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칼럼 = 공동체의식, 집단 이익과 권위 존중해야

2024.08.05 09:58:01

 

 

칼럼

 

 

           공동체의식, 집단 이익과 권위 존중해야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극작가

 

 

지난해 사건으로 기억된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어느 시(市)의 한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가 추락해 사망했다. 15층에 살던 아파트 주민이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밧줄을 끊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시적 분노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6년전 내가 경남 양산시 동면 석산리의 단독주택에 거주할 때 집 대문앞에 수시로 승용차를 주차하는 젊은이에게 다른 곳으로 차를 옮겨달라고 하자 “도로가 니네 땅이냐”고 하면서 욕설을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인근 공터에 쓰레기를 투기하고 소각하자 삼가해 달라고 하자 xxx라면서 욕설을 하는 일도 있었다. 빈번하게 이런 일을 당한 나는 마음이 몹시 상해 양산시 민원을 냈고, 경찰지구대에 찾아가서 모욕죄에 해당지 여부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내가 계산해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불편한 점이 더 많아 아파트로 이주했다) 얼핏보면 사소한 일 같지만 우리나라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유와 방종을 얼마나 혼돈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고속도로상에서 보복운전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나(我)는 있고 남(他)은 없는 천민적인 의식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김모 씨(46)가 40m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숨진 사건의 경우 김 씨는 옥상에서 내린 밧줄에 의지한 채 12층 부근 창틀에서 실리콘 충전작업 중이었고 밧줄을 절단한 사람은 이 아파트 15층에 살고 있는 서모 씨(41)였다고 한다. 사건 당시 서 씨는 아파트 외벽에서 일하던 인부 4명 가운데 2명이 휴대전화로 음악을 켜놓아 잠을 자는 데 방해가 되자 한 차례 주의를 줬다. 그러나 계속 음악이 흘러나오자 집에 있던 공업용 커터 칼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김 씨의 밧줄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 씨는 욱하는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당시 경찰은 파악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은 공동체 의식이 발현되어야 한다. 공동체에서의 개인의 미분화(未分化)는 바꾸어 말하면 공동체내의 타성원(他成員)과 생활의 전영역에서 밀접한 관계가 유지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하나의 대립적인 관계가 다른 전체 생활면의 적대관계로 확대되어 간다. 이러한 관계는 다음의 대화 중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렇게 해 봤자 너만 손해다” “나중에 너만 미움 받는다” “후환이 두렵다” “뒷탈이 나지 않을까?” “뒷일을 항상 생각해야지” 그들은 하나의 감정 대립이 가령 그들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 후의 전체 생활에 적대관계로 확대될 것을 엄려하여 조심성 있게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한다. 감정에는 희노애락이 있다. 하지만 기쁘지 않을 때도 늘 웃거나 화를 내지 않아야 할 때 화를 낸다면 정상적인 이성의 소유자는 아닐 것이다. 오늘날 사회의 구성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이성(理性)과 감정(感情)을 혼동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즉 이성적인 생활과 감정적인 생활을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만일 오로지 지식만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학교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육은 인간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배우는 데 무게를 두기 보다는 사회에 나가 성공과 출세의 수단이라는 인식이 농후하다. 물론 성공과 출세도 중요하다. 하지만 인품이나 인격이 결여된 성공이나 출세는 사회공헌에 기여하기는 어렵다. 내가 내 몸을 다스리는 것은 내 마음이 깨끗함이요, 내 눈의 작용이 밝음은 사물을 보는 안목(혜안)이 명쾌함이요, 내 귀의 작용이 분별함은 내 청각이 청청함이요, 내 혀의 작용이 올바르게 움직임은 내 혓바닥이 부드러움이요, 내 코의 작용이 악취를 걸려냄은 코가 건재함이다.

 

유리창을 깨끗이 잘 닦아야 밖의 사물이 잘 보이듯이 나와 남이 다 함께 공존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자면 자신의 잘못된 인식 장치를 허무는 일이다. 즉 공동체의식(community sentiment)을 가져야 한다. 공동체의식은 우리 사회가 공동 일원이라는 의식이나 생각(감정) 또는 사람들을 동일한 집단의 공동사회에 결부시키는 계기로 삼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거나 공동으로 관리하거나 이용하거나 하고 있다는 물적 기반을 통한 것과, 일체라거나 귀속하고 있다는 의식이나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을 말한다. 개인이 모여 집단이 구성되기 때문에 개인 각자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하듯이, 개인들도 집단의 이익과 조직의 권위를 존중하고,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하며, 이러한 생각과 태도가 공동체 의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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