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우상 연재소설 - 나를 살려준 남자 제7부 사십 다섯 번째회 <45>
나를 살려준 남자
더구나 화물이 만선(滿船)이 되지 않을 때는 반쪽짜리(한빠 : 半貨) 화물이라도 싣고 인근 항구에 가서 다시 반쪽짜리(半貨) 화물을 실어 만선이 되면 그제야 목적지 항구로 떠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바다에서 살다보니 거기에 대한 대우(급료)도 육지에 비할바가 아닌 것이다.
남편이 쉽게 마도로스란 직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바다에서 몇 년만 고생하면 육지에서 십년 이상 일한 만큼 돈을 벌수 있었다. 남편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이번에 가면 영영 오지 못할지도 몰라. 아니 당신에게 실망해서 나는 이번 기회에 아주 멀리 떠났으면 싶어. 도대체 이 나라는 희망이 없어. MB 대통령 측근들이나 국회의원들 비리만 봐도 여당 야당 할것 없이 전부 도둑놈뿐이고 이 나라는 전부가 썩어서 어디 한 곳도 성한데가 없어..”
아무리 술취한 말이라 해도 나로서는 날카로운 바늘이 있는 말로 들렸다. 나는 말했다.
“당신 말대로 요즘 MB 대통령 측근들이나 국회의원들 비리를 보면 이 나라는 전부 썩어서 어디 한 곳도 성한데가 없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나에게 실망해서 이번 기회에 아주 멀리 떠났으면 싶다는 말은 무슨 말이예요? ”
남편은 혀꼬리진 소리로 말했다.
“그건 누구보다도 당신이 잘 알것 아니야? 그리고 내가 떠나면 영진이와 재민이는 희정이가 데려다 키울거야. 그렇게 하기로 희정이와 약속했으니까 당신은 이제 아이들에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야.”
“계모라고 아이들에게 학대한 일도 없는데 희정이가 맡아 키우다니요? 그리고 내가 안다니 뭘 말하는 거예요?”
“이거 이러지 말어. 내가 배를 타고 외국으로만 돌아 다닌다고 날 바지 저고리로 알면 곤란해.. 정말 곤란하다구....”
“당신을 바지 저고리로 알다니요?”
“내가 그렇게 먹통인줄 알어?”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예요 당신?”
“관 두자구... 나 술 취한 사람야.”
“속이 상해 술을 마셨군요.”
“말하자면 그래. 그렇다니까... ”
“무슨 속이 그렇게 상했는지 말해 보세요. ”
“관 두자니까... ”
나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혼자 외롭게 사는데 그것도 몰라 주는가 싶어서였다.
“난 그만 두지 못해요. 어서 말해 보세요. 도대체 어디서 누구한데 무슨 말을 들었길래 속이 상하는지.. 속이 상하는 건 난데 당신이 속이 상하다니 이건 적반하장(賊反荷杖)격이지 뭐예요?”
“떠나면 그만인데 따지고 싶지 않아.”
“마누라와 자식이 있는데 떠나다니요?”
남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누라 흥! 정말 당신이 내 마누라야? 내 마누라 맞아?”
“아니면 내 남편이 따로 있단 말예요?”
“따로 있지... 따로 있구말구...나 말이야.. 결론만 말하지.. 지금까지 내 봉급이 아마도 1억 5천만원은 될 거야. 그건 당신이 갖고 나하고 빠이빠이 해.. 위자료라구 생각하고 빠이빠이 하자구 ”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위자료라고 생각하고 빠이빠이 하자니...이건 헤어지자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남편이 김문석과 통정한 사실을 혹시 알고 있지나 않을까 싶었다. 만일 남편이 김문석과 섹스를 한 사실을 안다면 이거야말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남편의 태도가 자꾸만 그쪽으로 중심을 잡고 기울어지는 듯한 상황을 느끼면서 몹시 불안해졌다.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그리고 영진이와 재민이를 박희정이 키운다고 한 말을 통해 박희정과 만나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동안 박희정이 나에게 시큰둥하게 대한 것도 생각도 해 봐도 나에게 무슨 꼬투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 술이 너무 취했어요?”
“아직까지 양주 세 병은 끄떡없어. 그러니 술 취했단 소리는 하지 말어. 정말 당신이 말이야... 닭발을 자꾸 내밀면 그 증거를 내 놓을거야.. 아니지 닭발이 아니구 오리발이지.. 오리발 내밀지 말라 그말이야... 나한테 물증이 있다구.”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홍당무우가 되었다. 정말 남편이 김문석과 성관계한 사실을 알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