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중편소설 - 원성대왕

  • 등록 2014.07.20 14: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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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중편소설 - 원성대왕

 

 

 

           

      원성대왕

 

 

 

제1장

요즘 김경신(金敬信)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선덕왕(善德王)이 즉위하면서 이벌찬(伊伐湌)이란 벼슬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라의 관등은 17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왕 밑에 병부(兵部)와 상대등(上大等)이 있고, 이벌찬(伊伐湌), 이찬(伊湌) 이하 대하찬(大河湌)까지 5등급은 진골(眞骨)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6등급인 아찬(阿湌) 이하 9위인 급벌찬(級伐湌)까지는 6두품(頭品)만이 될 수 있고, 10위인 대내마(大奈麻)에서 11위인 내마(奈麻)까지는 5두품(頭品)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12위인 대사(大舍)에서 최하 17위인 조위(造位)까지는 4두품(頭品)만이 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진골(眞骨)만이 고관(高官)에 임명될 수 있고, 중앙은 영(令), 지방은 군주(軍主)나 사신(仕臣)에 임명될 수 있었다.

골품제도가 엄격했던 터이라 아무리 유능한 인물이라도 성골(聖骨)에서는 이벌찬이나 이찬 등의 높은 벼슬은 할 수 없었다. 왕 밑에 상대등(上大等)은 진골계 귀족의 대표라야 될 수 있고, 국정을 통괄하였다.

지금 이 상대등 자리에 김주원(金周元)이 앉아 있었다. 왕 다음으로 막강한 자리였다. 상대등(上大等) 밑에 높은 벼슬은 이벌찬(伊伐湌)이었는데 이 자리에 있다가 물러난 김경신(金敬信)은 왕(선덕왕)을 원망하면서 집에서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다.

김경신은 생각만 하면 그 놈의 김주원(金周元)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칼로 그놈의 목을 쳐죽이고 싶었다. 김경신은 울화를 참기 위해 하루하루 술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어느 날 김경신이 화를 달래기 위해 안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데 부인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대감, 매일 이렇게 술만 드릴게 아니옵니다. 후일을 도모(圖謀)할 일을 준비하시옵소서”

부인의 말에 김경신은 정신이 번쩍드는 듯

“지금 무어라 하였소? 후일을 도모할 준비라 하였소?“

“그렇사옵니다. 이렇게 매일 술로 마음을 달래신다고 가슴 속에 맺힌 화가 풀리겠사옵니까. 하오니 김주원의 목을 대감께서 잘라내든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초야에 묻혀 사시든가 하시옵소서. 하오나 대감께서 초야에 묻혀서 여생을 보내실 수는 없는 게 아니옵니까. 그러니 김주원의 목을 잘라내실 방도를 생각하시옵소서”

약간 술이 취한 김주원은 부인의 말에

“김주원의 목을 잘라낸다? 하하하. 참으로 부인의 말이 옳소이다. 암, 잘라내야지요. 잘라 내야하구말구... 내가 이대로 물러서다니 그건 아닐될 말이오. 하하하 부인의 말을 듣고 보니 참으로 새로운 용기나 나는구려... 으음..”

김주원은 입술을 지긋히 깨물었다. 새로운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지금 조정의 모든 권력은 왕과 상대등인 김주원이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는 터이라 장차 왕위 계승에 불안을 느낀 김주원이가 왕을 선동하여 김경신의 벼슬(이벌찬)을 박탈 당하게 한 것이었다. 관직을 박탈하여 기세(氣勢)를 꺾어 놓자는 속셈이었다. 이런 속셈을 김경신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울화가 치밀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왕위 계승 서열로 보아도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金敬信)보다 위라 왕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반론을 제기할 아무런 명분이 없었다.

‘김주원 네놈이 임금을 선동하여 나를 내쫒다니... 고얀놈..... 어디 두고 보자...’

김경신(金敬信)은 늘 마음속으로 김주원(金周元)을 가슴에 묻어놓고 칼을 갈고 있었다.

5월의 따뜻한 햇살이 포근히 내려앉고 있는 정원을 한가롭게 거닐던 김경신은 자기네 암탉 뒤를 쫒던 수닭이 잽싸게 암탉의 목덜미를 물고 위에 올라가 교미를 하는 모습을 보자 화가 났다. 그 숫탉이 바로 김주원의 닭이었기 때문이었다. 닭들이야 이웃끼리 서로 놀다가 입도 맞추고 성기(性器)도 부비기 마련이지만 오늘따라 김경신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 김주원의 닭이고 보니 더욱 그러했다. 하찮은 미물을 가지고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며칠전 하인 순례가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그렇지가 않았다.

순례(順禮)는 김경신의 집 여자 하인(下人)이었다. 김경신의 아버지가 하인이었던 순례 어머니를 간통하여 생겨난 아이가 바로 순례였다. 그런데 이 순례를 며칠전 김주원의 부인이 빰을 쳤던 것이다. 우물에서 빨래를 하던 양쪽 집 여자 하인끼리 말다툼을 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김주원의 부인이 순례의 빰을 친 것이었다. 사소한 여자 하인끼리의 말다툼에 양반집 부인, 그것도 상대등(上大等)이란 최고 높은 벼슬의 양반(진골)집 부인이 천한 하인을 폭행했다는 것은 김경신(金敬信)으로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하인이라고는 하나 자기 아버지의 피가 썩여 있기 때문이었다. 딱이 혈육으로 말하면 김경신과 오누이인 셈이었다. 아무리 간통으로 생겨난 서출(庶出)이라고는 하나 누이동생에게 폭행을 했으니 김경신으로서는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주원에게 벼슬(이벌찬)을 빼앗기고 심기가 불편하던 차에 김주원의 탉까지 와서 자기네 암탉에게 욕정을 채우고, 게다가 누이동생이 김주원의 부인에게 빰까지 맞았으니 김경신으로서는 부아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진골(眞骨)의 귀족신분으로 같이 대들고 싸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경신은 얼른 곳간으로 들어가서 화살을 들고 나와 수탉을 보고 겨누었다. 교미를 끝내고 꼬꼬 거리며 한쪽 날개를 비스듬히 세우고는 삐딱한 자세로 암탉 주의를 맴돌던 수닭을 향해 활시위를 힘차게 당겼다. 화살은 세찬 바람을 가르며 닭의 날개 부분을 명중시켰다.

까르르 까욱 까욱 하는 소리와 함께 수탉은 날개죽지에 화살을 맞고 퍽 쓰러졌다. 닭의 비명소리에 하인 천수(天手)가 얼른 뛰쳐나와 김경신 옆에 허리를 굽히고 다가섰다. 김경신은 아직 살아서 퍼득거리는 수탉을 보고

“ 저놈의 탉을 얼른 곳간 뒤로 가져가서 불태워 버리거라 ”

“ 예. 대감 나으리 ”

김경신의 말에 하인 천수(天手)는 대답을 하고 화살에 맞아 퍼덕거리는 수탉을 곳간 뒤로 들고 가서 볏집에 불을 붙히고는 닭을 그 속에 집어 던졌다. 천수는 닭을 소각한 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곳간 뒤를 빠져나와 김경신에게 다가섰다.

“ 앞으로 뉘집 닭이든 우리집 경계를 넘어와서 우리 닭을 괴롭히거던 그냥 두지말고 다리 몽둥이를 뿌려뜨리든가 목을 비틀어 버리거라 ”

김경신의 말에 하인 천수(天手)는

“ 예. 대감 나으리... ”

하며 허리를 굽히더니

“ 상대등 대감네 닭도 오면 그러할깝쇼 나으리 ”

“ 방금 그 닭도 김주원네 닭이니라 ”

“ 예. 그러하옵지요 ”

“ 하인놈이 와서 닭을 찾거던 모른다고 하여라 ”

“ 예. 대감 나으리...”

그런 일이 있었던 며칠후 어느날 밤 김경신(金敬信)은 꿈을 꾸었다. 사모를 벗고 갓을 쓰고 12줄 거문고를 안고 천관사(天官寺) 우물로 들어 갔다. 꿈을 깨고 나자 꿈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김경신은 하인 천수(天手)를 시켜 용한 점쟁이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러나 점쟁이는 이웃마을에 굿을 하려 가고 며칠동안 집에 없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멀지 않는 마을에 역술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김경신에게 알리기 위해 김경신의 방문 앞에 다가서서 허리를 굽히고는

“ 대감 나으리 ! ”

“ 그래 점쟁이를 알아 보았느냐 ? ”

" 점쟁이가 아니오라 사주쟁이를 알아 보았사옵니다 “

방문이 열리고 김경신이 대청으로 나왔다. 장죽을 입에 물고는

“ 사주쟁이라 했느냐 ? ”

“ 예. 대감 나으리. 사주쟁이는 찾았구만요 ”

“ 그래. 그럼 그놈한테 한번 물어보면 되겠구나. 어서 차비를 놓아라 ”

“ 예. 대감 나으리..., 가마(駕)로 할깝소 말(馬)로 할깝소 ”

“ 원.. 이런 녀석두. 사내 대장부가 가마가 뭐냐...”

“ 예. 대감 나으리 그럼 말(馬)로 준비하겠사옵니다 ”

하인 천수(天手)는 허리를 굽히고 나서 잽싸게 마굿간으로 가서 말을 끌어내어 안장을 채우는 등 부산을 떤다. 다른 하인 셋이 가세하여 대감이 행차할 준비를 거들었다.

“ 다들 집에 있고 천수만 나를 따르거라 ”

“ 예. 대감 나으리 ”

김경신이 말 위에 올라 앉자 하인 천수는 말꼬비를 잡고 집을 나섰다. 유화부인(臾花婦人)이 김경신을 전송했다. 유화부인은 김경신의 아내였다. 유화부인도 진골인 왕족 가문의 출신이었다.

사주쟁이가 산다는 마을 어귀에 닿자 큰 정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오백년 쯤 된 이팝나무였다. 벌써 해는 중천에 높이 솟아 있었다. 김경신(金敬信)은 나무밑에 말을 세우게 하고는 말에서 내려 정자나무 주위를 휘 둘러 보았다.

몇 집 안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에 이렇게 큰 이팝나무가 있다니..... 김경신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하면서 마을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길을 정자나무 아래로 돌렸다.

그런데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긴 댕기머리를 궁둥이까지 치렁치렁 땋아 내리고는 아람드리나 되는 정자나무(이팝나무) 주위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비견겁재 인왕여자 비겁인년 낭군잃고

이녀동부 하게되니 구곡간장 애달프다

겁재성이 다중하면 단명운이 찾아오니

극부극처 하고나서 신세타령 하게된다

비겁유년 들어오면 형제친구 조심하고

재산상에 조심하고 말싸움을 피해가소

비겁다에 신왕사주 재성약에 재년오면

손재손처 하게되니 부디부디 조심하소

겁재상관 양인동주 오만불손 무뢰한에

옥사병사 횡액조심 이것또한 팔자로다

신왕사주 일지양인 그처낭비 잘도하고

재다신약 공처가요 작첩도는 재혼하네

양인백호 합이되면 피를보는 참화있고

양인대운 충합되면 몸에재해 발생한다

여자사주 비견다면 색정으로 패가망신

남자들에 관심많아 주막술집 주인된다

겁재동주 놓은사주 조실부모 설움에다

부부이별 하게되니 사업실패 만사패재

김경신(金敬信)은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 양인백호 합이 되면 피를 보는 참화 있고 양인대운 충합되면 몸에 재해 발생한다....”

하고는 여자아이에게 다가서며

“ 너 어디 사는 얘냐 ? ”

여자아이는 노래를 멈추고 김경신을 빤히 쳐다보자 하인 천수가

“ 지체 높으신 대감 나으리시다 어서 대답하거라 ”

여자아이는 땡감을 씹은 표정으로

“ 지체가 높으시면 얼마나 높으신다요 ? "

하자 천수는

“ 허허 이게...”

하면서 따귀를 칠려고 손을 올리자 김경신은

“ 어허.. 관두거라. 하기야 이 아이 말이 맞다. 나는 지금 벼슬이 없으니 지체가 높은들 얼마나 높겠느냐 ? ”

하고는 여자아이에게

“ 그래. 방금 니가 부른 노래는 무슨 노래냐 ? ”

“ 우리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추명가이옵니다 ”

“ 추명가라... 그래. 너의 아버지가 무슨 연유로 그런 노래를 가르쳐 주더냐 ? ”

“ 알면 세상살이에 도움이 된다구 하셨사옵니다 ”

“ 알면 세상살이에 도움이 된다 ? 허허허. 참으로 의미있는 말이로구나. 그래 너의 아버지는 뭘 하는 사람이냐 ? ”

“ 사주팔자를 보시는 역술인이옵지요 ”

“ 역술인이라.... 오. 그것 마침 잘 되었구나. 그렇지 않아도 사주팔자를 한번 볼까하고 찾아왔는데... 어서 너의 아버지한테 가서 손님이 찾아 왔다고 일러라 ”

“ 예. 그러합지요 ”

여자아이는 김경신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한번 더 쳐다보고 나서는 마을안으로 사라졌다.

잠시후 김경신은 방안에서 역술인과 마주 앉았다. 하인 천수는 사립문 밖에 말을 메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 지체 높으신 대감 나으리께서 어찌 이런 누추한 것에 찾아 오셨사옵니까 ? ”

쉰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역술인(易術人)이 김경신에게 물었다. 이 역술인의 이름은 박규(朴圭)라고 했다. 정자나무에서 노래를 부르던 여자아이의 아버지였다.

