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4부 스무 번째회 (20)
천天. 지地. 인人. 명 命
하기야 친정 어머니가 넣어 준 요강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아직 짐 속에 들어 있으니 끄집어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참고 있을려니 오줌통이 터질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러저리 생각한 끝에 초저녁에 시아버지가 주신 이상한 그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것은 필시 요강으로 쓰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며느리는 서슴치 않고 손을 내밀어 바께쓰를 잡아 당겨서 그 위에 맨 엉덩이를 올려 놓았다. 다소 불편하기는 했지만 워낙 오랫동안 참아 오던 터라 염치 불구하고 아랫배에 힘을 불끈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흘러 내리는 물줄기는 높은 절벽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 짜르렁 왕창... 쏴아... 쏴.. ”
하는 요란스런 소리가 조용한 밤 공기를 흔들었다. 이때 안방에 누워 있던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맞게 된 것이 어찌나 기뻤던지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뜬 눈으로 밤을 새면서 손자 볼 궁리에 몰두하고 있다가 아닌 밤 중에 들려 오는
“ 짜르렁 왕창.. 쏴아.. 쏴... ”
하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희얀한 소리였다. 시아버지는 불길한 생각에
“ 아가... 이게 무슨 소리냐 ? ”
하고 물었다. 며느리는 한참 사타구니에서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는데 시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만 자기도 모르게 움찔해서 쏟아내던 오줌을 덜컥 그쳤다. 그러나 물소리는 그쳤지만 이 일을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며느리는 얼른
“ 아버님 ! 갑자기 소낙비가 오는가 봐요 ”
하고 대답을 했지만 이 말은 어디까지나 얼결에 생각한 변명이었다. 며느리는 바께쓰에 올라 앉은 채 시아버지께서 또 뭐라 하실지 다음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 소낙비가 오면 나가서 장독 뚜껑이 잘 덮혀 있는지 살펴 봐야지 ! ”
혼잣 소리로 중얼거리며 시아버지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것이 웬 일인가 ? 달은 없지만 별이 수없이 반짝이고 소낙비는 커녕 가랑비도 내릴 것 같지 않은 쾌청한 날씨였다.
“ 허어.. 이렇게 맑은 하늘에 천둥이 치니 이게 길조(吉兆)인지 흉조(凶兆)인지 알 수가 없구만... ”
시아버지는 밤새 탄식을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는 바께쓰가 양바가지가 되고 양바가지가 요강으로 둔갑돼 버렸다. 그래서 보부상이나 행상(行商)들이 이 물건을 달구지에 싣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바께쓰를 팔 때면
“ 물 긷는 동이 양바가지 사려..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좋고 김치나 깍두기를 담아 놓아도 좋고 던져도 깨지지 않아 쓰기 좋은 바께쓰 양바가지 사려... 며느리 요강으로도 쓰기 좋은 양요강 사려... 자 바께쓰 왔습니다.. 쓰기 좋고 오래 쓰는 양바가지 사려... ”
이렇게 외치면서 돌아다녔다. 이러한 바께쓰 행상을 해서 돈푼이나 번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황해도 사람인 팽덕수(彭萬洙)라는 장사꾼이었다.
팽만수는 본래 양반집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이 몰락하고 선친이 가진 논밭은 투전으로 다 날아가자 벌어먹고 살 길이 없어 장사꾼으로 나섰던 것이다.
게다가 글도 못 배웠을 뿐더러 가세가 빈한 하다보니 스무살이 넘도록 장가도 들지 못해 커다란 덩치에 머리를 칭칭 땋아 늘이고 다녀야만 했다. 그러나 다행이 머리는 영리하고 천성이 부지런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만은 잃지 않았다.
그런데 팽만수(彭萬洙)는 오래전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부잣집 박첨지(朴僉知)의 딸 봉순(奉順)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박첨지의 딸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것을 팽만수 자신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꼭 아내로 맞아 들이고 싶었다.
“ 봉순을 내 것으로 만들 방법이 없을까 ? ”
팽만수는 자나깨나 그런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팽만수는 무릎을 딱 치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 좋은 방법이 한가지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 그렇게만 하면....”
팽만수는 박첨지 댁을 찾아 갔다. 초여름이라 한참 농사 일에 바쁜 때이지만 팽만수에게는 장가 드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었다. 박첨지댁 대문안에 쑥 들어서자 다행이 하인들은 모두 농사일로 들에 나간 모양이고 집에는 오직 늙은 행랑 할아범이 짚으로 새끼를 꼬다 말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 으음... 됐어.. ”
팽만수는 거침없이 안대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그리고 봉순이가 거처하는 방 앞에 가서 동정을 살폈다. 바스락 바스락 옷감을 매만지는 비단결 소리가 방안에서 흘러 나왔다. 비단을 만지는 것을 보니 봉순(奉順)은 혼자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