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사십 번째회 (40)
봉이 김선달
지금도 역시 오달평의 아내는 김선달이 또 어떤 핑계로 막걸리 잔이라도 얻어 먹고 갈 것인지 신경이 곤두서고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 그래. 무슨 말인지 석쇠 엄마가 모르겠다면 내가 말 할 수밖에 없지. 사람이란 것은 무슨 일이든지 십년간 공부를 하면 그 일엔 도통을 하는 법이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염불을 줄줄 외는 것도 오랫동안 그 방면에 공부를 하다보니 도통을 해서지 머리가 썩 좋아서가 아니오 ”
“ 그럼 선달님께서 무슨 도통한 일이 있으시다는 말씀이어요? ”
칼을 쥔 오른손으로는 돼지 고기를 썰며 왼손으로는 썬 돼지 고기를 양념에 재고 있는 오달평의 아내는 지나는 바람결처럼 김선달金先達에게 물었다.
“ 도통한 일이 있느냐고? ”
“ 네 ”
“ 암. 있고 말고... ”
봉이 김선달은 긴 수염을 손으로 점잖게 쓰다듬으면서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
“ 무슨 도통이세요? ”
능청을 피우고 있는 김선달을 오달평의 아내가 힐끗 쳐다보며 되물었다.
“ 그야 물론 주도酒道지! ”
“ 주도酒道? ”
“ 글로 써면 술 주酒자에 길 도道자지... ”
오달평의 아내는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추고 김선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음. 그러니까 주도酒道에 도통을 했다는 말이오 ? ”
“ 그렇다니까...”
김선달金先達이 의미있게 대답하자 오달평의 아내는
“ 저는 원래 무식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 많은 도道 가운데 주도酒道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겠는걸요 ”
“ 하하하. 저런.. 능라도 집이라면 이 평양에서는 그래도 술잔이나 마신다는 선비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이름 난 술집인데 정작 그 주인 마담이 이토록 풍류에 어둡다는 것은 옥玉에 티가 아닐 수 없는 걸.... ”
말이 차츰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 들자 오달평의 아내는 멍청한 얼굴로 봉이 김선달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렇지. 천하에는 여러가지 도道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주도酒道란게 제일 멋지고 운치가 있는 법이오. 이 주도酒道에 도통道通하려면 보통 정성으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지... ”
봉이 김선달은 여덟 팔자 수염을 손으로 다시 의젓하게 쓰다 듬었다.
“ 그래서 그 어려운 주도酒道에 선달님은 도통 하셨다는 말씀이군요 ”
“ 암. 도통했다 뿐입니까? 눈만 딱 감고 있으면 세상 만사가 모두 환합니다. 그러니 능라도 주막집 석쇠 엄마가 돼지 고기를 써는 모습쯤이야 보지 않고도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지요 하하하...”
“ 에이구 농담은 그만 두셔요. 무슨 놈의 도道가 그런 게 다 있어요 ? ”
“ 술을 십년간 마시면 그렇게 되는 법이지. 아침에 두 잔, 점심에 두 잔, 저녁에 석잔, 꼭 이렇게 십년간 마시면 주도酒道에 도통하는 법이지. 자. 석쇠 엄마 그건 그렇고... 오달평은 여태 안 일어났소 ? ”
“ 에이구. 지난 밤부터 곳불이라도 걸렸는지 몸이 불덩이 같이 훅훅 달아 올라 끙끙 앓고 있답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