“ 지체가 높다니 당치도 않소. 그저 작은 고을에서 군주를 지내다 낙향한 선비일 뿐이오 ”

“ 관상을 보니 그렇지가 않아 보이옵니다. 원래 관상이란 얼굴로 사람의 운명을 보기 때문에 미래운은 알수가 없으나 과거운은 알 수 있사옵니다. 과거에 높은 벼슬을 하신 것 같사온데 아니시라면 소인의 무뢰함을 용서하시옵소서 ”

하자 김경신은 마음속으로 잘 아는구나 하며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역술인이라면 해몽(解夢)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경신(金敬信)은

“ 우선 통성명을 하고 지냅시다. 성은 김(金)가요. 이름은 받들봉(奉)자 돌석(石)자 김봉석이라 하오 ”

김경신은 신분 노출을 꺼려 일부러 가명으로 대었다. 역술인 박규는

“ 소인은 박규라고 합지요 ”

“ 박규라... 잘 기억해 두리다 ”

“ 어인 일로 찾아오셨사옵니까 ? "

" 며칠전에 꿈을 꾸었는데 꿈이 하도 이상하여 꿈풀이를 할까하고 왔소이다. 사주팔자를 보는 역술인이라면 해몽도 할 것 같아 찾아 왔소이다 “

“ 어떤 꿈이 옵니까 ? ”

“ 사모를 벗고 갓을 쓰고 열두 줄 거문고를 끌어안고 천관사 우물로 들어가지 않았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꿈이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오 ”

“ 천관사라면 서라벌 밖에 있는 절을 말씀하오이까 ? ”

하고 박규가 묻자 김경신은

“ 그렇소 ”

그러자 역술인 박규는 잠시 생각하다가

“ 꿈으로 보아 흉몽(凶夢)은 아닌 듯 싶사옵니다. 천관사는 대궐에서 보아 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서쪽은 오생상 금(金)에 속하옵지요.. ”

김경신은 무슨 말인지 몰라 그냥 듣고만 있었다. 박규는

“ 흉몽이 아니라니 다행이구려. 그래 해몽을 해보시오 ”

“ 우선 해몽을 드리기 전에 사주팔자를 한번 보겠사옵니다. 꿈은 해석하기에 따라흉몽(凶夢)이 될 수도 있고 길몽(吉夢)이 될 수도 있사옵니다. 하오나 타고난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오르지 하나 밖에 대답을 드릴 수가 없사오니 먼저 사주팔자부터 본 후에 해몽을 드리겠사옵니다 “

“ 음. 그렇게 하시오 ”

김경신은 출생한 연. 월. 일. 시를 알려 주었다. 박규는

“ 그리고 한가지 당부의 말씀이 있사옵니다 ”

“ 말씀해 보시오 ”

“ 나으리께서 후일에 큰 자리에 오르시면 소인을 버리지 않고 딸자식 하나 있는 것도 잘 거두어 주실런지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약조를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해몽을 해 드리리다. 그리고 밖에 있는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멀리 물리쳐주시옵소서... 만일 천기를 누설하시면 소인은 물론 나으리도 목숨을 보존하기가 어렵사옵니다 ”

“ 큰 자리에 오르다니 어떤 자리를 말하오 ? ”

“ 그것은 사주명국을 보고 나서 말씀 드리겠사옵니다 ”

“ 허허. 그렇게 해몽이 중요하단 말이오.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로 약조를 하리다 ”

그렇게 말하고 나서 방문을 열고 하인 천수에게 누구도 가까이 와서 엿듣지 못하도록 일러주었다. 김경신金敬信은

“ 이제 약조도 했고 밖에서 엿듣지 못하도록 사람을 물리쳤으니 말해 보시오 ”

“ 예 나으리. 그렇게 합지요. 해몽을 드리기전에 먼저 사주팔자부터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이왕 소인을 찾아오셨으니 확실하게 아시고 가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

“ 그야 그렇소 ”

역술인 박규는 벼루에 먹을 갈아 붓을 들고 종이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時 日 月 年 男

丁 丁 壬 戌 命

未 丑 戌 辰

火 火 水 土 奉

土 土 土 土 石

木 金 火 水

庫 庫 庫 庫

日干(일간) 丁火(정화)는 큰 불이다. 즉 태양(太陽)을 대신한 국왕을 상징한다. 이 사주명국(四柱命局)을 보니 왕이 될 팔자가 분명했다. 역술인 박규는 감짝 놀랐다. 박규는 일어나 김경신에게 큰 절을 납죽 올렸다.

“ 전하 ! 경하 드리옵니다. 전하를 알지 못하고 이 누추한 곳으로 소인을 찾도록 하여 송구스럽사옵니다. 용서하시옵소서.. 전하 ! ”

갑자기 전하라고 하니 김경신은 어리둥절하다 못해 당혹스러웠다. 김경신은

“ 아니 이게 무슨 희기한 짓이오. 나보고 전하라니... 지금 큰일 날 소릴 하는구려... 임금이 어젓히 계시는데 이 사람보고 전하라니 무슨 그런 망말을 하시오 ”

하고 김경신은 역술인 박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역술인 박규는 김경신 앞에 무릎을 조아리고 앉아

“ 임금이 계신다 하오나 임금 구실을 못한다면 어찌 임금이라 하오이까.. 이 사주명국은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제왕 사주임에 틀림 없사옵니다. 만일 소인의 말이 거짓이라면 소인의 목을 내놓겠사옵니다 ”

김경신은 놀라 어리둥절하여

“ 임금이라니 당치도 않는 소리요...”

( 이 자가 목을 내놓겠다고 하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구나 )

김경신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박규는

“ 사주명국으로 보아 한 나라를 이끌어갈 제왕 사주임이 분명하옵니다...”

“ 제왕 사주가 내 어찌 벼슬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한가하게 놀고만 있단 말이오. 그런 헛된 소리 두번 다시 하지 마시오.. 사주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 것이오. 잘못 봤단 말이오...”

김경신은 약간 노기를 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박규는 당당하게

“ 전하 ! 소인을 속이지 마시옵소서. 전하는 분명히 진골 출신의 왕족이 아니시옵니까..... 솔직히 말씀하시옵소서.....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이옵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추명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사옵니다.. 만일 소인이 잘못 보았다면 제 목을 거두어 가시옵소서.... ”

“ 허허 이거야 원... ”

“ 분명히 소인을 속이고 있사옵니다 혹시 이벌찬(伊伐湌) 벼슬을 지내신 김경신 대감 나으리가 아니시옵니까 ? ”

이쯤되면 더 이상 속여서 무얼하겠는가 싶어 김경신은

“ 내가 졌소이다. 사실 나는 이벌찬 벼슬을 지낸 김경신이오... 김봉석이라고 한 것은 거짓이었오... 사주쟁이가 뭘 알겠나 싶어 당신을 얏잡아 본 내가 잘못했오... 참으로 잘 알아내는구만... 그건 그렇구 어서 해몽을 해보시오.”

“ 예... 해몽을 드리겠사옵니다. 사모를 벗은 것은 더 이상 높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옵고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이오며 열 두 줄 거문고를 안은 것은 열 두 대손까지 왕위를 이어 갈 징조이옵고 우물로 들어간 것은 대궐로 들어갈 징조이옵니다. 이 꿈은 사주명국과도 일치하고 있사옵니다. 분명히 임금이 되실 것이옵니다... 이런 사주팔자를 타고 났다는 것은 진골 출신의 귀족이나 왕족이 아니면 불가능하옵니다... ”

그러자 김경신金敬信이 말하기를

" 나보다 위인 상대등 김주원金周元 대감이 있는데 그가 왕위에 오를 것이 자명하지 않소 ? “

하자 역술인 박규는

“ 상대등이든 이벌찬이든 벼슬이 높고 낮음이 무슨 상관이옵고 또 앞에 있던 뒤에 있던 서열이 무슨 상관이옵니까. 임금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오니 벼슬이 높고 낮음이나 서열에 너무 마음 가지시지 마시옵고 주변만 튼튼하게 하시옵소서...”

“ 주변이라니....”

“ 만약에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사주명국으로 보아 그런 일이 있을 것으로 보아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사람의 운명에는 어쩔 수 없이 피하지 못하고 당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라 미리 방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소인이 말씀드린 주변을 튼튼하게 하라고 한 것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김주원의 반역을 경계하시란 말씀이옵니다...”

“ 반역이라... 음. 무슨 말인지 알듯하오.. ”

“ 만일 김주원 대감이 임금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그냥 있지 않을 것은 자명하지 않사옵니까.. ”

“ 전하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서열로 보면 김주원이가 마땅히 임금자리에 올라야 하니 그렇겠지 ”

“ 그러니 그걸 미리 경계하시란 말씀이옵니다 ”

“ 알겠오. 내 깊이 명심하리다 ”

“ 임금이 되는 것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주는 천운을 타고 나야 하옵니다. 그래서 임금을 하늘이 낳은 아들이라고 해서 천자(天子)라고 하지 않사옵니까. 더구나 서열로 보면 김주원 대감의 바로 아래이니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옵니까. 그까짓 종이 한 장 차이는 운만 있으면 언제든지 뒤집어 놓을 수가 있사옵니다.. 그러니 서열에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전하 ! "

" 아직은 전하라는 말은 하지 마시오. 잘못하다간 당신과 나는 살아남지 못하오 “

“ 살고 죽는 것도 하늘에서 결정하는데 어찌 소인 스스로 목숨을 두려워 할 수 있겠사옵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옵니다만 임금이 되실 분이옵니다. 그 대신 아무도 모르게 북천(北川)의 산신에게 잘 기도 하시옵소서... 그러면 반드시 왕위에 오를 것이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소인과 나눈 얘기는 절대로 누설하지 마시고 전하와 이 소인 두 사람만이 아는 비밀로 해 주셔야 하옵니다...”

하자 김경신은

" 여부가 있겠오. 만일 이 말이 대궐로 세어 들어간다면 당신의 목숨뿐 아니라 내 목숨도 온전치 못할 것이 아니오.“

“ 그러하옵니다 ”

“ 오늘 당신이 한 말 잊지 않겠오. 내가 당신 말대로 임금이 되면 당신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오. 어디 상뿐이겠오. 내 곁에 두고 요긴하게 쓰겠오 ”

“ 성은이 망극하오이다 전하 ! ”

“ 허허 아직은 전하란 소리를 하지 말래두. 그리고 당신 딸도 내가 잘 보살필 것이오. 그럼 후일을 기약하고 이만 가겠오..”

“ 김주원쪽에서 어떤 일을 꾸밀지 모르오니 방심하지 마시옵소서. 그리고 꼭 북천(北川)으로 가셔서 신에게 기도를 하시옵소서.. 북천은 오행상 수(水)이온데 천관사가 있는 서쪽 금(金)이 금생수(金生水)하여 전하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옵니다 ”

“ 알겠오. 잘 기억해 두리다.... 그런데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오 ”

“ 말씀하시옵소서 ”

“ 동구 밖 정자나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딸아이 말이오.. 내가 여기 오면서

들어보니 노래가 예사롭지 않던데 도대체 무슨 노래요 ? “

“ 소인이 이 자리에서 무엇을 감추오리까. 슬하에 피붙이라고는 그 딸아이 하나뿐인지라 소인이 죽으면 추명학을 이어 받을 사람이 없어 추명학을 가르치기 위해 추명가를 부르게 한 것이 옵니다...”

“ 추명가라...”

“ 밀추(推)자 목숨명(命)자 인간의 운명을 미루어 짐작한다고 해서 인간의 운명을 판단하고 예지하는 학문을 추명학이라고 하옵니다 ”

" 추명학을 가르치면 가르쳤지 왜 노래를 부르게 하는가 그 말이오 ? “

“ 추명학은 어려운 학문이라 좀더 쉽게 터득하기 위해서는 노래로 익히는 것이 한결 수월한지라 그렇게 하도록 했사옵니다...”

“ 허허. 그것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구만.. 그럼 한가지 더 물어 보겠오 ”

“ 말씀하시옵소서 ”

“ 노래를 들으니 비견겁재 인왕여자 비겁인년 낭군잃고 라고 하는데 무슨 뜻이오 그것이... ? ”

“ 비견은 육친성(育親星)을 뜻하는데 어깨를 나란히 견준다고 해서 형제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겁재(怯財)는 재산을 겁탈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사주에 겁재가 있으면 재산을 탕진한다는 뜻이옵지요. 인왕(印旺)이란 인성(印星)을 뜻하는데 정인(正印)과 편인(偏印) 두 가지가 있사옵니다. 남자의 경우 정인은 생모(生母)를 말하고 편인은 계모(繼母)를 말하옵니다. 왕(旺)이란 많다는 뜻이오니 인왕이란 정인이나 편인이 많다는 뜻이옵지요... 사주에 비견 겁재가 있고 편인 정인이 많은 사람이 비견이나 겁재가 드는 해(年)가 오면 남편을 잃게 된다는 말이옵니다...”

“ 으음. 그런 뜻이구만..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 보겠소 ”

“ 말씀하시옵소서..”

“ 양인 백호 합이 되면 피를 보는 참화 있고 하던데 그것은 무슨 뜻이오 ? ”

“ 양인과 백호는 흉한 살인데 이 살이 사주에 있으면 피를 보게 되는 참화가 있다는 말씀이옵니다. 그러나 이 살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피를 보는 참화가 있는 것이 아니옵고 양인살과 백호살이 합이될 때 그런 일이 있다는 말씀이옵니다...”

“ 그렇다면 내 사주는 어떻소 ? ”

그러자 박규는 가슴이 떠끔했다. 사주에 이러한 흉살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있다고 실토할 수가 없었다. 박규가 잠시 망설이자 김경신은

“ 어찌 말이 없으시오 ? ”

“ 없사옵니다. 심려놓으시옵소서 ”

“ 그렇다면 다행이오 ”

“ 하오나 전하 ! ”

“ 아직은 전하라고 하지 마시오. 누가 들으면 어쩔려구... 그래 말해 보시오 ? "

“ 임금의 자리는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옵니다 ”

“ 그건 조금전에 박공이 나에게 말하지 않았소 ”

“ 예, 소인이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이러한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사옵니다. 이런 무리들이 가끔 반역을 일으키기도 하옵니다 ”

“ 그런일도 있을테지 ”

“ 그래서 말씀드리옵니다만 임금이 되시더라도 늘 이러한 일을 염두에 두시고 정사를 보살피시옵소서.... 특히 병부만은 전하와 생사고락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시든가 아니면 직접 전하께서 맡으시도록 하시옵소서...”

“ 옛부터 병부를 임금이 직접 맡은 일은 없었소. 그런 법이 없었단 말이오 ”

“ 전하 ! 법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오라 만드는 것이 옵니다. 임금이 만들면 그것이 곧 법이 되는 것이 옵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 마시고 반드시 병부는 전하께서 직접 맡으시든가 전하와 생사고락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시옵소서....”

“ 오늘 박공이 한 말 잘 기억하리다.. 자 그럼 후일에 다시 보겠오 ”

“ 잘 가시옵소서 전하 ! ”

김박규는 김경신이 사립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김경신의 사주를 다시 한번 살펴 보았다. 그리고는 흉살을 적었다.

時 日 月 年

丁 丁 壬 戊

未 丑 戌 辰

殺刃羊 殺虎白 殺虎白 殺虎白

월(月)의 임술(壬戌)이 백호살(白虎殺)이다. 또 일(日)의 정축(丁丑)도 백호살이다. 그리고 년(年)의 무진(戊辰)도 백호살이다. 게다가 임술(壬戌)은 괴강살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일간(日干) 정(丁)과 시지(時支) 미(未)는 양인살(羊刃殺)이다. 앞으로 큰 피바람이 불어닥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박규는 차마 이런 말을 김경신에게 할 수가 없었다.

김경신은 역술인 박규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마을 어귀에 오자 박규의 딸 계집아이가 아직도 정자나무를 돌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자사주 식신다면 색정강해 음란하고

편인인수 많으며는 자식잃고 통곡한다

일월상관 비겁유는 남편필히 죽게되니

늙은남편 만나야만 남편악사 면하리라

사주중에 정관있고 상관또한 있는여자

본남편이 먼저가고 타의남자 놀아난다

신약사주 상관있고 상관운을 만나며는

평지풍파 일어나니 부디부디 조심하소

인수성이 식상형충 친정가서 초산마소

두생명이 함께가서 혼자털털 돌아온다

식상태왕 신약자는 아기낳고 병을얻고

신왕관쇠 상관년은 일터에서 쫒겨난다

여명사주 상관왕은 정관년에 과부되고

여명사주 관성왕은 관년오면 별거한다

시상상관 있는남자 병신자식 있게되고

불효자식 속썩임도 상관왕성 탓이로다

편재성이 왕성하면 장사하여 돈을벌고

편재많이 있는사주 여색즐겨 패망한다

재다신약 그사주는 남의돈을 관리하고

편재정관 동주하면 부친덕이 없게된다

시상편재 일위사주 대부대귀 하여보고

병정일에 일시인신 그처태중 이별있다

인경인일 사신있고 재다신약 하게되면

처첩중에 자살있어 그가정이 몰락하네

재성쇠약 관살왕은 생자후에 손처하고

재성백호 관살태왕 처첩산망 자살이다

시상편재 신왕사주 그처학대 많이하고

재왕신약 인년재년 문서인장 조심하소

재성살지 재성입묘 본처먼저 황천가니

이것또한 운명인데 울어본들 소용있나

김경신은 말위에 올라 앉았다.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노래소리를 뒤로 하며 집으로 향했다. 김경신이 집에 당도하자 유화부인이 물었다.

