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동화 (휴전선 북괴 도끼 만행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작은 나무와 미루나무
휴전선 부근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보이는 숲속에 키가 작은 나무가 살았습니다. 키가 작은 나무에게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주위에는 키가 큰 나무들만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키가 큰 나무들은 작은 나무를 보고 난쟁이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키가 작은 나무는 키가 큰 나무들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과 입과 귀는 너무 높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은 나무는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외로워도 참고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키가 큰 나무 이름은 ‘미루나무’라고 했습니다.
작은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커 가는 미루나무가 몹시 부러웠습니다. 자기는 왜 미루나무처럼 키가 크지 않은지 정말 마음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나무는 답답해도 참고 살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미루나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더욱 키가 커졌습니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몸도 굵어졌고 팔도 무척 길어졌습니다. 미루나무에는 날마다 새들이 날아와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놀다 가는가 하면 어떤 새는 둥지를 트고 예쁜 알을 낳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작은 나무는 마루나무가 임금님처럼 부러웠습니다. 자기한테는 둥지는커녕 새들이 날아 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미루나무는 새들이 날아와서 둥지를 틀고 예쁜 알을 낳을 때마다 작은 나무에게 보란 듯이 우쭐대곤 했습니다.
그해 여름이었습니다.
미루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그늘에서는 매미가 더위를 식히면서 목소리를 높혀 노래를 즐겁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휴전선을 감시하던 미군 아저씨 몇 명이 와서 미루나무에 올라가 낫과 톱으로 길게 뻗어나간 나뭇가지를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동안 열심히 미군 아저씨들이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는데 갑자기 북한군 수십 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우르르 몰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무기를 들고 미군 아저씨들에게 사정없이 덤벼들었습니다.
미군 아저씨들 보다 북한군들의 수가 더 많을 뿐 아니라 다짜고짜 달려드는 바람에 미군 아저씨들은 북한군들에게 얻어 맞았습니다. 미군 아저씨는 다치거나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북한군들의 갑작스런 행패로 두 미군 아저씨가 모숨을 잃었습니다. 미군 아저씨들을 해치고 난 후 북한군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후 나라안은 몹시 시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잠잠했던 휴전선 부근에는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초조하고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미루나무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자 작은 나무는 미루나무가 미웠습니다. 미루나무도 자기 때문에 미군 아저씨가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몹시 괴러웠습니다.
‘내가 이렇게 키만 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미루나무는 자기 때문에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 났다고 생각하자 키가 큰 것이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습니다. 미루나무는 키가 작은 나무가 부러웠습니다. 미루나무는 늘 자기보다 키가 작은 나무를 내려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을이 되었습니다.
미루나무의 잎은 노랗게 색이 바랬습니다. 미루나무는 이제 조금만 더 추워지면 겨울잠을 자야했습니다. 물론 작은 나무도 말입니다. 미루나무와 작은 나무의 노란 잎은 말라서 바람에 하나 둘 낙엽으로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루나무와 작은 나무는 겨울의 긴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또 다시 이듬해 봄이 되었습니다.
작은 나무는 봄이 와서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옆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러다 깜짝 놀랐습니다. 미루나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나무는 가만히 주위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나무는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미루나무는 뿌리 부분에까지 아주 짤막하게 잘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겨우 밑둥만 남았습니다. 그제야 작은 나무는 미루나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미군 아저씨들이 이 미루나무를 자르다가 북한군들에게 행패를 당한 후 아예 밑뿌리 부분까지 잘라 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미루나무는 그래서 미군 아저씨들이 미루나무가 잠자는 겨울 동안에 잘라 버린 것입니다.
제법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예, 작은 나무야!”
그 소리에 작은 나무는 깜짝 놀라 밑둥만 남은 미루나무를 바라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새순이 뽀죽히 눈망울을 뜨고 있었습니다.“야, 너 그래도 살아 있었구나!”
그제야 작은 나무는 미루나무에게 말을 해 보았습니다. 이제 미루나무는 옛날의 키가 큰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 잘려 나가고 밑둥만 남은 데에서 새롭게 나온 어린 새순이었습니다.
여름이 가까웠습니다.
미루나무의 밑둥에서 나온 새순은 제법 자랐습니다. 지난 날처럼 미루나무의 눈과 입과 귀가 작은 나무와 거의 비슷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작은 나무와 미루나무는사이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둘은 몹시 기뻤습니다. 작은 나무와 미루나무는 서로 다정하게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키가 크다고 우쭐될 것이 아니구나!
키가 큰 미루나무는 다 잘리고 밑둥만 남고서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미루나무는 이제 친구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키가 크다고 우쭐댄 것이 얼마나 나빴는지 마음속 깊이 깨달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