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칼럼 = 거대함만을 추구, 자기 파괴로 들어가는 것

  • 등록 2024.12.23 15: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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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거대함만을 추구, 자기 파괴로 들어가는 것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극작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잘못된 것 중에 하나는 ‘생산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다. 우리는 부유한 국가의 중요한 임무는 ‘여가를 위한 교육’이고 빈곤한 국가의 가장 큰 임무는 ‘과학기술의 전수’라고 말한다. 정치인들은 세계의 평화가 완전히 이룩되려면 전 세계가 모두 번영해야 한다면서 경제 제일주의로 자신들의 체제를 수호하는데만 열을 올린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인류의 상황을 보면 세계 평화의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불안하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정복하도록 만드는 외부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이라는 토대 위에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자연이 인내하는데도 한계가 있음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구의 환경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화석연료가 고갈되는 것도 한 예가 된다. 석유 역시 언젠가는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 더 부유해진다는 것은 더 많은 연료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로 인한 공해문제와 자연의 불균형 상태 등은 현재 기후변화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인간이 쓰는 많은 어휘 중 ‘비경제이다’라는 말처럼 결정적이고 결론적인 것은 없다. ‘경제적’이란 말은 주로 양적인 의미로 인간들은 질(質)을 무시한 양(量)의 경제논리에만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크고 많은 것’이 좋다는 거인(巨人), 거대주의(巨大主義)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에서 1차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것은 규모의 문제다. 예를 들면 여러 개의 작은 도시를 하나로 뭉친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거대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이 ‘거대주의’가 만들어 낸 비극을 잘 보여준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갈등 중에서도 수도권 밖의 시골지역에 대한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현대 경제학의 계산법은 ‘인간’이라는 주체를 제외시켜 놓고 있다.

 

그래서 자동기계화를 서두르고 큰 단위만을 추구하게 되는데 여기서 노동력 밖에 제공할 것이 없는 이것이 인간들이 가장 약한 거래 조건이 된다. ‘거인주의’와 ‘자동기계화의 경제학’이 점점 인간을 ‘자본의 노예’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기업은 점점 더 거대해지는 것이다. 상품보다 인간을 위한 경제체계가 필요함을 말해주는 시대의 징표는 핵(核)에너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원자력은 구소련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그 위력과 비극을 입증했다. 더욱이 핵원자로가 만들어 내는 대량의 방사능 폐기물로부터 안전한 것은 지구상에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는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빈부의 격차는 대한민국의 상황만은 아니다. 서구 선진국의 경제구조가 처음에는 원조(援助)란 이름으로 다음에는 협력(協力)이란 이름으로 전이되어 어느덧 벗을 수 없는 종속의 관계로 비약했다. 이것 역시 ‘거인주의’에 대한 숭배정신을 그 배경으로 깔고 있다. ‘작은 것’이 미덕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야 한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미국이 되거나 중국이나 독일이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3세계는 그들에게 알맞은 인간성을 가진 기술, 즉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을 통해 새로운 기술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중간기술이란 ‘대량생산’ 대신 ‘대중생산’을 목적으로 하며 정교한 손과 창조적인 두뇌를 가진 인간을 재생산 전 과정에 복귀시킴을 말한다. 이 ‘중간기술’은 모든 생산 목표를 다수의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방향으로 이끌며 소규모적이고, 분산적이여 노동력을 많이 요구함으로써 기본적인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빈곤층에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시대에 뒤떨어진 퇴행성 경제이론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학살, 테러, 환경오염, 기아 등 인간의 고통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자본은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실업자의 양산은 자본이 인간을 위해 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우주안의 작은 존재이며 그래서 인간이 하는 기능도 적다. 그래서 작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거대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인간생활의 본질적 선결조건이 되는 대기, 물, 토양 같은 천연자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에 따른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일구어 내는 것이다.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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