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칼럼 = 조국을 사랑하는 ‘등대지기’

2024.07.02 12:45:58

 

 

 

 

칼럼

 

 

                              조국을 사랑하는 ‘등대지기’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언어(language)는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거나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음성이나 그 밖의 수단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언어는 낱말들의 집합, 그리고 공동체가 이해하도록 낱말들을 결합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언어’를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다. 넓은 대륙에는 민족간의 분쟁이 그치기 않아 수 많은 전쟁의 상처가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이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일찍부터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민족 고유의 문자인 한문이 여러 민족을 하나로 묶어내는 끈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중국문화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한글을 창제하여 우리는 우리말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오늘날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남북이 분단된 우리나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단일민족이기에 필연적으로 통일의 합일점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은 우리가 식민통치에 들어가면서 우리 말 우리 글을 쓰지 못하게 탄압했다. 우리의 민족정신, 우리 민족이 느낄 수 있는 문화적 일체감을 파괴시킬려는 의도에서였다. 일본의 한국어 말살 정책에 따른 언어 문화의 이식은 한국과 일본 두 민족의 동화를 꾀하는 지름길이다. 이는 어떤 정책이나 공세보다도 식민통치의 효율적인 방법이다. 모국어를 지키는 일은 민족 또는 국가 존립의 핵심이다. 일본과 미국에는 우리 동포가 많이 살고 있지만 생활상은 일본과 미국이 현저하게 다르다. 일본에 사는 동포 숫자는 미국의 동포보다도 훨씬 많지만 한국어 신문이나 한국어 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재일동포 2-3세들은 간단한 한국말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재미동포는 다르다. 뉴욕의 번화가인 맨하튼에는 한국어 책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대형서점이 있고 한국어 일간지도 발행되고 있다. LA에는 한국어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 적지 않다. 미주판 한국일보, 동아일보, 복음신문 등이 오래전부터 발간되어 읽히고 있다.

 

재미동포들은 타국에서의 정서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불안과 불편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모국어로 된 신문과 책들을 읽으며 살고 있다. 우리 말 우리 글에 대한 사랑이 돋보인다. 이것이 곧 민족혼이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지켜가는 일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미국 동포간에 왜 이런 일이 생겨 났을까? 재일동포는 모두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억지로 끌려간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찾기가 힘들다. 어느 국가보다 민족 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핍박과 수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재미동포는 모두 자의적으로 미국 이민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을 모국으로 하는 미국 시민들로서 정서적으로 한국이라는 뿌리는 굳게 움켜쥐고 있다. 그들은 떳떳한 자부심으로 우리 말을 쓰고 우리 신문을 읽는다. 그들은 영어로 교육을 받고 영어로 세계 명작을 읽고 있다. 한국의 고전이나 역사소설 현대문학을 읽지 못한다면 그들은 미국식 사고방식을 지닌 미국인으로 굳어지게 될 것이다. 배달민족의 얼굴과 피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배달민족이 아닌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세계속의 한국’이 되려면 민족이 있는 곳마다 우리 문화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동포사회가 합심하여 국어교육 대책을 세워야 한다.

 

명작 중에 ‘등대지기’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조국을 떠나 평생을 타국만리에서 방랑하다가 노년에 귀국한 노인이 주인공이다. 노인은 만년에야 조국에 와서 안식을 느끼된 것은 모국어와의 뜨거운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노인은 어느 섬의 등대지기가 되어 정착한다. 식량과 식수가 없어 한 달에 한번씩 오는 보급선을 기다린다. 노인은 기력이 쇠진해 있다. 외로운 섬에서 파도소리만 그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해줄 뿐이다. 어느 날 보급선이 나타나 식량과 식수를 건네주고는 뜻밖에 소포 하나를 준다. 노인에게는 처음 받는 선물이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소포를 풀자 거기엔 폴란드어로 씌어진 몇 권의 책이 있다. 노인은 책장을 넘기며 심장이 멎는 듯한 감동을 느끼며 오열을 터뜨린다. 어린 시절에 듣던 어머니의 나직한 말소리가 책갈피에서 들려온다. 노인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노인은 책갈피에 얼굴을 파묻고 황홀한 꿈속에 잠겨들면서 다시 돌아 올수 없는 세상으로 떠난다. ‘등대지기’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의 통곡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에 대한 애정, 그것은 조국에 대한 애정이다. 모국어로 된 책을 읽는 동안 노인의 가슴 속에서 강렬하게 샘솟았던 것도 조국에 대한 애정이다. 막연하기만 했던 조국에 대한 애정이 모국어 속에서 다시 살아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핀 것이다.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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