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먼저 오늘 저의 무소속 출마를 격려해주시위해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고향지역에서 지인과 그리고 고향 동창, 동문 선후배 여러분 또한 구미 각 지역에서 만사를 제쳐놓고 찾아주신 지역주민 동지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오늘 개소식은 제 무소속 출정식을 겸하고 있어서 그 뜻이 사뭇 비장합니다만 그래도 사무실 개소식의 뜻도 포함되어 있기에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기자생활을 잠깐 한 후 줄곧 공직 생활과 정당 생활에 제 인생을 다 바쳐왔습니다. 주변에서 모두들 덕담으로 제게 이런 말을 많이 해주지요. 벌써 3선을 했어야 할 경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막상 제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제 인생을 총정리 해오기 위해 인생의 노트를 펼쳐보니까 참 많은 경험과 할 말이 너무 많더군요. 제 자랑 같지만 조금 제 얘기를 말씀드리면 왜 제가 무소속을 고집하는지를 이해해주시리라 생각되어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우선 제가 갖고 있는 정치적 자신이 한 네 가지가 됩니다. 첫째 시골 촌놈이 그대로 당대에 최고가는 두 분을 모셨다는 것입니다. 우선 한국정치사에 큰 획을 그으신 故김윤환의원과 대선후보로 삼수를 하신 이회창 총재를 가까이에서 뫼시면서 참으로 볼 것 못 볼 것 다 보면서 제 것 즉 허성우식 정치 철학으로 소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다양한 정당경험입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에서 상근부대변인과 국방분과부위원장 등을 거치면서 자유선진당 전략기회위원장과 사무부총장을 거치면서 탄탄한 정당경험을 했습니다. 세 번째로 미국 대선 경험입니다. 한국이 최초로 `97 美 대선 캠프에서 미국 대통령 후보와 함께한 경험은 제게 정치적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시 미국에서 친한 메사츄세스 웰드주지의 조언으로 소위 "봉사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밝은세상봉사단을 만들어 3년 가까지 구미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의료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넷째는 사단법인 국가다지인연구소를 만들어 "국민행복창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내 정치적 이슈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 세미나를 통해 국가적 현안에 정책방향을 제시함으로서 7성급 초인류국가를 만들기 위해 정책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개인적 아픔을 한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상의용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군 작전 중 모두 전사하고 두 명의 생존자 중 한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누구보다도 국가관과 애국심이 강합니다. 이러한 저의 다양한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내 고향 구미를 향한 사랑 그리고 봉사 헌신을 하기위한 출사표를 던 졌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현실의 벽이 높았습니다. 기존 정치세력은 벽을 허물기가 사실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벽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한번 넘어야 할 산이기에 저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25년 저의 정치 여정을 걸고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도전했습니다. 반드시 당선되어 젊은 구미를 만들 것입니다. 시민이 이기는 선거, 시민이 주인이 되고 승리하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뛰고 노력하겠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누군가가 선구자가 되어 이런 기형적인 정치 형태를 바꿔야 합니다. 정치인이 시민 앞에 군림하는 시대, 시민의 하나의 표를 얻는 수단으로 보는 시대는 아주 멀리 지난 지 오랩니다. 그런데도 아직 그런 구태 속에서 행보하는 후보, 그리고 정당이 있다면 이참에 바꿔하고 바꿀 것입니다. 반드시 당선되어 출마 결심에서 밝혔듯이 저는 보수대통합의 정신을 살려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소용없습니다. 여기계시는 여러분들의 도움 없이는 저는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여기 계시는 여러분들만이 제 자산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끝으로 오늘 저를 위해 모여주신 여기 계신 분들이 제게 힘을 준다는 뜻으로 구호 제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먼저 선창하면 도와주신다는 뜻으로 뒤에 3번만 크게 따라 외쳐주시면 됩니다. "기호 9번 허성우 반드시 승리해 돌아 와라! 와라! 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