“ 해몽이 어떠하다 하옵디까 ? ”

“ 벼슬을 버리고 한가롭게 지내야 할 꿈이라고 하더이다 ”

“ 그말 뿐이옵디까 ? ”

“ 그렇소 ”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남편 김경신을 보다못해 며칠이 지난후 유화부인(臾花夫人)은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쳤다. 남편인 김경신의 꿈을 해몽하기 위해서였다.

점쟁이는 유화부인에게 꿈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 사모를 벗은 것은 벼슬을 버려야 할 징조이옵고 거문고를 안은 것은 형벌을 받을 징조입죠. 그리고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조짐입죠 ”

했다. 유화부인은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유화부인은 남편 김경신에게 점쟁이가 한 말을 그래도 전했다. 한쪽에서는 길몽이고 한쪽에서는 흉몽이니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김경신金敬信은 분간할 수 없었다. 김경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 그 점쟁이한테 가서 만일 해몽이 거짓이라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지 물어보시구료 ”

“ 목숨을 요 ? ”

“ 그렇소. 목숨을 내놓지 않고 한 말이라면 어찌 믿을 수 있겠소 ”

“ 그렇다면 대감께서 가셔서 해몽한 그 사람은 목숨을 내놓겠다고 합디까 ? ”

“ 그렇소. 해몽이 틀리면 목숨을 거두어 가도 좋다고 나와 약조를 했소이다 ”

“ 그럼 다시 점쟁이한데 가서 대감 말씀대로 해몽이 거짓이면 목숨을 내놓을런지 물어보고 오겠사옵니다 ”

하고는 점쟁이한데 가서 해몽이 틀리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느냐고 유화부인이 묻자 점쟁이는 펄쩍 뛰며

“ 아이구 해몽이 틀리면 목숨을 내놓으라니요 그런 약조는 못합죠 ”

했다. 유화부인은

“ 그런 약조도 못하고 어찌 해몽을 믿을 수 있느냐 ? ”

하면서 호통을 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김경신은 유화부인이 찾아간 점쟁이의 말과 역술인 박규의 말을 비교해 가면서 어느 쪽이 말이 맞을까 궁금해 하면서 며칠은 지내고 있던 어느날 김경신(金敬信)의 집에 여삼(餘三)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여삼(餘三)은 지난날 김경신과 함께 벼슬을 한 사람이었다. 김경신은 만나기를 꺼려 몸이 아프다고 거절을 하였으나 여삼(餘三)은 물러가지 않고 굳이 뵙기를 원하자 김경신은 할 수 없이 만나기로 하였다.

여삼(餘三)은 방으로 들어와 김경신을 보자

“ 무슨 일로 소생을 만나지 않으려 하시옵니까 ? ”

하고 물었다. 그러자 김경신은

“ 요즘 내 심기가 좀 불편해서 그러네 ”

“ 심기가 불편하시다니 무슨 일이 옵니까 ? 벼슬을 그만 두시어 그러시옵니까 ? ”

하자 김경신은

“ 그게 아니라 꿈이 이상한데 해몽을 하지 못해 그러네 ”

“ 해몽이라니요 무슨 꿈이옵니까 ? ”

그러자 김경신은 꿈 이야기를 하고 한숨까지 지었다. 꿈 이야기를 듣고난 여삼(餘三)은 일어나 큰 절을 하며

“ 대감 ! 이것은 상서로운 꿈이옵니다. 대감이 후일에 큰 자리에 오르신후 소생을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소생은 대감을 위하여 해몽을 해 드리리이다. ”

했다. 그러자 김경신은 마음속으로

( 이 녀석도 뭘 좀 아는 모양이구나 )

생각하면서

" 그럼 약조하리다. 해몽을 해 보구려“

하고는 옆 사람을 물리치고 해몽을 청했다. 그러자 여삼(餘三)은

“ 사모를 벗은 것은 더 이상 높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이며 열 두줄 거문고를 안은 것은 열두 대손까지 대를 전할 징조이고 천관사 우물로 들어간 것은 대궐로 들어갈 징조이옵니다...”

그러자 김경신(金敬信)은 이미 역술인 박규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터이지만 일부러 모른척 하고 저으기 노란 표정으로

“ 허허 당치도 않는 소릴 하는구려 ”

하면서 턱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여삼(餘三)은 두번 세번 절을 했다. 김경신은

“ 나 위에 상대등 김주원(金周元)이가 있는데 그가 왕위에 오를 것은 자명한 일 이 아닌가 ”

그러자 여삼(餘三)은

“ 임금이 되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대감 위에 있다고 반드시 그 사람이 임금이 되는 것은 아니옵니다 ”

김경신은 애쓰 그 말을 믿지 않을려는 듯

“ 오늘 나에게 한 말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술이나 한잔 하게나 ”

하고는 주안상을 드리게 하여 여삼과 술잔을 나누었다. 여삼(餘三)은

“ 대감께서 주변을 잘 경계 하셔야 합니다...”

" 경계라니 뭘 말하는가 ? “

“ 김주원 대감이 가장 우려하는 사람은 바로 대감이옵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힘을 키워 놓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대감께서 원하신다면 소생이 힘이 되어 드리겠사옵니다...”

“ 고맙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내 수하에 두겠네 ”

그 무렵 선덕왕의 건강이 좋지 않자 김주원(金周元)의 집에서는 연일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왕(선덕왕)이 죽으면 왕자가 없어 왕과 가장 가까운 왕족인 김주원(金周元)을 맞아들여 왕으로 세우겠다는 계획이 왕실에서는 이미 공론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열로 봐서도 김주원이가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었다. 김경신이 있다고 하지만 김경신은 서열로 치면 김주원(金周元) 다음이다.

그러니 김주원 쪽에서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김경신의 모반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일 무슨 일로 김주원이가 죽는다면 왕위는 자동적으로 김경신(金敬信)에게 돌아가게 된다. 김주원金周元 쪽에서도 이런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미 힘이 세고 날랜 무사(武士)들을 주위에 배치해 놓고 있는 터이었다. 그리고 김경신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늘 예의주시 하고 있었다.

김주원은 퇴궐(退闕)을 하면 집으로 대신들을 불러모아 진수성찬을 딱 벌어지게 차려놓고 희희덕거리며 술판을 벌리기가 예사였다. 곧 있을 왕위계승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 미리 대신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겠다는 수작이었다. 더구나 김주원이 상대등이란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마음대로 국정을 이끌어 가고 있으니 대신들은 김주원에게 붙어 간과 쓸개도 없이 아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주원이 한참 대청에서 대신(大臣)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염문(廉文)이 나타났다. 염문(廉文)은 무예가 뛰어난 젊은 무사로서 김주원의 수하 장졸이었다. 특히 그의 칼솜씨는 누구도 당할 사람이 없을 만큼 뛰어났다. 처음에는 궁궐의 하급 문지기를 하다가 수문장으로 승진되었는데 칼솜씨와 용맹함을 인정받아 김주원이가 호위병으로 채용했다. 말하자면 김주원의 심복 부하인 셈이었다. 김주원(金周元)은

“ 그래 김경신 대감의 집 동태를 살펴 보았느냐 ? ”

하자 염문(廉文)은

" 예. 대감 나으리. 아무런 동태도 없사옵니다. 하오나 요근래 여삼이라는 사람이 자주 드나들고 있다고 합지요 “

“ 여삼이라 ? 그래 무슨 일로 드나든다 하드냐 ? ”

“ 그건 알 수 없으나 가끔 와서 김경신 대감과 밀담을 나누고 간다고 합지요 ”

“ 험. 밀담이라....”

그러자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대신(大臣) 하나가 약간 술취한 말투로

“ 누가 누구와 밀담을 나눈다고 그러시오 ? ”

하자 김주원은

“ 대감은 마음 쓸 일이 아니옵니다. 어서 술이나 마음껏 드시오 ”

하고는 혼잣말처럼

“ 두 사람이 밀담을 나누고 간다 ? 으음.. 혹시 반역을 하자는 것은 아닐런지 ”

그 말에 옆에 있던 또 다른 대신이 술취한 말투로

“ 서열로 치면 마땅히 상대등 대감이 임금자리에 올라야 하는데 누가 임금자리를 엿본다 그러시오 ? ”

“ 대감이 마음 쓸 일이 아니옵니다. 술이나 드시오 ”

“ 그러면 내가 마음 쓸 일이 뭣이 오이까 ? ”

“ 지금의 주상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새로운 전하를 옹립할 일에만 마음을 쓰 주시구려...”

“ 핫하하하... 그거야 옹립하나마나 마땅히 상대등 대감이 그 자리에 앉으셔야 하는 것이 아니오이까 ? 두말하면 객담이 오이다.. 핫핫핫.. ”

그 말에 옆에 있던 또 다른 대신이 박장대소를 하며

“ 암요. 암 그렇구말구요... 이제 주상의 옥체도 다 되어간 듯 싶사오이다... 풍전등화라더니 주상의 옥체가 바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게 되었오이다.... ”

김주원은 헛기침을 하며 여덟팔자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로 술잔을 한잔 드리키고는 염문에게

“ 무슨 일을 꾸미는지 잘 감시하도록 해라.. 한치의 소흘함도 있어서는 안되느니라...”

하자 염문은

“ 예. 대감 나으리... 염려 놓으시오소서,,, ”

하고는 사라졌다. 옆에 있던 술취한 대신이

“ 누가 무슨 일을 꾸민다고 잘 감시하라고 하시오. 나도 좀 압시다...”

하자 김주원은

“ 혹시나 있을지 모를 반역을 감시하라고 했오이다 ”

“ 아니 반역이라니요 ? ”

한 대신이 놀라면서 묻자 김주원은

“ 아직은 딱이 말할 처지가 아니니 대감들 술이나 드시오 ? ”

김주원은 술이 얼근하게 취한 얼굴로 의기양양 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난날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치듯 오금이 저리고 몸이 후들후들 떨리었다.

태종은 삼국통일의 기반을 굳건히 세워놓고 재위 7년만에 군사를 일으켜 백제군과 전쟁에 나섰다. 이 전쟁에서 백제는 크게 패하여 국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나라가 망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백제의 멸망으로 만족하지 않고 태종의 아들 문무왕은 5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의 고구려를 공격했다. 이 전쟁에서 대동강 이남의 영토를 점령하는 쾌거를 거두어 신라의 국력을 크게 신장시켜 놓았다.

그런데 경덕왕 때에 와서 전쟁이 없는 평화가 지속되면서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심하고 나라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하기 시작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힘없는 백성들을 마음대로 부리는가 하면 곳곳에서 도둑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운데도 관리들은 아첨과 뇌물에만 눈이 어두워 백성들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고 있었다.

왕비(경덕왕비)는 순정(順貞)의 딸로서 왕비의 어머니 수로부인(水路夫人)은 얼굴이 아주 예쁜 미인이었다. 성덕왕 때 순정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기 위하여 부인 수로(水路)와 함께 강릉으로 가던 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쉬고 있었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절벽의 경치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수로부인(水路夫人)은 꽃을 가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여 왕비를 호위하는 측근에게 꽃을 꺾어 오라고 했다.

그때 암소 한 마리를 끌고 가던 어떤 노인이 소를 놓고 절벽 위에 올라가 꽃을 꺾어다 수로부인에게 받치며

- 내 평생 오늘과 같은 영광스런 날 다시 없으리니

나는 부끄러움 없이 아름다운 꽃을 꺾어 드리오이다 -

하는 간단한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노래가 헌화가(獻花歌)이다.

일행이 다시 바닷가에서 쉬고 있을 때 용왕이 수로부인의 아름다운 용모에 그만 홀딱 반해 수로부인을 물속으로 잡아갔다. 그러자 순정공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데 조금전에 암소를 몰고 가다가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받친 노인이 물속으로 몸을 던져 천신만고 끝에 부인을 구해냈다.

부인을 구해낸 노인은 실신하여 죽고 부인은 자기가 그 동안 용궁에서 지낸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자 이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황홀감을 감추지 못했다.

“ 바닷속 용궁은 참으로 웅장하고 화려 합니다. 음식과 옷이 향기롭고 칠보로 장식한 궁전은 인간 세상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

하고 용궁을 그리워 하며 용궁에서 나온 것을 못내 아쉬워 했다. 수로부인의

용모가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어디를 가든 수로부인이 가는 곳마다 따라와 잡아갔지만 그때마다 위기를 잘 면하고 돌아왔다.

경덕왕비는 바로 수로부인의 딸로서 어머니를 닮아 용모가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의 행실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다. 궁중의 어느 대신과 무슨 일을 했다는 둥 갖가지 성(性)에 대한 추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돌았다. 더구나 체격이 작아 왕과는 대조적이었다.

왕비의 추문이 나돌던 어느날 그 추문의 장본인으로 구슬수에 올랐던 대감과 절친한 다른 대감이 귓속말로

“ 대감 ! 왕비의 옥문지(玉門池)가 어떻던가요 ? "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대감은

“ 寶池(보지)는 다 같은데 뭐 다를라고 ? ”

“ 뜬 소문이 아니였구만... 꽃밭엔 자주 물을 주어야지 알겠소 ? ”

“ 에잇 대감두....”

하고는 피식 웃었다.

왕은 체격이 장대하고 성욕이 강한데다가 옥경(玉莖)의 길이가 무려 8촌(寸)이나 되었다. 이러한 옥경에 제대로 맞는 여인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날에 걸쳐 많은 궁녀들을 발가벗겨 놓고 하나하나 조사하여 왕의 옥경에 맞는 궁녀를 찾아 보았으나 그런 궁녀는 찾지 못했다.

이로 인하여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왕비를 내쫒고 의충(義忠)의 딸 만월(滿月)을 후비로 맞았다. 얼굴이 둥근달처럼 잘 생겼으며 하룻밤 동침을 해보니 왕의 옥경(玉莖)에 넉넉히 맞았다. 또한 맛도 꿀맛 같았다. 왕이 만족해 하며 만월부인을 후비로 맞은 후 왕자를 낳으니 이가 혜공왕이다. 혜공왕은 8세의 나이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어머니 만월부인(滿月夫人)이 수렴청정을 했다.

왕(혜공왕)의 나이 18세쯤 되자 여색을 탐하기 시작하여 마음에 들기만 하면 이 궁녀 저 궁녀 집적거리며 심술궂게 궁녀들의 속옷을 벗기고 음탕한 짓거리를 하면서 마음대로 궁녀들을 주무리고 사랑했다.

이렇게 되자 궁중은 환락장으로 변해 갔으며 만월부인도 또한 품행이 좋지 않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 졌다. 더구나 기가 막히는 것은 만월부인이 어느 대신과 수시로 성관계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궁중의 대신들 간에도 양파로 갈라져 세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태종무렬왕의 계통을 이은 지정(志貞), 대공(大恭), 김은거(金隱居), 정문(正門), 염상(廉相) 등과 내물왕의 계통을 이은 김경신(金敬信), 김양상(金良相), 김순(金順), 김주원(金周元) 등과의 정권쟁탈전이 치열하여 90명의 대신들이 목숨을 잃었고, 마침내 혜공왕도 자객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다.

이 권력쟁탈전에서 태종무렬왕 계통은 거세되고 승리를 거둔 김양상(金良相)이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다. 이 왕이 바로 선덕왕이었다. 같은 내물왕 계통의 자신이 역시 같은 내물왕 계통인 김경신과 왕위를 놓고 또 다시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하자 김주원(金周元)은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마음이 착잡할 정도가 아니라 오늘이 있기까지 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고 생각하자 김주원(金周元))은 몸서리가 치고 오금이 저리듯 몸이 후들후들 떨리었다.

