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1부 여덟 번째회 (8)
천天. 지地. 인人. 명 命
“저것 보십시오. 하도 좋으시니까 도련님께서 얼른 뛰어가시지 않습니까?”
“그런가 보구나”
정대감이 앞에 나섰다.
“대감마님께서도 어서 들어가십시오”
“응, 곧 뒤따라 오게”
정대감이 맷돌을 진 채 물 속에 첨벙 뛰어 들었다. 다음은 며느리, 손자 손녀 할 것 없이 모조리 물 속에 뛰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정대감 가족은 모두 물귀신이 되었다. 끝으로 강만수(姜萬洙)의 마누라 옥매(玉梅)의 차례였다.
옥매가 막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여보, 정신이 있소 없소 ? 물에 뛰어 들다니....”
강만수는 짊어진 맷돌을 벗어 던지면서 마누라 옥매를 꼭 불잡았다.
“어서 집으로 돌아갑시다. 정대감 가족을 죽일려고 내가 꾸민 일이오”
“어머. 그래요”
마누라 옥매(玉梅)와 같이 돌아오는 길에 강만수(姜萬洙)는 아직도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가엾은 장님을 구해내어 돈 몇 냥을 주고 사례를 한 후 돌려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즉시 열 두명의 정대감 첩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정대감은 용궁으로 가셨으니 다시는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오. 그래서 장대감의 논밭을 얼마씩 나누어 줄터이니 각자 집으로 돌아가 이제 마음 놓고 살아보세”
하고는 정대감의 첩실(妾室)들에게 얼마씩 논밭을 떼어 주었다.
강만수(姜萬洙)는 싱글벙글 웃으며 마누라 옥매(玉梅)를 두 팔로 힘껏 끌어 안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에서 임금 다음으로 권세를 가진 분은 문하시중 정도전 대감이오. 정도전 대감은 내가 죽인 정대감의 친척이라 이 사실이 밝혀지면 나를 참형이 처할 것이 분명하오. 그러니 논밭을 팔아 정리하고 멀리 남쪽으로 떠납시다”
옥매(玉梅)는 고개를 끄떡이었다. 강만수(姜萬洙)는 집과 논밭을 팔고는 당나귀에 몸을 싣고 마누라와 함께 경상도 남쪽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아무리 돈이 없고 신분이 천한 사람이라도 사람은 생각하며 사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돈이나 권세로 사람의 생각을 꺾어 욕망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미련한 행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