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빈궁을 탈퇴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극작가
불가에서 흔히 쓰는 ‘바라밀’이라는 말이 있다. 이 ‘바라밀’의 길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광명적인 양심이다. 양심은 아주 작은 흠집이 나더라도 그 느낌이 빠르다. 이 양심의 느낌이 느린 사람, 또한 둔감한 사람은 사특하고 간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형언할 수 없는 범죄는 모두가 양심의 부재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일체의 방편을 교설하여 악(惡)에 오염되지 않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 발현의 길이 항상 믿음 속에서 강하게 싹터 오는 것이다. 조그만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나마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깊은 잠에 빠지고 있는 마음의 문을 우리는 항상 두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불의와 모순 그리고 곤혹과 빈곤을 느끼고 있는 자에게 평안과 안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인간 양심을 재구성 하는 것을 본위로 삼는 문학보다 비속적인 외설문학이 범람하여 인간의 근원적인 도덕성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현실이다.
즉 황색문학(黃色文學)의 범람은 작가 자신의 창의성보다 독자의 취향에 상응하기 위한 작업이라 하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인간 윤리성은 함몰된 것이다. 영화, TV드라마, 연극, 음악, 미술, 무용 등 할 것 없이 산업문명에 예속되어 인간이 문학, 예술을 창조하는 본래의 기량에서 멀리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취미와 오락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취미와 오락이 인간성의 본질을 전락시키는 데에 이르게 되는 것은 숭고한 인간성을 지닌 인간이 도착(倒錯)된 망집(妄執)에 사로잡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 인간성의 본질을 전락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일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돈이 바로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고려시대의 명장 최영 장군은 황금을 돌과 같이 여기라는 좌우명을 남겼다. 황금을 귀히 여기고 황금을 많이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에게는 격언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 얼마나 되는가 하면 한 줌의 쌀로 만든 죽으로서도 배를 채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의 말이고 돈이 없는 것 보다 많이 가짐으로서 생활이 풍요로운 것이 행복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자기 능력과 분수에 맞아야 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기의 기호에 의하여 과다한 음식으로 육신을 살찌게 한다. 그와같이 비만한 몸뚱이는 마음으로 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항상 물질 만능의 쇠사슬에 뒤엉켜 육신의 노예가 된다. 우리에게 일생동안 필요한 재산의 한도는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무량(無量)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능력을 초월하여 그 무량을 긁어 모으려고 하는 사람, 도둑질을 하는 사람, 사기꾼 노릇을 하는 사람 등 각가지 방법으로 재산 모으기에 혈안이다. 그러나 막상 깊이 살펴보면 하루 세끼를 걱정없이 먹을 수 있으면 그것이 최대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현실적으로 빈궁한 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평안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빈궁을 탈피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대자연의 하나이며 대자연과 격리될 수 없는 깊은 유대관계에서 살아간다. 지나친 자기 위주의 재물 축적은 다른 사람의 몫을 갈취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상관 관계의 연계성이 있음을 절감하는 사람이 철학하며 사색하는 것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최소한의 힘이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 속에 순수한 양심을 살찌우는 것이라고 자인하고 이를 신앙하는 사람만이 현대를 바르게 살게 될 것이다. 길가는 나그네가 가진 돈이 없으면 시원한 나무 그늘에 마음 편이 쉬어갈 수 있지만 많은 돈을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은 도둑이나 강도를 만날까 두려워 한시도 편안하지 않다.
복(福)만 수용하려 하면 욕심이 싹트게 되니 복을 가지려는 생각 앞에 지혜도 함께 생겨나도록 자기를 밝혀야 한다. 복덕과 지혜를 골고루 갖추게 되면 물질적으로만 행복해야 한다는 욕망도 고쳐 복을 나누는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지혜는 복을 다스리는 광명인 것이다. 복도 태양의 무한한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福)을 나누는 생활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