비록 김경신이 벼슬을 버리고 집에서 한가롭게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김주원이왕위에 오르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김주원의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비록 본인인 김경신은 왕위 계승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보다도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측근들이 어떤 형태로든 김경신을 부추기어 왕위쟁탈에 가담할 것이라는 생각이 김주원의 마음을 더욱 옥죄이고 있었다. 어느 시대에서나 왕자가 없는 왕위계승은 권력쟁탈이 있기가 마련이었다.

( 서열 2위인 김경신을 방심할 수 없지... 암.. 방심할 수 없구말구....)

김주원(金周元)은 취기가 오르자 턱밑의 수염을 쓰다듬으로 내심 비장한 결의를 지었다.

이때 대궐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내시(內侍)의 말인즉 왕의 옥체가 위독하니 상대등(김주원) 대감은 속히 모든 대신들과 함께 입궐하라는 전갈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대신들은 술이 취해 비틀거리며 일어나 우왕좌왕 어쩔줄을 몰랐다. 한 대신이

“ 모든 대신들을 불러모우는 것을 보니 주상께서 마지막으로 유언을 하실 모양이 아니시오 ”

하자 다른 대감이

“ 아마 그런 것 같소이다.. 이거야 원. 술취한 얼굴로 어찌 입궐 한단 말이오 ”

또 다른 대신은

“ 이거야 낭패가 아니오. 고추잠자리 얼굴로 어찌 입궐을 하겠오 ”

또 다른 대신은

“ 그렇다고 입궐을 하지 아니할 수도 없지 않소이까...”

김주원은

“ 퇴궐을 하여 술 마신거야 어찌하겠소. 전하께서 위중하다고 하시니 급히 입궐을 합시다...”

“ 위중하신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어찌 갑자기 대감들을 모두 다 입궐하라 하시는고.....”

“ 대신들을 불러 모우시는 걸 보니 이제 곧 세상을 떠나실 모양이구려... 자. 어서 입궐할 차비를 합시다 대감들.....”

하면서 대신들은 서로 숙덕거리며 하나 둘 김주원의 집을 나섰다.

이 무렵 김경신의 안방에서는 측근들이 모여 왕이 죽은 후에 변화를 가져올 권력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비록 서열로는 김주원이가 왕위 계승자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후환(後患)을 두려워 한 나머지 김경신과 측근들을 어떤 명분을 찾아서라도 숙청할 것이라는 것이 김경신의 생각이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지금처럼 궁중의 기강이 해이해진 상황에서 그 누구도 왕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김경신은 잘 알고 있었다.

임금은 스스로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하던 역술인 박규의 말처럼 천운(天運)이 나에게로 돌아온다면 김주원은 반드시 나를 칠 것이라고 김경신은 지례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김경신은 힘을 키우기 위해 사재(私財)를 털어 은밀하게 많은 무사(武士)를 양성하고 있었다. 힘이 있어야 김주원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해 가을이었다. 왕은 병석에 누운지 여러달이 지났지만 죽지 않고 끈질기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모든 국정은 상대등인 김주원 혼자서 수행하고 있었다. 다른 대신들은 그저 김주원이 하자는 뜻에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김주원은 용상자리가 자기에게 하루 하루 가까이 다가오는 기분을 느끼며 틈만 나면 집에서 대신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벌리고 있었다. 오늘도 김주원은 집에서 대신들과 술판을 벌려놓고 있다가 수하인 기웅(起雄)에게 중요한 보고를 받았다. 기웅(起雄)은 염문(廉文)과 쌍벽을 이루는 칼잡이로서 염문과 함께 김주원의 수하 장졸이었다. 기웅의 보고인즉 요즘 김경신이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력 규합에 선봉으로 나선 사람은 여삼(餘三)이라고 했다.

“ 여삼이라....”

“ 예. 대감 나으리... ”

“ 으음...”

김주원은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수염을 쓸어 올리며 요염한 웃음을 지었다.

“ 대감 나으리 ! 오늘밤 그 자를 해치울 갑쇼 ? ”

부하 기웅(起雄)의 말에 김주원은

“ 으음. 글쎄다...”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 그 까짓 졸개 하나 해치우고서야 무엇에 쓰겠나...”

“ 그럼 김경신 대감을 해치울갑쇼 ? ”

“ 명분이 없질 않나....”

“ 더구나 함부로 죽어서는 아니될 사람이지... ”

“ 하지만 대감 나으리께서 임금이 되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소이까 ? ”

“ 으음. 오늘밤 결정할테니 너 지금 염문을 급히 오라 해라 ”

“ 예. 대감 나으리...”

기웅(起雄)이 사라지자 김주원은 묘한 감정에 빠졌다. 김경신을 죽이기는 해야 하는데 아직은 죽일 명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명분없이 어슬프게 손을 대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화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주원은 이미 비장한 결의를 한듯 그날 밤 김주원은 자기방으로 수하인 기웅(起雄)과 염문(廉文)을 불러 김주원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두 사람은 얼굴에 복면을 하고 등에 칼을 메고 김경신의 집으로 향했다. 달도 없는 어두운 그믐날 밤이었다. 김경신의 집 주변에서 안을 기웃거리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기웅과 염문이었다. 기웅은 염문에게 눈짓을 하고 담을 훌쭉 뛰어 넘었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김경신이 머물고 있는 방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안에서는 지금 김경신과 여삼이 무슨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방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기웅(起雄)은 갑자기 방안에서 뚝 그치는 말소리에 마음이 초조했다. 여삼이 밖에서 무슨 이상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순간 김경신과 대화를 나누던 여삼(餘三)은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창이 쥐어져 있었다. 김경신은 무슨 말을 할려고 하자 여삼은 재빨리 손을 입에다 대고

“ 쉿 ! ”

하고는 재빨리 벽장뒤로 몸을 숨겼다 이때 방문이 홱 열리며 기웅이가 들어와 칼을 뽑아 김경신의 목에 겨누었다. 순간 벽장뒤에 숨었던 여삼이가 번개처럼 나타나 기웅의 앞가슴을 예리한 창끝으로 냅다 찔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 으으윽..”

기웅은 손에 들었던 칼을 떨구면서 가슴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김경신은 놀라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여삼은 피를 토하며 헐덕거리는 기웅의 목에 창을 겨누며

“ 누가 보낸 자객이냐 ? ”

하면서 복면을 벗기자 기웅의 얼굴이 드러났다.

“ ..............”

“ 누가 보낸 자격이냐고 묻고 있질 않느냐 ? ”

“ ............”

여삼은 알아채고

“ 김주원 대감이 보냈나 ? ”

기웅(起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여삼(餘三)은

“ 행실로 봐서는 니 목숨을 거두고 싶다만 너를 죽이면 우리 대감이 니 대감 심복을 죽였다고 할 것이니 너를 돌려 보내준다. 김주원 대감한테 내가 하는 말 그대로 전하거라. 곧 임금이 되실 분이 무엇 때문에 김경신 대감 나으리를 죽일려고 했는지 묻고 있다고 말이다. 어서 돌아가 그대로 전하거라 ....”

이렇게 해서 죽일 수 있는 사로잡은 기웅(起雄)을 여삼은 살려서 돌려 보냈다. 이 사건으로 김경신은 김주원이가 자기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 대감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뻔 했소이다 ”

여삼의 말에 김경신은

“ 오늘 자네가 내 집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을테지..”

“ 소생은 이미 이런 일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래서 늘 대감 주위를 살피고 있었사옵니다 ”

“ 고맙네. 이제 김주원 대감의 뜻을 알았네. 내 목숨을 구해준 자네의 은혜를 어찌 잊겠는가. 참으로 고맙네....”

“ 김주원 대감이 심복 부하를 보내어 대감 나으리를 죽이려 한다는 것은 대감이 임금이 되실 것을 두려워 해서가 아니옵니까...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소이다. 백성들은 지금과 같은 조정으로서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그러한 백성들의 민심을 김주원 대감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대감을 죽이려 한 것도 대감에게로 기울어지는 백성들의 민심을 두려워 해서이옵니다"

“ 으음... 주원이가 나를 죽일려고 하다니....”

김경신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김경신을 죽일려다가 여삼의 창에 맞아 가슴을 크게 다친 기웅(起雄)은 돌아가 김주원에게 여삼이가 전하라는 말 그대로 전했다.

“ 곧 임금이 되실 분이 무엇 때문에 김경신 대감을 죽일려고 하는지 묻고 있다고 그대로 전하라 하옵니다..”

기웅이가 전하는 그 말에 김주원은 크게 낙심하다가 화를 발칵 내어

“ 에키 이놈아... 누가 보낸 자객인지 입을 다물고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할 것이지 살려 준다고 그대로 돌아와.. 에끼 이 못난놈 같으니 부랄을 떼서 개나 줘라... 쯧쯧쯧....”

다음날 김경신은 입궐하여 왕(선덕왕)에게 김주원이 보낸 자객에게 죽을 뻔한 사실을 고했다. 그리고 처벌 해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병석에 누운 왕은 그대로 듣고는 끙끙 앓기만 하다가 김경신의 말을 묵살해 버렸다. 이 일로 인하여 왕에 대한 김경신의 감정이 좋지 않았고, 김주원과도 감정이 노골적으로 대립되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살인미수사건을 누구하나 공론화하는 대신들이 없었다. 대신들 모두가 김주원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쉬쉬하고 묻어두기에만 급급하고 있었다. 왕이 나서서 진실과 배후인물을 밝혀내야 하지만 병이 들어 국정을 볼 수 없는 처지였다. 모든 국정은 김주원의 손에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주원은 자기가 왕위에 오르면 김경신은 물론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을 모두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김경신 역시 자기가 왕위에 오르면 김주원과 그의 세력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계획을 세우고 장정들을 모아 힘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이러한 양파간의 세력다툼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역술인 박규(朴圭) 집에 어느날 응강(應江)이라는 젊은 사람이 찾아왔다. 방에 들어온 응강은

“ 이 분은 내가 모시고 있는 군주인데 사주팔자를 보고 오라고 해서 찾아 왔습죠...”

하고는 생년. 월. 일. 시를 알려 주었다. 응강은 무예가 뛰어난 김주원의 심복 부하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사주팔자가 어떤 학문인지 어깨 넘으로 들어서 대강 알고 있던차에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김경신 대감집 하인 운칠(云七)에게 김경신의 생년월일시를 전해 듣고 있다가 김경신의 사주를 보면 김경신의 운세에 대해 알게 될 것인즉 김경신의 사주를 보도록 하자고 김주원에게 진언을 하자 김주원은 김경신의 사주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는터이라 응강을 보내어 김경신의 사주팔자를 보고 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박규는 생년. 월. 일. 시를 보니 김경신의 사주인지라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 속으로 지례 짐작하고는

“ 이 사주는 누구오이까 ? "

하고 묻자 응강은

“ 우리집 상전 나으리 사주오이다 ”

“ 나으리 존함은 무엇이오 ? ”

하고 묻자 응칠은 약간 당황하는 표정으로

“ 김동복이라 합죠. 동녘동(東)자 복복(福)자라고 하굽쇼 ”

박규는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거짓으로 사주팔자를 풀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먹을 갈아 붓으로 다음과 적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時 日 月 年

丁 丁 壬 戊

未 丑 戌 辰

木 金 火 水

庫 庫 庫 庫

“ 내 설명을 잘 듣고 당신 나으리한테 가서 그대로 전하시오. 무진년(戊辰年)을 보면 수고(水庫)이고 태어나 달(月)을 보면 임술(壬戌)에 화고(火庫)가 나와 있소이다... 수고(水庫)는 물이 고여 있다는 뜻이고, 화고(火庫)는 불이 모여 있다는 뜻이오. .. 물은 불과 상극이라 이것을 오행으로는 수극화(水剋火)라고 하오... 그리고 태어난 일진(日)을 보면 정축(丁丑)이 금고(金庫)이고 태어난 시(時)가 정미(丁未)라 목고(木庫)인데 금(金)인 쇠가 목(木)인 나무를 치고 있으니 이를 또한 금극목(金剋木)이라고 하오. 쇠와 나무는 상극이다 그 말이오.. 도끼로 나무를 쪼개는 이치와 같단 말이오....”

“ 그러면 안좋다 그말이오 ”

“ 그렇소 ”

박규는 사주명국을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거짓으로 설명을 했다.

“ 물이 불을 극하고 불이 쇠를 극하고 쇠가 나무를 극하고 있는 사주인데. 이런 사주는 벼슬을 한다고 해도 오래 하지 못하고 집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야 할 팔자입죠... 이런 사주팔자는 더 이상 볼 것이 없소이다.. “

“ 그러면 이 사주는 높은 벼슬은 못하겠소 ”

“ 그렇소...”

“ 우리 나으리께서 임금에 오를 사주팔자라고 하던디 ? ”

“ 이보시오 ! 임금을 아무나 하는줄 아시오 ? ”

“ 그건 그렇소만.. 그럼 잘 알겠구만요. 우리 나으리한데 가서 그리 말씀올립죠.. ”

응칠이가 돌아간 후 박규는 이 사실을 김경신한테 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그 방법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튿날 여삼(餘三)이 말을 타고 박규를 찾아왔다. 김경신이 보내어 왔다고 했다. 박규는 여삼을 방으로 맞았다. 박규는 응칠이란 이름의 어떤 사람이 찾아와 사주팔자를 봐 달라고 해서 보니 김경신의 생년월일시라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여삼은

“ 허허 그런 일이 있었구만요. 그렇다면 그 자는 분명이 상대등 김주원 대감이 보낸 사람일 것이오 ”

“ 그 대감이 무엇 때문에 남의 사주팔자를 보려 온단 말이오이까 ? ”

“ 지피기지(知被知己)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하지 않았소 ”

그제야 박규는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고

“ 하기야 그렇소 ”

“ 그래 무어라고 말했소이까 ? ”

“ 아무리 생각해도 김경신 대감께서 보낸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거짓말을 했오이다. 이 사주는 벼슬을 해도 오래 못하고 농사나 지을 팔자라고 말이오이다 ”

“ 핫핫핫.., 참 잘하셨오. 그 자는 분명히 김주원 대감이 보낸 사람일 것이오..”

“ 더구나 그쪽에서 자객을 보내어 김경신 대감을 시해하려 했다니 앞으로 그쪽에서 어떤 일을 꾸밀지 그것이 걱정이옵니다.. 하오나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임금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니 아무리 그쪽에서 서열이 위라고 하나 임금자리는 김경신 대감 나으리께서 차지하게 될 것이오이다... ”

“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김경신 대감과 생사를 같이 하기로 작정했소 ”

“ 잘 하셨소이다 ”

“ 김경신 대감이 박공과 같은 도인을 만난 것도 우리 대감이 임금이 될 수 있는 팔자를 타고 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소 ”

“ 그렇소이다. 임금이 되는 것도 다 사주팔자에 타고 나야 합지요 ”

“ 그렇소이까. 그럼 이만 가보겠소 ”

“ 그런데 한가지 물어볼 말이 있소이다 ”

" 말씀하시오 “

“ 지금 상대등을 지내시고 있는 대감 집은 어디 오이까 ? ”

“ 북천(北川)이오 ”

“ 북천(北川)이라..”

“ 왜 그러시오.. ”

“ 그 북천이 김경신 대감 나으리를 왕으로 추대하는 명당자리오이다..”

