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나를 살려준 남자 제9부 오십 두 번째회 (52)
나를 살려준 남자
제9부
내가 권성해 선생님과 부부가 된지 일 년이 지났다. 하지만 나에게 가수활동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는 말은 일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권성해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에게 가수활동을 하도록 밀어 주신다고 하면서 콘스트 열러 주신다고 한 것은 어찌 된 겁니까?”
"아직은 강여사님 대운이 흉운이라 지금 콘스트를 열어도 성공하기 힘들어요.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봐요.“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나요?”
“참 성질도 급하긴.. 그렇게 성질 급하게 서둘러 결혼을 하니까 지금까지 세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지. 이제 실패하면 네 번쩨 실패하는 거야. 날 놓치면 강여사님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어요. 그러니까 날 믿고 대운이 길운일 때까지 기다려 봐요. 내가 알아서 강여사를 가수로 성공하도록 해 줄테니까..”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 아니죠?”
“죽고 난후 무슨 콘스트를 열어. 딱이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말해 줄까?”
“예. 말씀해 주세요.”
“딱 5년만 기다려요.”
“그땐 제 나이가 51살인걸요.”
“51살이면 어때? 나이엔 상관 말고 기다려요.”
“그럼 그리 할게요.”
“그 대신 말이야. 지금부터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해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우리 집에 노래방이 설치될 것이요. 강여사 노래 연습 잘 하라고 우리 집에 노래방을 설치하기로 했어요. 매일 돈 내고 노래방 가는 것보다 집에서 노래 연습 하도록 해요.”
"선생님 고마워요.“
“부부간에 고맙긴 뭐가 고마워.. 가수가 되겠다는 부인을 위해 남편된 도리를 다 하는 것 뿐인데..호호홋..”
나는 권성해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 부둥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세 번이나 결혼했지만 세 번 모두 다 버림받은 나를 아내로 받아주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며 마음 편히 살도록 해 준 권성해 선생님은 나의 남편이기에 앞서 나를 살려준 은인이었다.
그 해도 지나고 가을 어느 날이었다. 나는 화장실을 가도 볼 일을 다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나는 권성해 선생님과 함께 동네 작은 병원에 갔다. 의사는 X레이 사진만 한 장 찍어 주고는 이 사진을 들고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였다. 이미 위장암 세포는 몸에 여기저기 퍼져 대학병원에 갔다.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권성해 선생님은 담당 의사에게 우격다짐으로 수술을 간곡히 부탁했다. 수술을 하고 지루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속은 메스꺼워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권성해 선생님은 못먹어면 죽는다고 하면서 억지로 먹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더라도 내가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권성해 선생님은 내가 입원한 병실에서 하루 24시간 눈물 겹도록 나를 간호해 주었다.
“강여사님! 죽어선 안돼요. 꼭 살아야 해요. 죽지 않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할게...꼭 살아야 해.. 강여사님! 힘을 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성해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모래알처럼 껄꺼러운 음식을 입에 무조건 쑤셔 넣고는 삼켰다. 아무 맛도 느낄 수 없고 씹는 것조차 무척 고통스러웠다. 나는 속으로 부처님에게 기도했다. 내가 살아서 권성해 선생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도록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만큼 권성해 선생님은 나의 남편이며 나에게 은혜로운 사람이었다. 권성해 선생님은 하루 24시간 내 옆에 붙어 혼신의 힘을 쏟았지만 나는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수조차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