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작소설 - 천.지.인.명(天地人命) 제4부 스물 한 번째회 (21)

  • 등록 2017.03.30 21: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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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4부 스물 번째회 (21)

 

. . .

 

 

팽만수는 서슴치 않고 봉순의 방문을 홱 열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로

() ! ”

하고 큰 소리를 지르고는 다시 문을 닫고 뛰어 나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봉순은 어리둥절하여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더구나 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팽만수(彭萬洙)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소문을 퍼뜨렸다.

나는 우리 동네 박첨지의 딸 봉순이와 궁했다

묻지도 않는 말을 하루 종일 떠 벌렸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이 소문은 순식간에 온 동네에 퍼졌다. 이름난 부자(富者) 박첨지댁 일이니 두 사람만 모여 앉으면 이 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여보게들. 팽만수가 박첨지 딸을 건드렸다는 말이지 ? ”

와 아니래...”

그게 사실일까 ? ”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리 없지 않나... ”

하긴 그렇구만.. 사실이 아니면 소문이 날 까닭이 없잖은가 말이여..”

팽만수가 못배워 무식하기는 해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네.. ”

팽만수도 이제 스무살이 넘은 노총각이니 있을 법도 한 일이지

하지만 박첨지가 팽만수에게 딸을 줄까 ? ”

안주면 별 수 있나 ? 이왕 이런 소문이 난 바에야 다른 혼처를 구하기도 어렵지... ”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좀처럼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이런 소문이 박첨지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문을 듣고 화가 잔뜩 난 박첨지는 밤새도록 딸을 앞에 앉혀 놓고 이러저리 추궁했다.

아버님 ! 저는 그런 짓을 저리른 일이 없사와요

그런 일이 없는데 왜 소문이 났느냐 그말이다

“ ..............”

그걸 어찌 소녀가 알겠습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아버님 ! ”

눈물을 흘리는 딸의 얼굴 모습을 보아서 설마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박첨지는 소문의 진원지를 알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박첨지는 팽만수란 놈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스무살이 넘도록 장가를 못가고 있는 그 팽만수란 놈이 꾸며낸 장난이 틀림 없을성 싶었다.

당장 팽만수란 놈을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라 어서 ! ”

박첨지는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온 동네에 쫙 퍼진 추잡스런 소문이 없어질 까닭도 없거니와 도리어 꼬리를 물고 더 뒤숭숭해질 것만 같아 박첨지는 속이 상한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일일이 동네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해명을 하자니 그것도 양반된 체면에 못할 일이었다.

귀여운 딸에게 있지도 않는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서 사흘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박첨지는 고을 관가에 억울하다는 내용의 소송을 제출했다. 소장(訴狀)을 받아 본 고을 원님은 포졸을 시켜 당장 팽만수와 박첨지 그리고 박첨지의 딸인 봉순을 불러 들이게 했다.

동헌(東軒) 높은 자리에 앉은 원님은 마당에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있는 세 사람에게 동헌이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호령을 퍼부었다.

내 말을 잘 듣거라 ! 본관이 이 고을에 부임해 온지 삼 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런 송사는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송사는 내가 각별히 엄하게 다스려 그 진위를 가리고자 하니 본관이 묻는 말에 추호도 거짓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만일 너희들이 이실직고(以實直告) 하지 않으면 관가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한 죄로 무거운 벌을 받을 것이다 알겠느냐 ? ”

......”

세 사람은 더욱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 팽만수에게 먼저 묻노라 ! 그 때 너는 박첨지의 딸이 거처하는 방으로 가서 궁한 사실이 있느냐 ? ”

그러한 사실이 있사옵니다

궁이라 하는 것은 박첨지의 딸과 관계를 맺었단 말이렸다 ? ”

거기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가 민망하오니 사또께서 통촉하옵소서

그렇게 말하는 팽만수는 끝내 태연스럽기만 했다.

다음 박첨지의 딸에게 묻노니 그날 팽만수가 너의 방에 와서 궁한 사실이 있느냐 ? ”

. 그런 사실이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그때 다른 사람은 없었느냐 ? ”

없었사옵니다

박첨지(朴僉知) 딸 봉순(奉順)의 대답은 팽만수가 다짜고짜로 자기 방문을 열어 젖히고 말로써 궁() ! 하고 달아나 버린데 대한 사실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서는 과년한 양반집 처녀가 춘정을 못이겨 총각 팽만수를 불러 들여 추잡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으로도 들리는 것이었다.

<계속>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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