“ 어째서 그렇소이까 ? ”

“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오이다 ”

“ 그렇소이까 ? ”

“ 김경신 대감 나으리 사주(四柱)를 보면 수(水)가 용신(用神)이오이다. 더구나 북쪽은 오행상 수(水)인지라 용신 수(水)가 북쪽 수(水)를 만나는 격이니 대운이 아주 좋사옵니다. 이 북천이 아마도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오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옵소서. 꼭 명심하시옵소서... ”

“ 알겠소이다. 대감께 그렇게 전하리다 ”

“ 북천의 신에게 기도 드리는 일을 잊지 말라고 대감께 말씀드려 주시오 ”

“ 그렇게 말씀 올리리다. 그런데 박공 ! ”

“ 예 "

" 김주원이가 어찌 우리 대감 생년월일시를 알았는지 그것이 궁금하오이다. 혹시 생각이 짚이는 데라도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오 “

“ 소인의 생각으로는 분명히 하인을 통해서 알려진 것 같소이다. 혹시 하인들 중에 김주원 대감집 하인과 내통한 사실이 있는지 알아 보시옵소서...”

“ 박공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일리가 있소이다. 우리 대감하고 그 문제를 한번 논의해 보리라 ”

돌아간 여삼(餘三)은 김경신金敬信에게 역술인 박규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김경신은 하인들을 모두 마당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 너희들 중에 김주원 대감댁 하인에게 내 생년월일시를 알려준 자가 있으면 어

서 말하거라. 자백하면 용서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로 다스릴 것이다...“

그러자 하인 운칠이가 새파랗게 겁에 질린 얼굴로

“ 대 대감 나으리 지 지가 그랬구만요 ...”

하고는 자백했다. 자백하면 용서하기로 약속한터이라 김경신은 며칠 근신하는 것으

로 이 사건을 마무리 했다.

한편 역술인 박규에게 사주팔자를 보고간 응강은 김주원에게 사주팔자를 보고

왔음을 아뢰었다.

“ 그래 사주쟁이가 뭐라드냐 ? ”

“ 벼술도 못하고 집에서 한가롭게 놀면서 농사나 지을 팔자라고 하옵나이다...

그러자 김주원은 박장대소를 하며

“ 그러면 그렇지.. 서열로 보나 내가 단연 임금자리에 앉아야 하지... 으험... 사주

팔자를 보고 오느라 수고 했다 “

하면서 김주원은 엽전 한 꾸러미를 응강에게 홱 던져 주었다. 응강은 엽전을 받

아쥐고 좋아서 입이 헤에 벌어지며 뒷뜰로 사라졌다.

왕(선덕왕)의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궁중에서는 이미 국상(國喪)을 치룰

준비를 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고, 국상이 끝나면 김주원이 왕위에 오를 준비까지

서두르고 있었다.

이제 왕이 죽으면 그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를 사람은 김주원이 될 것이 기정

사실화 되고 있었다. 김주원은 속으로는 왕이 하루 속이 죽기를 기다렸지만 그렇

다고 겉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죄 없는 어의(御醫)만 달달 볶아대고 있었다.

“ 도대체 어의는 무얼 하기에 주상 전하의 병세가 이렇게도 차도가 없단 말인가 ? ...‘

하고 호통을 칠 때마다 어의는 죽은듯 고개를 숙이고

“ 소인을 죽여 주시옵소서.. 어찌할 도리가 없사옵니다 ! ”

하면서 마치 왕의 병세가 자기의 무성의로 악화되어 가는양 어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죄만 되뇌였다. 김주원은

“ 그래가지고서야 어찌 주상을 모시는 어의라 할 수 있단 말이오. 백방으로 약을 구해 속히 전하의 옥체가 쾌차하시도록 해 보시오 ! ”

그러나 속으로는 하루 속이 왕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왕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갔다. 전국에서 용하다는 의사는 다 불러모아 왕의 병세에 매달리게 했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심지어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왕의 병세가 악화될 수록 김주원의 기세는 더욱 당당해졌다. 자기가 왕위 계승자라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그를 추종하는 대신들도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김주원은 이제 상대등(上大等)이란 최고의 벼슬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 곧 임금이 되어 앉을 용상이 눈앞에 아런거리기만 했다. 그는 턱수염을 씀다듬으로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늦더워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팔월 어느날 왕(선덕왕)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왕손을 이어갈 아들이 없기 때문에 왕과 가까운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기로 왕실과 대신들이 결정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왕이 등극하는 날이었다.

김주원金周元의 집이 북천의 북쪽에 있었는데 때마침 폭우가 쏟아져 내려 북천(北川)을 건널수가 없었다. 북천을 건너지 못하자 김주원과 측근들은 몹시 당황했다.

이미 새로운 왕이 등극하는 날이 결정된 데다가 준비까지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김주원과 그의 측근들은 마음이 무척 초조했다. 폭우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폭우는 더욱 쏟아져 북천(北川)의 수위(水位)는 범람 위기를 맞았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김경신金敬信은 여삼과 심복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궐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대궐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주원의 추종자들 중 반대하는 무리들은 주살하고 복종하는 무리들만 살려 두고는 왕위에 오르게 되니 김주원의 무리들도 모두 따라 왕의 즉위를 하례하게 되었다. 이가 곧 원성대왕이다.

좋은 꿈이 들어 맞은 것이었다. 그리고 역술인 박규의 말처럼 김경신의 사주(四柱) 용신(用神)인 수(水)가 북천의 수(水)를 만나 대운(大運)이 작용하면서 김경신은 왕이 된 것이었다. 사주팔자대로 된 셈이었다.

결국 폭우가 이틀이나 계속 쏟아지는 바람에 북천(北川)의 물이 범람하게 되자 북천(北川)을 건너지 못하고 김주원은 억울하게 왕위를 김경신에게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김주원은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억울해 하며 가슴을 치고 통곡했다.

( 상대등(上大等)이든 이벌찬(伊伐湌)이든 벼슬이 높고 낮음이 무슨 상관이옵고 또 앞에 있던 뒤에 있던 서열이 무슨 상관이옵니까. 임금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오니 벼슬이 높고 낮음이나 서열에 너무 마음 가지시지 마시옵고 주변만 튼튼하게 하시옵소서...)

역술인 박규의 말이 새삼 김경신의 귓가에서 뱅글뱅글 맴돌았다.

원성대왕(元聖大王)은 등극하자 여삼(餘三)을 이찬(伊湌) 벼슬에 제수하고 역술인 박규(朴圭)를 역리(易吏)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박규의 딸은 상궁으로 맞아 들였다.

이듬해 사월 초파일이었다. 왕은 유화부인과 함께 대신들을 거느리고 부처님 탄신 법회에 참석하게 위해 천관사(天官寺)에 납시었다. 많은 승려들과 신도들은 물론 백성들도 운집하여 행사는 다채롭게 펼쳐졌다. 황금색 가사(袈裟)을 걸친 승녀들이 승무(僧舞)를 추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바라(波羅)춤을 추었다.

- 꿍더꿍 꿍더꿍 꿍더꿍...

가락에 맞추어 붉은 빛 가사(袈裟)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승녀들은 흥겨움에 젖에 춤을 추며 석가탄신일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왕은

“ 오늘같이 기분좋은 날 짐도 한번 바라춤을 추어 보리다 ”

하고는 어좌에서 일어나 황금빛깔 어의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넓은 사찰 경내에 눈부시게 내려 앉아 있었다. 햇살에 만발한 각양 각색의 꽃들도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다.

한참 즐거운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데 급이 달려온 전령이 여삼(餘三)의 앞에 무릎을 꿇고 부복을 하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 대감 나으리 ! ”

“ 어디에서 온 전령이냐 ? ”

“ 병부령(兵部令) 유익(臾翼) 장군께서 보내신 전령이옵니다. 이 서찰을 급히 대감께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 유익장군이 ? ”

“ 그러하옵니다 ”

여삼(餘三)은 두루마리로 된 서찰을 급이 펼쳐 읽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 반역이라니 이런 쳐 죽일놈들 ...”

하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 잠시 기다리거라. 전하께 고해 올리겠다 ”

“ 예. 대감 ! ”

여삼(餘三)은 승려들속에 묻혀 바라(波羅)춤을 추고 있는 왕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왕에게 귓속말로 서찰에 적힌 내용을 고했다. 왕은 춤을 멈추고 여삼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왕과 여삼의 얼굴에 긴장이 흘렀다. 유화부인이 왕에게 다가서며

“ 무슨 일이 옵니까 ? ”

하고 묻자 왕은

“ 김주원 무리들이 일부 지방 군주를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하오 ”

유화부인은 깜짝 놀라며

“ 이 일을 어이할꼬... 반란이라니..”

이때 여삼은 군중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 바라춤을 멈추시오 ! ”

흥겨웁게 돌아가던 가락이 뚝 그쳤다. 군중들 무슨 일인가 긴장하여 여삼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여삼은 다시 소리쳤다.

“ 다들 들어시오 ! 지금 김주원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하오. 오늘 초파일 행사는 이 정도로 하고 다들 자기 위치로 돌아가 주기 바라오. 우리는 곧 전하를 뫼시고 환궁할 것이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킨 무리들을 도륙할 것이오. ”

그러자 장내는 어수선해지면서 군중들은 수근거리며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왕과 유화부인은 여삼과 장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어가(御駕)에 올라 환궁 길에 올랐다. 많은 대신들과 장수와 군사들이 어가(御駕)의 행열 뒤를 따랐다. 말을 타고 어가(御駕)의 옆에 바짝 붙어서 호위하고 가던 여삼은 왕에게

“ 전하 ! 이번 기회에 김주원 무리들을 씨도 없이 모조리 제거하시옵소서... 일부 대궐에 남아 있는 김주원 잔당들이 전하가 잠시 대궐을 비운 사이 일부 지방 군주들과 짜고 반역을 도모한 모양이옵니다... 유익장군이 병권을 잡고 있는 한 김주원 일당들이 반역을 도모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왕은

“ 지금 생각하면 내 처남을 병부령에 앉혀 놓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싶소...”

“ 그러하옵니다 전하.. ”

병부(兵部)는 군사를 지휘 통괄하는 부서이다. 이 병부의 최고 수장이 병부령이다. 이 자리에 왕의 처남인 유익을 앉혀 놓은 것이었다. 왕은 지난날 역술인 박규가 하던 말이 문득 뇌리에 떠올랐다.

( 병부만은 전하와 생사고락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시든지 아니면 전하께서 직접 맡으시옵소서... 법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오라 만드는 것이옵니다. 임금이 만들면 곧 법이 되는 것이옵니다.....)

이 말은 병권(兵權)을 잡고 있는 한 어떤 무리들도 반역을 도모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왕은 처남(妻男)인 유익(臾翼)을 병부(兵部)의 수장(首將)에 임명한 것이었다.

여삼(餘三)은

“ 전하 역리(易吏) 박공(朴圭)은 참으로 훌륭한 역술가이옵니다 ”

“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

“ 오늘의 이런 일도 박공은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하옵니다 ”

그러자 왕은 놀라며

“ 뭣이라 ?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고 ? ”

“ 예. 전하 ! ”

“ 오늘 박공이 전하와 함께 초파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예측하고 대궐에 남아서 병부령 유익장군과 함께 김주원 무리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하옵니다...”

“ 허어 그랬구만... 그래서 박공이 보이지 않았구만.. ”

“ 뿐만 아니라 전하의 안위를 위하여 일만 군사로 하여금 전하를 호위하도록 했다고 하옵니다. 이 주위에 군사들이 배치돼 있사옵니다. 미리 전하께 말씀드리지 못하여 황공하오이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한 일이옵니다 ”

왕은 더욱 놀라며

“ 일만의 군사로 나를 호위하게 했다 ?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이 주위에 군사들을 배치해 두었다고 했소 ? "

" 예. 전하 ! 저기 보시옵소서...“

여삼이 가리키는 산아래 쪽을 본 왕은 또 다시 깜짝 놀랐다. 왕만 놀란 것이 아니라 유화부인도 그리고 왕을 호위하고 가던 대신들과 장수들도 놀랐다. 많은 군사들이 어가(御駕)의 행렬과 합류하기 위하여 이쪽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은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이 났다. 눈물을 용포 자락으로 지우며

“ 그래. 저 군사들이 병부령 수하란 말인가 ? ”

“ 그러하옵니다. 병부령 수하 군사가 바로 전하의 군사가 아니옵니까... ”

“ 왜. 아니 그런가.. 허어 참으로 장하이...”

유화부인도 감격에 벅찼다. 오라버니(臾翼)가 병권을 잡고 있는 한 아무도 반역을 도모할 수 없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여삼은

“ 지금 저 군사들은 전하를 뵙고 곧 바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서라벌로 향할 것이옵니다...”

“ 으음.. 그래 ”

이때 병부령 수하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와 어가(御駕) 앞에 멈추고는 말에서 내려 왕에게 엎드려 부복하자 여삼이

“ 병부령 장수인가 ? ”

“ 그러하옵니다. 반란을 진압하는 군사와 합류할지 어찌할지를 물어오라는 전갈을 받고 왔사옵니다 ”

그러자 여삼은

“ 지금 반란을 진압하는데 군사가 얼마나 동원되었다 하더냐 ? ”

“ 일만의 군사가 출동했다 하옵니다. 반란의 규모가 크다고 하옵니다 ”

“ 그렇다면 지금 바로 서라벌로 향해 반란을 진압하는 군사와 합류하여 반란을 일으킨 무리들을 완전히 도륙하고 반란을 주도한 김주원과 그의 수하 두목을 생포해 오느라. 만일 생포하기 어려우면 그 자리에서 참살하고 목을 베어 가져 오너라 ”

“ 예. 대감 나으리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

하고는 장수는 왕과 여삼에게 예의를 표하고 나서 말을 타고 되돌아 갔다.

여삼은 군사들에게

“ 환궁을 서둘러라 ! ”

하고 명령하자 어가(御駕)의 행열이 더욱 빠르게 움직이었다.

“ 이럇 ! ”

하며 여삼(餘三)이 말에 채칙을 가하자 말은 ‘피잉’ 울며 더욱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제2장

원성왕(元聖王)이 등극하던 해였다. 왕은 상대등(上大等) 여삼(餘三)을 불렀다.

“ 지문(池文)은 선덕왕 때부터 충신으로 알고 있소. 이런 충신을 내치기는 아까우니 조정에 나오도록 해 볼까 하온데 상대등의 생각은 어떠시오? ”

“ 하지만 지문은 김주원의 충신이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김주원의 무리를 받아 들이려고 하시옵니까? ”

“ 비록 지문이 김주원에게 벼슬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영특하고 청렴결백 하기로 이름이 난 사람이오. 그런 사람을 내친다는 것은 적절치 않는 처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

“ 꼭 대왕께 지문(池文)을 조정으로 불러 들이신다면 소신이 입궐 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

“ 그리해 주시오 ”

여삼은 지문(池文)이 영특하고 청렴결백한 신하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문은 왕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들어 섰다. 지문(池文)이 왔다는 말을 듣고 원성왕은 내관(內官)에게

“ 얼른 이리로 모셔라 !

지문(池文)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 폐하 ! 소인을 불렀다 하여 왔사옵니다 ”

하고 엎드려 절을 올리자 원성왕(元聖王)은 크게 기쁘하며

“ 참으로 오랜만이구려. 그렇지 않아도 어찌나 보고 싶던지 와 달라고 기별을 넣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니 참으로 고맙소...”

“ 폐하 ! 신을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불러주시니 은총이 하해(河海)와 같사옵니다 ”

“ 하해라니 당치도 많소.. 어서 앉으시오 ”

“ 예. 폐하...”

" 나와 함께 벼슬을 할 때를 생각하면 내 어찌 그대를 잊겠소. 그래서 각별히 그대에게 벼슬을 내릴려고 하니 나를 봐서라도 사양하지 말았으면 하오 “

그러자 지문(池文)은 깜짝 놀라며

“ 폐하 ! 신에게 벼슬이라니요 ? 어인 말씀이옵니까 ?

