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3부 열 여섯 번째회 (16)
천天. 지地. 인人. 명 命
이때 좌평 성충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융(隆)을 다시 서자(庶子)인 효(孝)로 교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고 게다가 의자왕이 정사는 돌보지 않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다면서 바른 말만 하자 결국 의자왕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투옥된 것이다. 성충은 물 한 모금 밥알 하나 입에 넣지 않고 생명이 꺼져가는 중에도 이렇듯 신하의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하였고, 끝까지 바른 말만 하였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는 성충의 말을 의자왕은 듣지 않고 있다가 성충의 말대로 전쟁이 일어나자 의직(義直)이 말하기를
“ 당나라군은 멀리 바다를 건너 왔으니 물에 익숙하지 못한 군사는 배에 머물러 있기가 매우 곤란할 것이므로 그들이 육지로 내려 대오(隊伍)가 정리되기 전에 일거에 무찌르면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신라군은 당나라의 지원군을 믿고 경멸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것인즉 당나라군이 우리에게 패하는 것을 보면 겁이 나서 용기 있게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나라군과 결전하는 것이 상책인줄 아뢰옵니다 ”
그러나 달솔 상영(常永)의 의견은 의직(義直)과 달랐다.
“ 당나라군이 멀리서 왔으므로 그들은 속전속결로 싸우고자 할 것이니 그 기세를 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신라는 이미 우리에게 여러 차례 패한 적이 있으므로 우리 백제군의 기세를 보면 사기가 꺾일 것인즉 우선 먼저 당나라군의 길을 막아 그들의 힘이 빠질 때를 기다리는 한편 일부의 군사들로 하여금 신라군을 공격하여 그 사기가 꺾인 뒤에 기회를 보아 전군이 합하여 총공격을 감행하면 우리 군사도 온전하고 나라도 안전하게 지킬 것입니다 ”
이러한 상영(常永)의 말에 의자왕은 어떤 쪽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랐다. 그 때 좌평 흥수(興首)가 태자 교체를 반대하다가 고마미지(古馬彌知) 고을에 유배되어 있었다. 그래서 의자왕은 사람을 보내어 방비책을 묻자 흥수가 이렇게 말했다.
“ 당나라군은 병력 수가 많고 군율(軍律)이 아주 엄하고 체계가 잘 잡힌 위에 신라와 더불어 함께 기각(埼角)의 형세를 이루고 있으니 만약 넓은 벌판에서 싸운다면 승패를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기벌포(伎伐浦 : 백강)와 탄현(炭俔)은 우리 백제의 중요한 길목입니다. 일당백의 요새이니 용사(勇士)를 뽑아 당나라군으로 하여금 기벌포(백강)를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신라군이 탄현(炭俔)을 넘지 못하게 하며 대왕께서는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어 그들이 군량미가 바닥이 나고 군사가 지칠 때를 기다리다가 일시에 총공격을 감행하면 반드시 사직(社稷)을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때 신하들은 흥수(興首)의 말을 믿지 않았다. 상영(常永)은
“ 흥수가 오랫동안 옥중에서 고초를 꺾었기 때문에 임금을 원망하고 나라를 배신하려고 함이니 그 말을 들을 수 없사옵고 당나라 군사들이 기벌포(백강)에 들어 온다 하더라도 여러 배를 나란히 하여 올 수 없을 것이니 신라군이 탄현(炭俔)을 넘어 온다 하여도 지름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여러 날이 걸려 한꺼번에 오지 못할 것이니 이 때를 노려 군사를 풀어 들이치면 적군은 독안에 든 쥐와 같이 전멸하게 될 것입니다 ”
하자 의자왕은 이 작전을 받아 들여 당나라군에게 기벌포(백강) 진입을 허용하고 신라를 침현(탄현) 안으로 끌어 들여 일시에 공격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기벌포(伎伐浦 : 백강)와 침현(탄현) 길이 열리자 당나라군과 신라군은 해일처럼 밀려 들었고 그 위세가 너무 강해 백제군은 막아설 수가 없었다. 당황한 의자왕은 좌평(벼슬) 충상과 달솔(벼슬) 계백과 상영에게 5천의 결사대를 주고 황산(논산)으로 가서 신라군의 공격을 막도록 명령했다. 계급상으로는 5천 결사대의 총지휘자는 좌평 충상이었지만 결사대를 이끌 사람은 장수인 계백과 상영이었다.
그런데 장수 상영(常永)은 당나라군에게 기벌포(백강)을 열어주고 신라군을 침현(탄현)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는 엉터리 전술을 내 놓은 터이라 의자왕의 신임을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 5천 결사대의 실질적인 총사령관은 장수 계백이었다.
계백은 백제의 운명을 지고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논산)으로 말을 타고 달려갔다. 결사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가기 전 계백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칼로 목을 베어 죽였다. 살아서 신라인의 노비(奴婢)로 사는 치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비장한 각오로 황산(논산)에 이른 장군 계백은 세 곳에 진을 치고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 용감한 백제 군사들이여 ! 옛날 월(越)나라 구차왕은 5천의 군사로 70만의 오(吳)나라 대군을 격파하였다. 오늘 우리는 각자 분발하여 싸우고 승리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다시 한번 우리는 승리를 다짐한다 ! ”
계백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자 군사들은 일제히 말 위에서 칼을 뽑아 높이 치켜들며 와아 ! 함성을 질렀다. 결사대의 함성이 폭풍처럼 하늘과 한바탕 땅을 흔들었다. 계백이 소리친 말은 월(越)나라 구천왕의 5천 군대는 오(吳)나라 70만 군대와 싸워 이겼는데 백제 결사대 5천으로 신라의 5만 군대를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았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