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1부 열 세 번째회 (13)
봉이 김선달
소경(장님)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김선달의 말이 옳았다. 박소경이 이렇게 말했다.
“ 이거 미안하외다. 우리가 그릇을 망가뜨려 놓았으니 마땅히 값을 물어드려야죠 ”
“ 이보시오! 지금 값이 문제가 아니오. 김진사댁 대대로 내려오는 고려자기 술병을 빌려 왔는데 그것을 깨뜨렸으니 천금을 준다고 해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소.. 아이구 이거 야단 났구만. 애당초 안 빌려 줄려고 할 때 그만 두었으면 이런 낭패 보는 일은 없었을텐데... 아이구 이를 어쩌나.. 아이구 이거 어쩌나... ”
김선달金先達의 말을 들은 소경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 이보시오 선달님! 우리가 일부러 한 일이 아니니까 우리 한번 서로 타협을 해 봅시다 ”
박소경은 점잖게 김선달에게 말했다. 역시 자기네들이 실수로 저지른 일이니 수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글쎄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가 그릇 값을 물어 드리죠 ”
소경(장님)들은 상대가 천하가 다 아는 봉이 김선달이라 어물어물 적당이 넘어갈 수 없는 일이어서 이같이 먼저 제의를 했다.
“ 글쎄 올시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김진사 댁에서 빌려 온 그릇들은 워낙 값비싼 귀한 것들이라 큰 일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나도 운수가 나빠서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니 오백 냥만 내시구려.. ”
“ 오백 냥요? ”
소경(장님)들은 오백 냥이란 말에 입이 딱 벌어지면서 당치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을 김선달金先達이 모를 리가 없었다.
“ 아니 이 봉사들이 고리대금을 해먹더니 자기 돈 아까운 줄만 알고 남의 물건은 귀중한지 모르는 모양이지.. 오 백 냥을 내놓지 않으면 못간다 못가... 김진사댁의 가보家寶를 물어 내 놓고 가거라 ! 물어 내 놓지 않으면 김진사댁에 가서 기물파손 죄로 관가에 잡아 들이라고 할 것이다.. 내 그리 하는지 안하는지 두고 보거라 ! ”
큰 소리로 호되게 다그치는 김선달金先達의 칼날 같은 소리에 소경들은 쩔쩔 매었다. 게다가 김진사댁에 가서 기물파손 죄로 관가에 잡아 들이라고 하겠다고 하자 장님(소경)들은 더욱 겁이 났다.
“ 이보시오 선달님! 우리가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오. 너무 노여워 하지 마시고 우리 말을 좀 들어 보시오. 오백 냥은 너무 과하고 삼백 냥만 받는 것이 어떻겠소? ”
그러자 김선달金先達은
“ 삼백 냥이라.. 내 그릇도 아니고 김진사 댁에서 삼백 냥을 받을지가 알 수 없구만... ”
하고 한동안 묵묵히 있더니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 글쎄 올시다. 김진사 댁에서 빌려 온 귀중한 물건들만 아니면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김진사 댁에서 빌려 온 그릇이니 김진사 댁에서 뭐라고 하실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
“ 선달님이 김진사댁에 가셔서 잘 말씀해 주시구려. 우리가 일부러 깬 일도 아니니... 잘 말씀드려 주시오 ”
“ 글쎄 올시다. 나도 오늘 일진이 나빠서 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럼 삼 백 오십 냥으로 합시다. 김진사댁에 가서 사정을 해 보겠소... 만일 안된다고 하면 내 호주머니 돈이라도 털어서 내 놓아야 하니 나도 이만 저만 손해가 아니지 않소.. 그렇게 할려면 하고 안할려면 김진사댁에 가서 기물파손 죄로 잡아 들이라고 하겠소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