“ 내 그대의 성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소.....버리기 아까운 사람이라 짐의 곁에 두고자 오라고 한 것이오.. ”

하고는 관직에 나올 것을 제의 하였다. 그러자 지문(池文)은 놀라며

“ 폐하 ! 소인에게 벼슬이라니 아니되올 말씀이옵니다... 무능한 소인에게 어찌 국정에 참여할 소임을 맡기실려고 하시옵니까.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거두어 주시옵소서...”

“ 김주원 대감의 충신이었다고 그러시오? ”

“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러하옵니다 ”

“ 하지만 모름지기 신하는 임금이 부르면 나오는 것이 도리가 아니오?

“ 폐하 ! 신이 선덕왕 때 폐하와 함께 벼슬을 하였는데 지금 신을 부른 것은 옛 정을 잊지 않으신 것이옵니다. 그러나 신은 김주원 대감 수하에서 벼슬을 하다가 폐하께서 등극하시자 곧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지내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옛 일을 잊지 않으시고 신을 부르셨으니 신이 올라와서 뵙고 곧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옵니다. 벼슬을 한다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오니 살펴주시옵소서...”

하면서 벼슬을 내릴려고 한 원성왕의 뜻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원성왕은

“ 그대의 말은 바꿀 수 없는 근본 도리이니 의리상 뜻을 빼앗기가 어렵소. 그러나 그대를 내 곁에 두고자 하는 짐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으니 한번 더 생각해 보길 바라오”

“ 폐하 ! 신이 본래 한미(寒微)한 사람으로 선덕왕 조정에 벼슬하여 이찬에 이르렀사옵니다. 신이 듣건데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고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한다 하옵니다. 바라옵건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여 신이 두 성(姓)을 섬기지 않는 뜻을 이루게 하고 효도로 노모를 봉양하게 하여 여생을 마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

그러자 원성왕은

“ 그대의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성품을 잊지 못하여 나와 함께 정사를 논하기를 원하여 벼슬을 내리고자 하는데 사양을 하겠단 말인가? ”

“ 폐하 ! 망극하오이다..”

“ 정 그렇다면 대신들과 한번 논의를 해 보리다 ”

“ 거듭 청하옵건데 소신에게 벼슬을 내리시겠다는 뜻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

원성왕은 이튿날 조정에 나아가서 상대등(上大等) 여삼(餘三)에게 물었다.

“ 지문(池文)이 절개를 지키고 벼슬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예전에 이런 선비가 있었는지 짐은 알지 못하였다. 경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 ”

그러자 여삼(餘三)은

“ 폐하 ! 이런 선비는 마땅히 머물기를 청하여 벼슬과 녹봉을 더해 주어야 하옵나이다. 그러나 청하여도 억지도 고향으로 간다면 그 마음을 다하게 하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옵나이다. 광무제는 한나라의 어진 임금이지만 임광이 벼슬하지 아니하였사옵니다. 선비가 진실로 뜻이 있으면 빼앗는 것은 도리가 아니옵니다. 굽어 살피시옵소서... ”

원성왕은 여삼(餘三)의 말을 받아들여 지문(池文)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윤허하였다. 그러자 사관(史官) 박강(朴康)은

“ 폐하 ! 지문(池文)이 능히 옛 임금을 위하여 절의를 지켜 공명을 뜬 구름같이 여기고 벼슬과 녹봉을 헌신짝같이 여겨 초야에서 여생을 마치려 하였으니 참으로 충절한 선비가 아니옵니까 ”

하였다. 지문(池文)은 뜻만 있었으면 얼마든지 벼슬을 할 수 있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것이 자신의 뜻을 지켜야 할 근본 도리라고 믿고 지문(志文)는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한낱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 부귀영화에 자신의 몸을 더럽히면서 지조를 굽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문(池文)는 원성왕에게 두 번 절을 올리고 나서 상대등 여삼에게도 하직 인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원성왕은 대궐을 나서는 지문(池文)의 뒷 모습을 바라보면 무척 안타갑게 생각했다. 훌륭한 인재 하나를 놓쳤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문(池文)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매우 영특하였다. 나이 7살 때 아버지 지원진(池元進)이 선산 고을 원님이 되었다. 그런데 지원진도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성품이라 부정(不正)과 비리(非理)를 하지 않다보니 나라에서 주는 녹봉(祿俸)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어느날 지원진은 아들 지문(池文)를 안방으로 불렀다.

“ 아버님 ! 소자를 불렀습니까 ?

“ 그래 앉거라 ”

지문(池文)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았다. 지원진은

“ 나에게 사정이 좀 있으니 외갓집에 좀 가 있거라 ”

머리가 영특한 지문(池文)이 아버지의 말 뜻을 모를리 없었다. 아버지가 받는 녹봉이 적어서 입이라도 하나 들려고 그러시는구나 생각하고 두말하지 않고 아버지의 말대로 부모와 떨어져 외갓집으로 갔다. 한참 부모가 그리운 어린 나이지만 길재는 눈물을 감추고 아버지의 말에 따랐다.

여름 어느 날이었다. 지문(池文)은 마을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개울에서 혼자 가재를 잡고 있었다. 아낙네들은 가재를 잡고 있는 지문을 보면서

“ 저 아이가 지원진 원님의 아들이라 하지 않겠시우 ”

“ 우째서 외갓댁에 와 있대요 ? ”

“ 나도 그건 모르겠는데 듣기로는 원님 녹봉이 적어서 입이라도 하나 들려구 외갓댁으로 왔다는구먼.... ”

“ 하이고 시상(세상)에 다른 고을 원님들은 녹봉도 많다는데 우째 지원진 원님은 녹봉이 적다요.. 그까짓 자식 입하나 들려구 처가댁으로 자식을 보냈다요... 고것이 참말인가 ? ”

“ 워따 ? 참말이 아니라믄 자식을 멀리 내쫒는 아비도 있대요 ? ”

“ 마음이 정직혀 부정을 하지 않아 그렇다는디 고거 참말로 맞는 얘긴감 ? ”

“ 참말이 아니라믄 워째 어린 자식을 외가로 보냈겠으라우 ”

“ 참말로 그런 원님도 없구만이라우... 원 시상에....”

순간 아낙네들은 갑자기 눈을 휘둥거렸다. 지금 지문(池文)이 조그마한 가재 새끼 한 마리를 손에 쥐고는 유심히 들여다 보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낙네들은 잠시 빨래하던 손을 멈추고 길재를 바라보며 귀를 귀울였다. 지문(池文)은

“ 가재야, 가재야, 너를 보니 마음이 아프구나. 너도 어미를 잃었느냐. 네가 어미를 잃은 것이 나와 같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너를 놓아주니 어미를 찾아가 함께 잘 살아라...”

하고는 또 다시 그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낙네들은

“ 아니 저 아이가 시방 뭐라 한다요 ? ”

“ 가재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구 안캅디여 ”

“ 가재도 어미를 잃었성께 어미 잃은 것이 지와 같은게 슬프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우...”

“ 하이고 시상에 가재를 잡아놓고 불쌍하다고 울다니..”

“ 그러게 말이라우. 참말로 마음 하나는 아비를 쏙 빼닮았서라우...”

지문(池文)은 손에 잡았던 가재를 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어미 없이 혼자 서성거리는 새끼 가재가 불쌍하여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슬프게 울었다. 이를 본 아낙네들도 눈물을 치맛자락으로 지우며 흐느껴 울자 개울가는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듬해 지문(池文)의 아버지 지원진은 서라벌(徐羅伐)로 가게 되자 지문도 아버지를 따라 서라벌로 올라왔다. 이때 이찬 벼슬에 있던 김여신의 아들 김모언과 같이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였다. 지문(池文)은 김모언과 남달리 정과 우의가 돈독했다. 개인적으로 무척 친했다. 이찬(벼슬) 김여신은 자기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아들(김모언)의 친구 지문(池文)의 영특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후 지문(池文)은 이찬 김여신의 천거로 말직(末職)인 조위(造爲) 벼슬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는 벼슬이 차차 높아져 원성왕이 등극하기 전까지 선덕왕의 족질(族姪)인 상대등(上大等) 김주원 밑에서 이찬 벼슬까지 했다. 그는 김주원의 충직한 신하였기 때문에 원성왕(元聖王 : 김경신) 밑에서 벼슬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원성왕 재위 4년(784년) 왜군(倭軍)이 신라의 해안을 침입하고 곡물과 부녀자를 강탈해 가는 등 횡포가 심해지자 원성왕은 해안경비를 강화하는 등 왜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그 이듬해인 서기 785년 왜군은 1천여 명의 군사가 50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도성(都城) 가까운 해안에 상륙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원성왕(元聖王)은 오달(吳達)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군사 5천여 명을 주어 왜군(倭軍)을 토벌하라고 명령했다. 오달 장군은 기마병 5천을 이끌고 동쪽 해안으로 급히 나아갔다. 그리고는 왜군의 진격로를 막고 전투하기에 유리한 곳을 찾아 군사들을 배치하고 진지를 구축하게 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왜군이 창칼을 들고 도착했다. 그러자 오달(吳達) 장군은

“ 공격하라! ”

하고 명령하자 신라군은 곧바로 전투에 돌입하였다. 왜군(倭軍)과 신라군의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나 왜군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했고 곧바로 신라군에게 크게 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왜군(倭軍)은 거의 전멸되었고 해안에 정박된 왜군의 병선은 모두 불타 버렸다. 이 전쟁에서 신라군에게 생포된 왜군은 40여 명이었으며 왜군의 부상자들은 모두 참살해 버렸다.

오달(吳達) 장군은 왜군 토벌에 성공한 후 생포한 왜군을 이끌고 도성으로 돌아왔다. 원성왕(元聖王)은 오달 장군의 전공을 높이 치하했다. 이 전투가 있은 후 왜군은 한동안 신라 해안을 침입하지 않았다.

선덕왕 때였다. 선덕왕은 내물왕의 10대 손으로 왕족으로 때어났으나 왕위를 승계할 신분은 아니었다. 그는 일찍이 이찬 벼슬의 품계를 받고 성덕대왕신종 제작을 감독하였고 혜공왕 10년인 764년에는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되었다. 그가 상대등에 오르기 전 두 차례의 반란이 있었다.

특히 혜공왕 4년에 일어난 대공의 난 때에는 33일간이나 궁궐이 포위되는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이런 탓에 당시 조정은 매우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정국은 그야말로 안개속에 갇힌 듯하였다. 반란 사건은 김양상이 상대등에 오른 뒤에도 계속되었다. 혜공왕 11년 6월에 국정을 맡고 있던 시중 김은거가 반역죄로 죽었고, 또 8월에는 새로운 시중 정문이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김은거와 정문은 김양상파와의 정치적 대결에서 희생된 것이었다. 김양상은 혜공왕 재위 13년에 상소를 올려 시국을 극렬하게 비판했다. 김양상과 혜공왕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급기야 왕당파의 영수인 이찬(벼슬) 지정이 780년 2월에 친위혁명을 일으켜 대궐을 장악해 버렸다.

이에 김양상은 군벌인 이찬(벼슬) 김경신(원성왕)과 결탁하여 역혁명을 일으켰다. 양쪽 대는 약 두 달간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고, 결과는 김양상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김양상은 혜공왕과 왕비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자신과 함께 반란을 도모했던 이찬 김경신을 상대등(上大等 : 벼슬)으로 임명하고 아찬(벼슬) 의공을 시중으로 삼아 조정을 꾸렸다. 그리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781년 7월에 몸소 패강 남쪽까지 가서 주(州)와 군(郡)의 백성들을 돌아 보았다.

또한 이듬해 2월에는 한산주를 순행하고 그 곳 주민들을 패강진으로 옮겨 북방의 영토를 안정시켰다. 7월에 시림벌에서 대규모 군대를 사열하여 군대의 기강을 다잡았다. 그러나 이때 선덕왕은 이미 노쇠한 몸이었다. 그래서 그는 784년 4월에 왕위에서 물러나고자 했다. 하지만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을 비롯한 여러 신하가 받아들이지 않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선덕왕의 뒤를 이어 원성왕(元聖王 : 김경신)이 등극한 후에도 김주원을 옹호하는 반대파 세력들의 반란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더구나 나이가 많아 왕위에 오른 원성왕(元聖王)은 후계자 추대를 놓고 신하들 사이에 논란이 분분하였다.

“ 폐하 ! 세자 책봉이 급하옵니다. 인겸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시옵소서...”

이와같은 이찬(벼슬) 숭빈의 건의는 사전에 왕후인 숙정과 밀약이 있었던 것이다. 원성왕은 담담한 표정으로 한참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 경의 생각이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리다 ”

하자 숭빈은

“ 폐하 ! 생각하시나마나 그렇게 결정하시옵소서. 세자 책봉 문제는 속히 매듭을 지으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

하였다. 그러나 원성왕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찬 숭빈은 대전을 나온 후 대신들에게 인겸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하자고 압력을 가했다. 대신들도 숭빈의 압력에 굴복하는 듯 인겸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밀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다음날 이찬 숭빈은 여러 대신들과 함께 대전(大殿)으로 왕을 친견하였다.

“ 폐하 ! 세자 책봉을 윤허하시옵소서... 차일피일 미루시지 마시고 속히 매듭을 지으시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이찬 숭빈의 말에 다른 대신들도 한결같이

“ 그렇게 하시옵소서 폐하 ! ”

“ 폐하 ! 세자 책봉을 결정하시옵소서 ”

“ 속히 윤허하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 폐하 ! ”

이찬 숭빈과 대신들은 인겸을 세자로 책봉하라고 원성왕에게 매일같이 주청을 드리자 원성왕은 마침내 인겸으로 세자로 책봉할려고 도승지를 불렀다.

“ 도승지는 들라 ! "

" 예. 폐하 “

“ 인겸을 세자로 책봉할 것이니 대신들을 모두 들라고 해라 !”

원성왕은 시중(侍中 : 벼슬) 준옹과 이찬 숭빈을 비롯하여 많은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인겸을 세자로 삼겠다고 공포했다. 왕자 헌평을 모시고 있는 당지(堂指)는 이 소식을 듣고 곧 바로 달려가 헌평에게 알렸다. 그러자 헌평은 노발대발하며

“ 폐하께서 인겸 형님으로 세자로 책봉했다니 혹시 폐하께서 노망이 드신게 아닌가... 비록 인겸 형님이 장자이긴 하지만 몸이 허약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누워 있는데 그런 형님에게 임금 자리를 물러주다니.. 허어 이거야 원.. 폐하께서 노망이 드셔도 아주 크게 드신게로구만...”

하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 당지야 ! ”

“ 예. 왕자님 ! ”

“ 너는 이 일을 어찌 생각하느냐 ? ”

“ 천부당 만부당 하옵지요...”

“ 천부당 만부당 하다니 ? 그럼 너는 누굴 세자로 삼았으면 좋다고 생각하느냐 ?

“ 그야 당연히 헌평 왕자님이 아니시옵니까 ? "

“ 내가 ? ‘

“ 예. 왕자님..

