광단은 남자가 열 여섯 명이요, 부녀자가 열 네 명으로 모두 설흔 명이 꽃놀이의 부푼 꿈을 안고 긴 담뱃대를 기품 있게 내젖는 봉이 김선달을 선두로 해서 길을 떠났다. 일행 가운데는 마을에서도 가장 양반 행세를 잘 하는 정진사鄭進士의 새며느리가 있는가 하면 평소에는 보통 사람과는 인사도 하지 않던 윤초시尹初試, 그리고 삼대 째 서북 순찰사를 지냈다는 집안의 갓 서른이 넘은 젊은 마나님도 섞여 있어 더욱 이채를 띠고 있었다. 평양에서 황해도 구월산九月山까지는 무려 이백 오십리 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