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1부 제25회
다라국의 후예들
그리고 옥청은 아버지는 장사를 하기 때문에 상단을 이끌고 이곳 저곳 여러 나라를 다니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면서 탁순국의 거타지왕(巨他之王)은 외동딸인 미파공주가 호위무사와 눈이 맞아 도망을 쳤는데 지금도 탁순국에서는 미파공주와 호위무사를 찾는데 혈안이 돼 있다고 말을 해주다. 효동은 화들짝 놀랐다. 지금도 미파공주와 자기를 찾고 있다니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다. 하지만 효동은 애써 놀란 표정을 감추었다. 옥청은 탁순국의 거타지왕은 외동딸 파소공주가 호위무사와 임라국(대마도)으로 도망쳤다는 것을 알고 임라국 왕에게 외동딸과 호위무사의 행방을 알아내 잡아서 탁순국으로 송환하라고 사신까지 보냈다는 소식과 함께 지금쯤 잡혀서 탁순국으로 돌아갔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그 호위무사 이름이 효동이라고 한다는 말도 했다.
순간 효동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자기를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다시 임라국(대마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잡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한 효동은 혹여 미파공주가 임라국에서 잡혀 탁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임라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미파공주를 만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동의 머릿속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좀더 여기에 있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관망할 생각이었다.
효동이 고방촌의 상단에 숨어 들어와 생활한지 일년이 넘었다. 그동안 옥청과 늘 함께 있었지만 공적인 일 외에는 옥청에게 말을 건넨 일이 별로 없는 효동이었다. 어쩌다가 서로 눈이라도 마주치면 옥청의 얼굴엔 야릇한 미소가 일었지만 그럴 때마다 효동은 고개를 숙이고 민망스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그렇다고 효동이 옥청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효동은 옥청이 좋았다. 예쁜 얼굴에다 교양이 담긴 인품은 어딜 비교해도 미파공주와 손색이 없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미파공주가 탁순국왕의 딸인데 비해 옥청은 장사꾼의 딸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분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 비록 옥청이 신분은 장사꾼이긴 하지만 탁순국(진해)에서는 가장 큰 상단을 이끌고 있는 부호 세력가 딸이었다. 효동(孝童)은 탁순국(卓純國)에 와서 처음으로 여름을 맞았다.
그러나 효동은 이 상단에 들어온 후 하루도 미파공주를 잊어 본 적이 없었고 자나깨나 미파공주만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 궁금한 것은 미파공주가 잉태한 아이에 대해서였다. 지금쯤 아이를 낳았을 것이고 그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궁금했고,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는지. 살고 있으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효동은 미파공주의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조금씩 푸른빛이 바래가는 잔디 위에 달빛이 하얗게 내려 앉고 달빛 속에서 풀벌레들이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저 조그만 가슴에 무슨 감정이 있다고 저렇게 울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풀벌레 소리는 그것이 울음소리가 아니라 뒷발인가 날개짓인가를 비비는 소리라고 하지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그 속에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저토록 애잔하고 슬픈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감정, 정말 감정이란 것은 뭘까? 달빛도 풀벌레 소리도 마당가에 피어 있는 저 꽃도 다 감정이 있는 것 같고 감정이 있기 때문에 자기처럼 가을밤이 깊어지고 있음을 함께 가슴 아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효동은 후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몇 발자욱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