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중편소설 = 천강홍의장군 <13>

  • 등록 2024.09.25 15: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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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명작 중편소설 = 천강홍의장군 <13>

 

 

                                          천강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의 의병부대는 고성, 진해 창원 등지에 머물고 있던 일본군과 싸워 대승을 낚아 올렸습니다. 이처럼 곽재우 장군의 의병부대는 경남서부지역에서 일본군을 섬멸하는데 혁혁한 전과를 새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계속 내륙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본영에서 계속 병력을 조선으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 해군이 바다에서 왜군을 막아야 하는데 조선 해군의 힘이 약해 해전에서 왜군을 격퇴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계속 내륙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일본군은

동래, 감포, 사하, 구평, 다대포, 장림, 김해 등지에서 살인, 방화, 납치 등 각종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처럼 일본군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약이 더욱 커졌습니다. 진주에서는 유시민이 3천여 명의 의병을 거느려 일본군과 싸웠고, 곽재우 장군도 2만여 명 의병을 모았습니다. 특히 곽재우 장군의 의병은 함안. 함천, 의령 등 경남 서부지역에서 많은 일본번군을 무찔렀다.

1592년 5월 1일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적을 맞아 싸우기 위해 휘하의 모든 장병을 좌수영 앞바다에 집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해루에서 경상도로 출전하는 문제를 놓고 모든 장군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이 내륙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바다에서 일본군과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순신 장군은 바다를 지키며 일본군과 벌어질 전쟁에 대비하여 하루도 쉬지않고 준비에 전념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서 벌어질 전쟁에 대비하는 사이 곽재우 장군은 경남서부 내륙에 들어온 일본군과 벌어질 전쟁에 대비하느라 잠시도 쉬지 않고 의병을 모으고 지휘본부가 있는 의령 세간리 마을 느티나무에 북을 메달이 놓고 의병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등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우국충정으로 하루도 마음으로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느티나무에 북을 메달아 놓고 의병을 훈련시킨다고 하여 현고수(顯鼓樹)라고 한다)

1592년 7월, 곽재우 장군은 유곡찰방(幽谷察訪)에 제수되었고, 10월에는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승진해 조방장(助防長)을 겸했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호미산성(虎尾山城)에서 유격전을 펼칠려고 곽필승 등 부장군과 작전계획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논의가 막 끝나는데 미타산 봉수대에서 봉화가 피어 올랐습니다. 미타산은 남강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유격전을 펼치는데는 좋은 장소였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의병들에게 여자 옷을 입히고 여러 명씩 무리를 지어

농사일을 한 것처럼 꾸몄습니다. 일본군을 유인하게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남강 둔치에 굵은 쇠줄을 매달아 일본의 기마병이 지나갈 때 쇠줄을 당기어 말이 넘어지도록 했습니다. 정말 기발한 생각이었습니다.

곽재우 장군의 이런 놀라운 전술은 또 있었습니다. 의병들이 일본군과 싸울 때 숫자가 적기 때문에 일본군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호미산(虎尾山) 아래에 곡식 창고로 위장한 건물을 지어 쌀가마니처럼 위장한 왕겨를 쌓아 놓고 일본군이 곡식인줄 알고 약탈할 때 기습공격 할 계획

이었습니다.

9월 23일 드디어 일분군 500여 명이 호미산 근처 남강변에 이르렀습니다. 일분군의 100여 명은 밭에서 일을 하는 여자로 위장한 의병이 진짜 여자인줄 알고 납치할려고 하자 매복한 의병들이 기습공격 하여 일본군을 섬멸시켰습니다. 다시 일본군 300여 명이 몰려오자 곽재우 장군은 호미산에 매복해 있는 의병부대를 제빨리 출정시켰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 장군이 말을 타고 앞으로 달려 나가자 곽필승 부장군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뒤를 따랐습니다. 청환과 총통 등 각종 중화기를 한꺼번에 쏟아 붓자 천지가 진동하는 듯 했고, 이로 말미암아 죽고 다치고 도망치는 일본군이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일본군이 호미산으로 달아나자 산속에 매복해 있던 의병부대가 칼과 창으로 왜군을 모조리 사살했습니다. 다른 한 무리의 일본군은 창고의 곡식을 약탈하자 의병들은 말을 타고 달려갔습니다. 일본군은 요란하게 들리는 말 발굽 소리에 뒤를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곽재우 장군 의병부대가 추격해 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군은 당황하였지만 싸우지 않을 수가 없어 의병부대의 공격에 맞서 싸웠습니다.

 

<계속>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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