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1부 스물 세 번째회 (23)
봉이 김선달
“ 이거 저희들은 이런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살다보니 지체 높으신 도사님을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용서하시오 ”
“ 허허.. 용서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도사란 원래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가는 것인데 오는 것과 가는 것이 어디 기약이 있겠소... 오는 것도 바람과 같고 가는 것도 바람과 같으니 이 모두가 허공에 뜬 구름과 같은 것이 아니겠소... ”
어딘지 비범해 보이는 김선달金先達의 언행은 순박한 농부들의 마음을 당장 휘어 잡아 놓았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어느 사이에 그 마을에는 삼각산에서 유명한 도사님이 오셨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좍 퍼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사를 구경할려고 버드나무 아래로 벌떼처럼 모여 들더니 마침내 그 마을에서 가장 막강한 권세를 가진 박초시 영감의 귀에까지 유명한 도사가 왔다는 소문이 들어 갔다. 박초시 영감은 하인에게 도인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는
“ 뭐 ? 삼각산에서 도사님이 오셨다구 ? ”
하고 묻자 하인은
“ 그러하옵니다 ”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박초시 영감은 무슨 일 때문인지 시름에 잠겨 있다가 귀가 번쩍 트이는지 얼굴 빛을 고치면서 얼른 버드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 박초시 어른께서 오십니다 ”
박초시 영감이 나타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어른이라고 그에게 허리를 굽히면서 예의를 올렸다.
“ 삼각산에서 오신 도사님이 어디 계시느냐 ? ”
박초시 영감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김선달을 가리켰다.
“ 여기 계시는 이 분입니다 ”
박초시 영감은 김선달을 바라보고는 허리를 굽혀 예의를 올린 후 정중히 입을 열었다.
“ 도사님께서 저희 마을을 찾아주시어 영광이옵니다. 아마 오늘의 이 영광은 천지신명께서 베푸신 인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에 계실 것이 아니오라 저의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
“ 아니올시다. 말씀은 고마우나 가야할 길이 바쁜 사람입니다. 후일에 또 올 일이 있으면 그 때 가겠습니다 ”
“ 후일이라니 언제 또 여기에 오시겠습니까. 이왕 여기에 오셨으니까 저의 집에 잠간 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김선달의 손을 잡으며 박초시 영감은 간곡하게 애원했다.
“ 잠간만이라도 좋으니 저의 집에 와 주십시오. 자 어서 일어나십시오 ”
박초시 영감의 간청에 김선달은 일부러 못이기는 척 하면서 일어나 박초시 영감을 따라 그의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의 집은 대궐처럼 크고 마당도 넓었다. 그가 부리는 하인下人만 해도 십 여명이나 되었다. 그날 밤 박초시 영감과 김선달은 떡 벌어지게 음식을 차린 큰 상을 가운데 놓고 서로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초시 영감이 입을 열었다.
“ 도사님 ! ”
“ 무슨 말씀이오 ? ”
“ 한가지 저의 집에 근심꺼리가 있습니다. 이 근심꺼리를 어떻게 풀 방법이 없겠습니까 ? 도와 주시면 도사님에게 섭섭하지 않게 사례를 하겠습니다 ”
“ 근심꺼리라니 ? 무슨 일이신데 ?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