“ 으음. 오늘 너 하고 사냥이나 하러 가자. 말 두 필을 끌어내고 창과 칼도 가져 오너라 ”

“ 예. 왕자님 ”

둘째 왕자 헌평은 당지(當池)가 가져온 칼을 허리에 차고 말을 타고 창을 꼬나 들었다. 당지(當池)도 말을 타고 창을 들었다. 헌평은

“ 내 뒤를 따르거라 ! 이럇 ! ”

하며 말에 채칙을 가하자 말은 핑 울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헌평은 그 길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짐승들을 쫓아 창을 던져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았다. 헌평은 호랑이 껍질을 벗기자 당지는

“ 왕자님 ! 호랑이 껍질을 벗겨 무엇에 쓸려고 하시옵니까 ? ”

“ 세자에게 선물로 받칠까 한다 ”

“ 세자라니요 ? 인겸 왕자님 말씀이십니까 ? ”

“ 그 사람 말고 세자가 또 있느냐 ? ”

“ 껍질을 다 벗겼으니 이젠 돌아가자 ”

헌펑은 당지를 데리고 말을 타고 대궐로 돌아왔다. 이튿날 헌평은 세자(인겸)가 머물고 있는 방문을 홱 열고 호랑이 껍질을 세자(인겸) 앞에다 홱 던지자 세자(인겸)는 기절하듯 놀라

“ 아니 이게 무엇인가 ? "

“ 보면 모르오. 세자가 된 형님에게 선물할려고 일부로 사냥을 나가 잡은 것이오 .......”

“ 이런 괫심한 것 같으니...”

헌평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횅하니 사라졌다. 헌평은 내심 몸이 허약한 인겸을 세자로 책봉한 것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자(인겸)은 다급하게

“ 윤상궁 들라 !”

“ 예. 마마 ”

방문이 열리고 윤상궁이 허리를 굽히고 들어서자

“ 이걸 갖다가 폐하께 받쳐라 ”

“ 이게 무엇이옵니까 ? ”

“ 헌평 아우가 나에게 앙심을 품은 징표이니라. 아마 내가 세자로 책봉된 것이 못마땅한가 보구나 ”

“ 아니 ? ”

윤상궁은 놀라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 어서 폐하께 받치래도. 그리고 헌평이가 한 짓거리라고 말씀드리거라 ”

“ 하오나 어찌 이걸 폐하께..”

하면서 윤상궁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 못하면 내가 직접 가져가마 ”

하고는 세자(인겸)는 호랑이 껍질을 직접 들고 나갔다. 세자(인겸)는 호랑이 껍질을 원성왕(元聖王) 앞에 내 놓으며

“ 폐하 ! 이걸 보시옵소서 ”

“ 이게 뭣이냐 ? ”

하고는 호랑이 껍질을 자세히 보고는

“ 아니 이건 호랑이 껍질이 아니냐 ”

“ 그렇사옵니다. 헌평이가 이 호랑이 껍질을 소자에게 던지고 갔사옵니다 ”

“ 왜 ? ”

“ 뻔하지 않사옵니까 ? ”

“ 뻔하다니 ? ”

“ 폐하께서 저에게 세자로 책봉하시자 앙심을 품은 게 아니오이까 ”

“ 고얀놈 같으니라구...”

“ 폐하 ! 이 일을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 ”

“ 글쎄. 어찌하면 좋겠느냐 ?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세자(인겸)을 지켜줄 것이지만 내가 죽으면 누가 우리 세자를 지켜줄지 그것이 걱정이다. 나는 이미 나이를 먹어 노쇠해 가고 지금 조정에서는 인겸을 세자로 책봉한 일을 놓고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 그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

“ 몸이 쇠약하여 임금이 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 하지만 장자가 마땅히 임금의 대통을 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 ”

“ 그렇긴 하지만 몸이 허약하면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지.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조정 대신들 간에도 말이 많구나 ”

“ 그러시다면 반대하는 여론을 몰아낼 수 있는 대책을 세우시옵소서..”

“ 어떤 대책을 말이냐 ? ”

“ 반대하는 무리들을 모조리 제거하시옵소서..”

“ 제거라니 죽이란 말이냐 ? "

" 죽이지 않으시면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 “

“ 어찌하면 좋을지 그게 난감하구나 ”

“ 주저하시지 마시고 그들을 죽이셔야 하옵니다 ”

한편 둘째 왕자 헌평은 앞에 앉은 김하륜(金河倫)에게

“ 그래 우리 장인과 잘 아는 사이라 하셨오 ? "

“ 그렇사옵니다. 정함 대감께서 꼭 만나뵈오라 하시어 이렇게 찾아왔사옵니다 ”

“ 그래. 나에게 할 말이 무엇이오. 기탄없이 말씀해 보시오 ”

김하륜(金河倫)은 잠시 주위를 살피자 왕자 헌평은

“ 나와 은밀히 나눌 얘기라면 주위 사람을 물리치리다. ”

하고는 밖을 향해

“ 당지야 ! ”

하자 밖에서

“ 예. 왕자님 ! ”

“ 다들 멀리 물러서 있거라.. 가까이서 엿듣는 자는 목을 자를 것이다...“

하고는 김하륜(金河倫)에게

“ 어서 말해 보시오 ”

“ 사실 이번 세조 책봉문제 말씀이옵니다 ”

“ 세자 책봉은 아바마마의 뜻대로 잘 되었지 않소이까 ? ”

“ 아니 잘 되다니요 ? ”

하며 김하륜(金河倫)은 이외인듯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왕자 헌평은

“ 그럼 대감은 이번 세자 책봉이 잘못되었다 말이오 ? ”

“ 그렇습니다. 비록 장자이긴 하지만 몸이 허약하여 병석에 눕는 날이 많은데 이런 분이 과연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할런지 의문입니다. 장자가 부적절 하다면 마땅이 둘째 왕자로 세자로 책봉돼야 하지 않습니까... 건강이나 자질로 보나 헌평 왕자님이야말로 세자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겸으로 세자를 세우시다니... 이건 안될 말입니다 ”

“ 날 보고 세자라니 당치도 않소 그건...”

“ 아닙니다. 헌평 왕자님께서 세자로 책봉되셔야 합니다.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

“ 그러면 날 보고 어찌하란 말이오. 폐하께 나를 세자로 책봉해 달라고 주청이라도 드리란 말이오 ? 이제 다 물 건너간 일이니 돌아가시오 “

“ 비록 폐하께서 내리신 용단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세자책봉 문제는 이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입니다. 지금 곳곳에서는 반란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폐하의 등극에 반대했던 김주원 대감의 무리들입니다. 이런 마당에 병약한 세자께서 임금이 되신다면 반란을 도모할려는 김주원 대감의 무리들은 더욱 좋아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헌평 왕자님께서 소인에게 힘을 주신다면 잘못된 세자책봉을 바로 잡는데 일조를 할 것입니다 ”

“ 어떤 힘을 말이오 ? "

" 소인에게 사병(私兵)들을 모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 사병들을 ? ”

“ 예. 모우는 것은 소인이 하겠으나 두기는 헌평 왕자님 수하에 두십시오. 헌평 왕자님을 위해서라면 이 소인의 목숨을 기꺼이 내 놓겠습니다. 믿어주십시요...”

이렇게 김하륜(金河倫)은 왕자 헌평과의 생사고락을 맹세하자 헌평도 이를 수락하였다. 김하륜은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불러모아 헌평 수하에 두었다. 그리고 칼과 창은 물론 활쏘는 법과 택견 등 무예를 가르치었다. 날이 갈수록 헌평을 추종하는 장정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고, 왕자 헌평은 점점 세력을 키워 나갔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조정 대신들은 헌평의 처사가 못마땅하고 힘이 더 커지면 자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하여 이 일을 원성왕에게 논의하기 위해 입궐하였다.

“ 폐하 ! 왕자들을 각 지방으로 봉하여 멀리 보내심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더 이상 이대로 두셨다가는 장차 우환을 남기실 것이옵니다 ”

“ 그래. 김하륜이 헌평과 내통한다는 사실이 참이오 ? ”

“ 폐하 ! 불을 때지 않는 굴뚝에 어찌 연기가 나겠사옵니까 ? 신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하륜은 장정들을 모우고 모운 장정들은 헌평 왕자님 수하에서 무예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헌평 왕자님이 사병을 둔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옵니까. 이는 세자 책봉에 앙심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옵니까 ? "

" 반란이라니 ? 헌평이가 반란을 꾀할 목적으로 사병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그말이오 ? “

“ 그렇사옵니다 폐하 ! ”

“ 허허. 이거야 원.... 이러다가는 대감의 말처럼 왕자들끼리 피바람이 한바탕 불겠구만....”

“ 그러니 서둘러 반란의 화근을 잘라 버리시옵소서, 더구나 지금도 폐하가 왕위애 오른 것을 반대한 김주원 세력들이 호시탐탐 반란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말도 들리옵니다. 이런 판국에 헌평 왕자님께서 반란을 획책하신다면 이 나라 종묘 사직이 다시 김주원 세력들의 손으로 들어갈 것이옵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세자의 몸이 병약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오. 하지만 이제와서 다시 세자를 책봉할 수 없는 일이 아니오 "

" 이왕 결정된 일은 그대로 밀고 나가서야 하옵니다 “

“ 그러하옵니다”

“ 하오나 폐하 !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도 나쁘지 않사옵니다. 세자 책봉이 잘못되었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논의 하시옵소서... ”

“ 다시 논의 하다니 당치도 않사옵니다. 반란의 화를 자르시옵소서 ”

“ 반란의 화를 자른다 ? ”

" 그러하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폐하께 주청을 드리는 것이옵니다 “

“ 알겠소.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 좋은 묘안이라도 있으면 말해 보시오 ”

“ 우선 김하륜을 헌평 왕자님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시옵소서. 두 사람의 사이를 멀리 갈라 놓자는 것이옵니다. 그런 다음에 김하륜을 없애 버리시옵소서... 폐하께서 명령만 내리시다면 그 일은 신이 하겠사옵니다 ”

“ 으음...”

이렇게 하여 원성왕은 도승지를 불러 김하륜(金河倫)을 동래(東萊) 원님으로 보내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김하륜(金河倫)은 헌평을 찾아가 주안상을 놓고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었다. 김하륜은

“ 소인을 동래로 보낸 것은 아마도 숭빈대감이 폐하께 주청을 드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 그럴테지. 나와 대감을 멀리 떼어놓기 위한 숭빈대감의 계략이 분명하오 ”

“ 그렇습니다.. 그러니 숭빈 대감이야말로 우리가 솎아내야 할 첫 번째 인물이 아닙니까 ? 어차피 제거해야 할 인물이라면 자객을 보내어 빨리 처리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 ”

“ 아직은 안되오. 워낙 아바마마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라 잘못 죽였다가는 우리가 역습을 당할 수도 있소. 그러니 아직은 죽이지 말고 좀더 두고 봅시다. 좀더 두었다가 때가 오면 죽이자는 말이오 “

“ 그럼. 그렇게 합지요 ”

“ 대감의 동래 원님 부임을 축하하는 잔치를 내일 베풀 것이니 우리 수하 장정들을 모두 불러 모우시오 ”

“ 예. 그렇게 합지요 ”

이튿날이었다. 김하륜(金河倫)의 집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동래(東萊) 원님으로 떠나는 이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런 잔치를 통하여 동지들의 결속을 다지자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

넓은 대청마루 가득하게 모인 장정들은 큰 술상에 둘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희희덕거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왕자 헌평이 앉아 있고 헌평 옆에는 김하륜이 앉아 있었다. 한참 술잔이 돌아가는데 헌평은 좌중을 향해

“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을 보니 참으로 내 마음이 뿌듯하오. 내 수하에 이렇게 많은 충신들이 있다니 내 오늘 기분이 좋소. 여러분들은 폐하께서 어찌하여 김하륜 대감을 갑자기 동래 원님으로 보내게 되었는지 아시겠소 ? ”

그러나 좌중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헌평의 얼굴만 쳐다보고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헌평은 다시

“ 알아도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여러분들의 마음 이 헌평은 알고도 남음이 있소.. 그건 폐하께서 김하륜 대감을 나와 멀리 때어놓기 위해서요... 그리고 이 일은 숭빈 대감이 폐하께 주청을 드린 것이오. 말하자면 숭빈대감의 계략이란 말이오. 물론 여기에는 세자(인겸)를 옹호하는 대신들도 끼어 있소. 분명히 말하지만 김하륜 대감을 내 옆에서 때어놓자는 수작이오. 이런 수작을 그대로 두어도 되겠소 ?... ”

그러자 장정들 가운데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 그대로 두어선 안됩니다. 그런 일을 꾸민 숭빈대감부터 없애야 합니다 ”

하자 장정들은 일제히

“ 옳소 ”

하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하륜은

“ 다들 옳은 말을 했소. 숭빈대감은 숙정왕후와 손을 잡고 조정을 손아귀에 넣을 계략을 꾸미고 있소. 그렇게 되면 헌평 왕자께서 무사치 못할 것이고 나와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이미 그 일은 시작되었소. 내가 동래(東萊) 원님으로 쫒겨나는 걸 보시오. 숭빈대감은 숙정왕후의 사주를 받아 몸이 건강하고 역특한 헌평 왕자를 제치고 병약한 인겸을 세자로 책봉했소. 서열로 따지면 마땅히 장자가 세자로 책봉돼야 하지만 병약하기 때문에 임금이 되기에는 적절치 않소. 그래서 몸이 건강하고 영특한 헌평 왕자님을 임금으로 추대해야 하오. 이것이 건강이나 자질로 보나 헌평 왕자님께서 마땅이 세자로 책봉되어야 하지 않소.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숭빈대감을 앞세워 인겸을 세자로 책봉한 것이요. 세자를 잘못 책봉한 숭빈대감이야말로 역적이란 말이오. 이런 역적들을 몰아내고 잘못된 세자책봉을 바로 잡아 놓겠다는 것이 우리들의 뜻이 아니오 ”

“ 옳소 ”

하는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왕자 헌평은

“ 어쨋던 폐하께서 김하륜 대감을 동래(東萊)로 내쫒았으니 우선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소. 모두들 김하륜 대감의 전별을 고하기 위해 술이나 드시구려. 떠나는 사람과 술한잔 나누었다고 숭빈대감이 우리들에게 모반을 꾸미기 위해 모인 것이라고 한다면 내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숭빈대감은 그렇다치고 폐하께서 꾸중을 하신다면 내 혼자 그 꾸중물을 다 마실테니 여러분들은 술이다 마음껏 마시구려 ........”

하자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왕자 헌평은 김하륜에게 술을 따루어

“ 대감 ! 이번에 동래 원님으로 가시면 재미 많이 보겠소 ”

하며 권했다.

“ 예. 고맙습니다 ”

하며 김하륜은 왕자 헌평의 귀에 가까이 입을 대고

“ 일이 매우 급합니다 ”

“ 그래요 ? "

김하륜이 눈짓을 하며

“ 밀실로 갑시다 ”

왕자 헌평과 김하륜은 일어나 뒷채 방으로 들어갔다. 김하륜은 방에 앉자마자

“ 헌평 왕자님 ! 일은 속히 처결해야 합니다 ”

하자 헌평은

“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

“ 나는 왕명을 받았으니 즉시 동래로 떠나야 합니다. 일단 동래로 떠나고 나서 다음 일을 논의합시다. 나 대신 양산군수 이도번(李道番)을 추천하겠습니다. 이도번과 함께 먼저 일을 일으키십시오. 그러면 내가 바로 동래에서 군사를 이끌고 들어 오겠습니다. 숭빈대감 무리들이 먼저 칼을 뽑아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숭빈대감의 뒤퉁수를 쳐야 합니다 ”

왕자 헌평과 김하륜은 면밀한 작전을 세워놓고 다음날 김하륜은 동래로 떠나면서 양산군수 이도번에게 밀사(密使)를 급히 보내었다. 밀사는 말을 타고 급히 이도번에게 달려갔다. 김하륜이 보낸 서찰을 본 이도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군사들에게 무기를 점검하고 출동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도번은 그 때 양산에 주둔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 무렵 인겸을 세자 자리에 앉혀 놓은 숭빈대감이 위중하다는 핑계를 내세워 헌평과 예영 두 왕자를 어명으로 대궐에 불러 들여 일격에 죽여 없앨 계략을 꾸며 놓고 모든 두 왕자를 불러 들였다. 그러나 두 왕자가 모이지 않자 원성왕은 숭빈대감과 대신들에게

“ 어찌 왕자들이 보이지 않는고 ? ”

숭빈대감은

“ 폐하 ! 아무래도 왕자들이 눈치를 챈 모양이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폐하께서 부르신 어명을 듣지 않을리가 없사옵니다 "

“ 그러하옵니다. 아무래도 낌새를 알아차림 모양이옵니다 ”

원성왕은

“ 어찌 일을 했기에 왕자들이 눈치를 챘단 말이오 ? ”

하자 대신들은 황공하다는 말만 내벧고 있었다.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왕자들이 어전에 모이지 않는 것은 헌평과 그의 부인 박씨의 기지였다. 왕자들을 대궐로 모이라는 왕명이 떨어지자 부인 박씨는 헌평에게

“ 아버님이 한꺼번에 왕자들을 부르시는 것은 무언가 이상합니다 ”

하자 헌평은

“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어마마마가 나와 아우를 죽이려고 아바마마께 주청을 하여 아바마마가 이를 가납한 것이 분명하오. 물론 숭빈대감이 앞장 섰을 것이고...”

