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나를 살려준 제6부 남자 설흔 네 번째회 (34)
나를 살려준 남자
현관에서 벨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영진이었다. 나는 말했다.
“왜 늦었니? 엄마가 학교로 찾아 가볼려는 참이었는데.“
“반장 뽑는다고 늦었어요.”
영진이의 말에 나는
“새학기도 아닌데 반장을 왜 뽑나?”
“반장이 다른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어요.”
“그래 누가 반장 됐나?”
“내가요.”
“뭐? 네가 반장 돼?.”
“예.”
영진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이구 우리 영진이 정말 착하구나. 아빠가 오시면 무척 좋아 하시겠다.”
나는 기뻐하면서 영진이를 두둥겨 안고 볼을 부볐다. 비록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남편이 돌아오면 좋아할 것 같아 기뻐해 주었다. 잠시 후 또 현관에서 벨소리가 났다. 내가 문을 열자 재민이었다. 내가
“왜 늦었나?”
하고 묻자 재민이는 반장이 아빠 엄마와 함께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반장을 다시 뽑느라고 늦었는데 자기가 반장에 뽑혔다고 했다. 나는 두 아이 모두 반장에 뽑히자 집안에 경사라도 난듯 기뻐 어쩔줄을 몰랐다. 나는 두 아이가 모두 반장에 뽑혀 기뻐하면서 황선엽에게 휴대폰으로 자랑을 했다.
이튿날 나는 은행에 가서 일억원을 황선엽의 은행계좌로 입금해 주었다. 나에게 일억원을 송금 받은 황선엽이 하는 말은 이렇다.
경남 김해공항과 가까이 있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택지개발 지역에 건설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향후 5년동안 5백만호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주택건설계획에 들어 있었다. 또한 인근 가덕도에는 새로운 공항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신문과 방송 등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런 보도가 나가자 투기를 노리는 부동산업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땅값이 치솟았다. 여기에 편승해서 황선엽도 이 지역의 노란자위 땅 오천평을 샀다는 것이다.
나에게 계약서와 지적도 사본을 휴대폰으로 전송해 주었다. 황선엽의 말대로라면 한 달전에 평당 삼 십만원이든 땅값이 한 달이 지난 지금에는 열 배가 넘는 평당 삼백 팔십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황선엽은 가만히 앉아서 계약서 한 장으로 엄청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국토교통부가 불야불야 이 지역을 부동산거래 신고지역으로 고시해 버렸다. 평당 거래 가격이 삼백 팔십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묶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황선엽은 이미 땅을 사 놓았던 터이었고, 거래도 끊어져 버렸다. 황선엽은 조금도 손해 볼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찌한단 말인가? 한달 내에 돈을 갚겠다든 황선엽이 돈을 갚지 않고 차일피일 하루 이틀 미루고 있어 혹시나 싶어 부산 강서구청에 가서 지적도를 떼어 보자 나는 그 자리에 풀석 주저앉아 허탈에 빠지고 말았다. 택지 개발지역은 사실이지만 이 지역은 한국토지공사가 소유한 땅이었다. 말하자면 개인에게 분양할 수 없는 땅이었다. 황선엽의 말이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계약서와 지적도 등 서류를 위조하여 나를 감쪽같이 속였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황선엽에게 사기당한 줄 알고 그녀에게 급히 전화를 했지만 이미 잠적한 상태였다. 전화를 하면 집 전화와 휴대폰 전화 모두 없어진 번호이니 다시 확인해 보라는 말뿐이었다.
황선엽이 경영하는 미장원으로 가볼려고 헨들을 잡고 승용차를 몰고 있는 나는 액세레다를 밟고 있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었고 가슴도 뛰었다. 돈도 돈이지만 서로 친한 사이에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가 싶어서였다. 빨리 갈려고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왜 그렇게도 정지신호 대기시간이 긴지 미칠 지경이었다. 평소에 3분이든 정지 신호가 오늘따라 한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황선엽이 경영하는 미장원 ‘미스황 헤어숖’ 앞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가게문을 열었다. 하지만 가게문은 굳게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가게문이 굳게 잠긴 것으로 보아 이미 어디론가 잠적한 것이 분명한 듯싶었다. 나는 또 한번 허탈에 빠졌다. 땅바닥에 주저 앉아 울고 싶었다. 그러나 창피하게 땅바닥에 앉아 울 수는 없었다. 나는 승용차에 올라 앉아 헨들을 두 팔로 두둥껴안고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