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력이나 국력은 확산이 아니라 집중하라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극작가
“힘과 에너지를 가장 강력한 한 점으로 집중시켜 보존하라. 풍부한 광산을 찾아 깊이 파는 것이 이 광산 저 광산 집적대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안겨준다. 집중은 언제나 분산을 이기는 법이다” - 권력의 법칙 - <로버트 그린>
오(吳)나라는 북쪽 국경에 인접한 국가들과 전쟁을 벌였다. 오나라는 강국이었지만 중원의 국가들과 같은 위대한 역사와 문화는 없었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영토 탐욕에 몰두한 나머지 다른 국가들을 정복하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전쟁에서 수 차례 승리를 거두었으나 곧바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쪽 전투에서 승리하면 다른 쪽 전투에서는 취약하여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고 잦은 전쟁으로 군사들은 지쳐 있었다. 오나라 책사인 오자서(伍子胥)는 오왕 부차에게 월(越)나라가 오나라의 취약점을 알아채고 침공 준비를 하고 있다고 경고 했다. 그러나 오왕 부차는 월나라를 얏잡아 보고 그저 웃어 넘겼다. 한 두 번만 더 승리한다면 중원을 차지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후 오자서는 자신의 아들을 제(齊)나라에 보냈다. 그것은 계속 전쟁을 벌일 경우 오나라는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였다. 오왕 부차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오자서에게 자결할 것을 명령했다.
오자서는 오나라가 멸망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으며 이렇게 외쳤다. “왕이시여! 내 눈을 뽑아서 성문에 높이 걸어 두시오! 나는 승리한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 도성에 입성하는 광경을 똑똑히 지켜볼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월(越)나라 군대가 오(吳)나라에 쳐들어와 성문을 통과하여 궁전을 포위하자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가 죽으면서 했던 말이 떠 올랐다. 오자서의 눈이 자신의 치욕을 자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수치심을 참지 못한 오나라 왕 부차는 저승에서 오자서가 야유를 퍼붓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두 귀를 막고 자결했다. 오나라의 이야기는 제국들이 과도한 팽창을 꾀하다가 파멸에 이르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다. 그 밖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리하게 끝없는 권력 야망에 집착했던 많은 제국들이 파멸의 길에 들어서 다시 회복하지 못한 사례는 많다.
그런데 권력 야망의 집착은 전쟁과 연결된다는 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지금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니아를 침공,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권력(장기 집권)에 대한 집착이 숨어 있다. 나라를 망친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아테네인들은 멀리 떨어진 시칠리아 섬을 점령하려고 탐욕을 부리다가 쇠망하게 시작했다. 로마는 제국의 국경을 확장하여 광대한 영토를 점령했지만 동시에 취약성을 드러내어 여러차례 야만족의 침략을 받다가 훈족(아틸라 왕)에게 멸망했다. 무익한 팽창이 그들 제국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셈이다.
오(吳)나라의 멸망은 병력을 여러 전선에 분산시켜 가까운 이익을 추구하고 먼 곳의 위험을 보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잘 말해 준다. 지금 중국도 그런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전 세계가 한반도에 시선이 집중하고 있는 틈을 노려 무력으로 티베트를 침공하여 합병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은 지금 대만을 포위하고 있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테네가 시칠리아 섬을 탐하다가 솨락한 것처럼 중국은 대만 섬을 탐하다가 쇠락하고 말 것이다. 가까운(대만 섬) 이익을 추구하다가 먼 곳(미국, 유럽) 위험을 보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아테네와 로마의 멸망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세계사를 보면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탐욕을 추구하다가 팽창한 것일수록 강하게 추락했다. 병법가 손무는 “만약 당신이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면 결코 싸우지 말라”고 경고한다. 또한 발타사르 그라시안은 이렇게 말한다. “확산이 아닌 집중을 선택하라. 완벽성은 양(量)이 아니라 질(質)에 있다. 양(量)만으로는 결코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폭 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이것 저것 손가락으로 찔러 보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집중은 탁월성을 부여하고 최고의 영웅으로 부상하게 한다” 이 말은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검술가로 기록된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를 떠 올리게 한다.
무사시는 일평생 60여 차례 검투시합을 했지만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이처럼 무사시는 냉엄한 사무라이(武士) 세계에서 최고의 승부수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로지 칼 하나에만 집착한 그의 열정은 지금도 일본 국민의 칭송을 받고 있다. “삶이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진 선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함으로써 갚아야 할 의무이며 과업이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모든 일에는 일반적인 불행, 그칠줄 모르는 노력, 경쟁, 끓임없이 이어지는 투쟁,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긴장속에서 어쩔수 없이 수행하는 활동이 있을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가짜 국회의원 눈에는 국민을 속여 부정투표를 해서라도 잡은 권력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