“ 그러면 어찌 하올 작정입니까 ? ”

“ 어찌하긴요. 모이지 않는 것이지...”

“ 그렇다면 예영 아우에게 기별을 넣어 모두 같이 모이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혼자 불참하시면 어명을 어겼다하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을 주게 됩니다 ”

“ 듣고보니 그렇구려. 그럼 어서 예영 아우에게 모두 불참하도록 해야 하겠구만. 그 일에는 내가 직접 나서리다...”

헌평은 직접 예영 아우에게 찾아가 입궐하지 말자고 뜻을 모았다. 그리고 만일 입궐하면 예영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이렇게 되자 예영은 헌평이 두려워 벌벌 떨며 입궐하지 않았다. 헌평은 일이 이렇게 되자 빨리 일을 서둘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어명(御命)을 거역했으니 왕으로부터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 것은 뻔했다. 그렇게 되면 일을 성사시키기가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왕자 헌평은 심복 부하인 무사(武士) 우민(雨民)을 안방으로 불렀다.

“ 소인 우민입니다 ”

“ 들어 오너라 ”

“ 예 ”

우민은 헌평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헌평은 칼을 우민 앞에 내 놓으며

“ 이제 때가 온 모양이다 "

" 말씀만 하십시요 “

“ 그래 고맙구나. 일이 잘 되면 너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다 ”

“ 고맙습니다 ”

“ 오늘부터 숭빈의 뒤를 몰래 추적하거라. 그러다가 기회가 있거든 이 칼로 목을 베어라. 지금 윤삼이가 숭빈 뒤를 쫒고 있으니 곧 연락을 해올 것이다. 목을 벨 기회를 말이다 ”

“ 알겠습니다 ”

“ 그리고 네 뒤에는 장정이 여닐곱 따를 것이다. 그러니 너를 해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마음놓고 숭빈대감의 목을 베어라 ”

“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합지요 ”

이때 밖에서

“ 왕자님! 왕자님 ! ”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윤삼이었다. 헌평은

“ 들어 오너라 ”

“ 예 ”

윤삼이가 들어와 다급하게

“ 숭빈대감이 언승 대감 소실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사옵니다 ”

이 무렵 언승은 잡찬 벼슬에 있었다..

“ 그래. 그 잘 되었구나. 이제 숭빈대감도 제명이 다한 것 같구나. 언승대감 소실집 근처에 숨어 있다가 술자리가 끝나고 숭빈대감이 나오거든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베어라. 그리고 언승대감도 죽이고 만일 다른 놈도 있거든 누구든 개의치 말고 다 같은 패거리니 모조리 목을 베어라. 한 놈도 남김없이 알겠느냐 ? ”

“ 알겠습니다 ”

“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군사를 동원하여 숭빈대감 무리들을 모조리 박멸시킬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럼 곧 바로 가서 숭빈과 언승을 죽여라 ”

“ 예 ”

왕자 헌평은 장정들에게 우민의 뒤를 따르게 하고 군사들을 장안 곳곳에 깔아 놓았다. 숭빈대감은 왕자 헌평을 숙청하겠다는 자기들의 계략을 성사시키기 위해 언승 소실집에서 이찬(벼슬) 지원대감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모의를 하고 있었다.

숭빈대감은 집 주변에서 헌평의 무리들이 자기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언승대감의 소실은 숭빈대감에게 술을 권하며

“ 대감 ! 한잔 더 드시옵소서. 오늘 같은 좋은 날에 아니드시면 언제 또 드시겠사옵니까..”

그러자 숭빈대감은 취기가 만연한 얼굴로

“ 오늘 같은 좋은 날이라... 아니지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이 있을 것이야..”

하고는 언승대감(잡찬)에게

“ 아니 그렇사옵니까. 대감 ? ”

언승대감도 취기가 만연한 얼굴로

“ 암요. 우리의 일이 성사되는 날이야 말로 우리의 생애에 가장 좋은 날이 아니겠소이까 ”

이찬 지원대감도 취기가 만연한 얼굴로 숭빈대감에게

“ 하온데 대감 ! ”

“ 뭣이오이까 ? ”

지원대감은

“ 폐하의 어명이 계셨는데도 헌평과 예영 두 왕자가 모이지 않으니 혹시 왕자들이 눈치를 챈 것이 아니오이까 ? "

언승대감은

“ 사실 나도 그 점이 염려됩니다..”

숭빈대감은

“ 그런 걱정은 땅에 내려놓으시구려. 우리는 지금 폐하의 편에 서 있소이다. 폐하 밑에는 나와 대감들이 권력을 잡고 있소이다. 그런데 누가 감히 우리들과 폐하에게 대적한단 말이오 ”

“ 하기야 그렇긴 합니다만 전하의 옥체도 노쇠하여 좋지 않으시니..”

“ 그러니 서둘러 우리가 원하는 인겸 왕자를 세자로 책봉한 것이 아니오 ”

“ 아무리 그렇다 하나 건강이나 자질로 보면 인겸 왕자는 헌평 왕자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

“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임금 혼자 국사를 돌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임금을 보필하는 대신들이 중요하다 그 말이 오이다. 물론 인겸 왕자께서 병약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만... 모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지 대감들은 그저 나에게 힘이나 되어 주시구료 ”

숭빈대감의 말에 지원대감은

“ 암요. 마땅히 그렇게 해야지요 ”

하자 언승대감도 등달아

“ 대감편에 서지 않으면 누구편에 서겠습니까. 이미 대감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기로 약조했으니 우리 다 같이 힘을 합해 봅시다 ”

그러자 언승대감의 소실은 요염한 미소를 살짝 던지며

“ 일이 잘 되시오면 소첩에게도 벼슬 하나를 주실런지요 ? ”

그 말에 숭빈대감은 재빨리

“ 암 주고말고... 하하핫... ”

언승대감과 지원대감도 입이 찢어지도록 낄낄거리며 웃었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어둠이 밀려올 때까지 술을 마신 숭빈대감은 술기가 만연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언승대감의 소실집을 나왔다. 그러자 사립문을 막 나서는 순간 번떡이는 칼날이 어두운 안개를 가르며 숭빈대감의 목을 내리쳤다.

사립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우민이 숭빈대감의 목을 칼로 사정없이 내리친 것이었다

“ 으으악 ”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숭빈대감은 곰배쪽처럼 퍽 쓰러졌다. 숭빈대감은 우민의 칼에 목이 잘려 그 자리에 나딩굴어 쓰러지면서 피를 쏟으며 죽었다. 이를 본 언승대감이 감짝놀라

“ 너희들은 누구냐 ? ”

하는 소리가 미쳐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우민의 칼이 언승대감의 목을 내리쳤다.

“ 으으악 ”

어둠을 가르며 또 한번의 비명소리가 났다. 우민은 이어서 뒤따라 나오던 지원대감과 언승대감 소실의 목까지 차례로 무처럼 싹둑 베어 버렸다. 우민과 그의 뒤를 감시하던 장정들은 다른 군사들과 합세하기 위해 바람처럼 어둠속으로 휑하니 사라졌다.

이 무렵 무장한 헌평의 군사들은 말을 타고 곧바로 대궐로 쳐들어 갔다.

“ 어서 대궐문을 열어라 ! ”

하고 헌평 군사의 수장이 말하자

수문장은

“ 어디서 온 군사이오 ? ”

“ 급히 폐하께 아뢸 말씀이 있어 왔소이다. ”

“ 무슨 급한 일인지 말해 보시오 ?”

“ 에끼 ! 이놈 장차 임금이 되실 세자를 모시는 수장에게 일개 대궐문이나 지키는 수문 졸개 따위가 보고를 하라니.. ”

하면서

“ 어서 열지 못할까 ? ”

하며 호통을 쳤다.

그래도 수문장이 대궐문을 열지 않고 버티자 헌펑의 수장이 칼을 빼어 들었다. 칼날의 섬광이 허공을 가르며 수문장의 목을 싹둑 베었다. 그리고는 다른 문지기도 칼로 목을 베었다. 문지기 한 놈이 겨우 살아서 대궐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다급한 목소리로 이 사실을 내관(內官)에게 전했다.

“ 크 ...큰 일 났습니다요 ”

“ 뭣이 큰일이냐 ? ”

내관은 영문도 모르고 태연하게 물었다.

“ 수 수문장이 주 죽고 모 모두가 죽었습니다요..”

“ 천천히 말해보거라. 누구에게 수문장이 죽고 모두가 죽었단 말이냐 ? ”

“ 어디서 온 군사인지는 모르나..”

“ 장차 임금이 되실 세자를 모시는 수장이란 말만 들었지 자세한 것은 모르옵니다 ”

“ 장차 임금이 되실 세자께서는 지금 대궐안에 계시는데 누가 세자란 말이냐..”

하고는 변란이 일어났음을 알고 내관이 급히 어전의 상궁에게 전했다. 소식을 들은 대궐안은 삽시간에 놀라 아수라장이 되면서 각자 피신하기가 바빴다. 변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대궐로 쳐들어 왔다는 말에 대궐에 있던 대신들은 제 목숨만 챙기기 위해 대궐안 구석을 이리저리 찾아다니기가 바빴다.

“ 뭣이라 했느냐 ? 헌평 아우가 반란을 일으켰다 했느냐 ? ”

다급한 세자(인겸)의 말에 상궁은

“ 그렇다 하옵니다 ”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겁에 질린 세자(인겸)는 마지막 수단으로 왕을 움직여 목숨이라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자(인겸)는 대룡공주의 남편인 부마 이제(李濟)의 부축을 받아 대왕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애원에 찬 목소리로

“ 아바마마 ! 목숨을 살려주시옵소서...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아바마마 목숨을 살려주시옵소서...”

“ 세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 ”

하고 영문도 모르는 원성왕이 말하자 세자(인겸)는 더욱 다급한 목소리로

“ 아바마마 ! 헌평 아우가 반란을 일으켰다 하옵니다. 지금 헌평 군사들이 대궐에 쳐들어 왔다고 하옵니다. 아바마마 ! 이걸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 ”

“ 헌평이 이놈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고얀놈 같으니라구 ..”

원성왕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세자(인겸)는

“ 아바마마 ! 세자 자리가 싫사옵니다. 세자 자리는 헌평 아우에게 주시옵소서. 빈과 아기의 목숨만 살 수 있다면 대궐을 벗어나 살아가겠사옵니다....”

눈물이 뒤범벅이 되고 목이 메인 소리로 세자(인겸)는 왕에게 간청했다. 그제야 원성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도승지 들거라 ! ”

도승지를 불렀으나 도승지는 어디갔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원성왕은 아마 숭빈대감 등이 무슨 일을 꾸미는 듯 하더니 일이 잘못되어 역습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원성왕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는

“ 숭빈대감은 어디 있느냐 ? ”

하고 물었다. 도승지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상궁이 허리를 굽혀 울면서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비명에 간 줄로 아옵니다.. 숭빈대감, 언승대감, 지원대감 께서도.. 목숨을 잃으셨다 하옵니다.. 흐흐흑...”

원성왕은 깜짝놀라

“ 뭣이 ? 그게 모두 사실이란 말이냐 ? ”

원성왕은 벌떡 일어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끝까지 조정 중신들과 의논하여 세자 인겸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였으나 김하륜(金河倫)이 미리 벼슬아치들을 매수하여 헌평 왕자의 편으로 끌어들여 조정 대신들 절반 이상이 세자(인겸)의 경질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듯 하였다. 워낙 세자 경질의 요구가 강하여 원성왕은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다. 원성왕은 잠시 생각하다가 긴 한숨을 푹 쉬며

“ 내가 다스리는 신라(新羅) 강토가 대궐안인줄 알았더니 이렇게도 백성들의 마음이 내 곁을 떠났단 말인가 ! ”

진실로 원성왕은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맏아들 인겸을 세자에서 폐하자니 차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대로 견디자니 지탱할 만한 힘이 없었다. 원성왕은 아들 인겸과 예영, 딸 대룡과 소룡, 그리고 부마(왕의 사위)에게 더 나쁜 사태가 다가오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 세자야 ! ”

“ 예. 아바마마 ! ”

원성왕은 맏아들 인겸을 불렀다. 그리고는 두 손을 꼭 잡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름이었다. 주르르 눈물이 두 볼을 적셨다. 늙고 외로운 왕이 아들을 위하여 흘리는 피맺힌 눈물이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는지 몰랐다. 원성왕은

“ 권력은 참으로 무상한지고 ! ”

“ 아바마마...”

“ 너를 세자로 책봉한 것이 결국 이런 사태를 불러 왔구나 ”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다음날 아침 원성왕(元聖王)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조서를 내렸다.

- 조정 대신들은 맏아들 인겸으로 하여금 세자로 책봉하라 고집하여 그렇게 하였으나 몸이 병약하고 심성이 강건하지 못하여 왕통을 이어갈 자질이 부족하여 그럴 수 없고 헌평을 세자로 삼겠노라 -

조서의 골자는 이러했다. 갑자기 헌평이 세자로 책봉되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헌평이 바라는 것이었다.

헌평의 측근들은 헌평이 세자로 책봉되자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다. 세자 책봉 소식을 들은 헌평은 대궐을 향하여 사은사배(謝恩四拜)를 올리고 급히 대궐로 향해 떠났다.

“하하하. 하하하. 헌평 왕자님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 하하하 이제야 말로 폐하께서 정신이 드신모양구만.. 하하하. 헌평 왕자님이 세자라. 그러면 그렇지 하하하..”

헌평을 지지한 세력들은 좋아하였다. 다음날 원성왕(元聖王)은 조정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헌평에게 세자를 책봉한다고 공표함으로써 일단 반란은 진압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헌평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신하들은 대거 숙청 되거나 대궐을 떠나야 했다.

헌평이 세자로 책봉되던 그해 인겸은 병으로 죽었고, 그 이듬해 헌평 역시 병으로 사망했다. 이때가 서기 794년 5월이었다.

원성왕(元聖王)은 재위 14년인 798년 12월 29일에 사망했다. 나이가 많아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사망할 당시에는 이미 70살이 넘은 노인이었다. 왕릉은 곡사에 마련되었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봉덕사 남쪽으로 옮겨 화장 되었다.

원성왕(元聖王)은 한 명의 부인에게서 3남 2녀를 얻었다. 부인은 숙정왕후 김씨인데 각간 벼슬의 신술의 딸이다. 인겸과 헌평, 예영 세 아들과 두 딸 대룡과 소룡을 낳았다. (大尾)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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