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칼럼 = 지식과 판단이 흐린 독선과 아집

2024.06.02 12:10:05

 

 

 

 

칼럼

 

 

                   지식과 판단이 흐린 독선과 아집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죄책감이란 말이 있다. 죄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죄의 반대는 복책인데 복책감이란 말은 없다. 복은 누려도 되지만 죄는 수용하거나 소장하여서는 안되기 때문에 죄값은 치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값을 받아야 하고 죄를 짓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기도 하고 지은 죄를 숨기기도 한다. 그래서 그 삶이 부자유스럽고 공포와 두려움이 사방에서 둘러싸이게 된다. 잘못이란 도시에서 인도를 걷다가 뽀죽하게 튀어나온 블록에 걸려서 넘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눈이 밝아 길을 잘 걷는 사람도 헛밟을 때가 있다. 완전한 보행을 하기가 힘들다. 항상 주의하고 일생을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그러나 허울이나 잘못을 숨기지 말고 수치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수치를 감추면 그것이 악업을 짓는다. 남을 돕는것도 다시는 나쁜 죄업을 짓지 않는다는 자기 맹세가 전제되고 있어야 한다. 참회는 신성스러운 영약이다.

 

뇌우침의 눈물은 악업을 씻어내는 정화수이다. 천만겁 긴긴세월 쌓은 죄업도 참회하는 자리에서는 소멸되어 버린다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죄는 책임 있게 갚아야 한다. 죄는 숨기는 만큼 고통은 더욱 확대되어 간다. 그리고 확대된 만큼 번뇌는 쌓이게 된다. 죄책감 없는 생활이 자유스러운 행복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를 살면서 그 하루를 얼마나 참되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는 사람은 드물다. 하루의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면 하루를 살았다고 하는 것은 막연한 시간의 흐름에 자기를 던져버린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시간 속에 아름다운 언행을 다듬어 내는 것이 문제이다. 조그만 선행을 베풀고서 최선의 일을 치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가장 잘난 체 하는 ‘체병’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려면 언제나 자기 겸손이 앞서야 한다. 아무리 악한 도적이나 폭력배라도 겸손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주먹을 내밀수가 없다. 우리는 항상 착한 마음으로 모든 대상에게 겸손한 손짓과 마음의 훈김을 보내야 한다. 도덕으로 쌓은 공덕이 있어야 그 삶의 질이 밝게 트인다. 탐욕에 사로잡혀 악습에 젖은 악행만을 일삼는다면 그 길은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 이르게 된다. 불경에 이런 우화가 있다.

 

어느날 뱀의 머리와 꼬리가 말다툼을 했다. 꼬리가 머리를 향하여 “네가 왜 맨날 앞장서서 가느냐? 나도 한번 앞장서 갈 기회를 달라” 하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머리가 “꼬리는 머리 뒤에 있으므로 항상 머리가 향하는 데로 따라 오는 것이 원칙이다” 라고 대답하였으나 꼬리는 자기의 주장대로 앞장서 산과 들판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결국엔 꼬리는 눈이 없어 앞을 못봐 불구덩이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일인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이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지식과 판단이 흐린 사람이 마구 독선과 아집으로 온갖 일을 함부로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불경에서 부지런히 쉬지말고 힘써 일하라고 한 것은 착한 일을 열심히 하여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가운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정직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조그마한 착함이라고 업신여기는 것은 큰 화근이 된다. 조그마한 착한 일도 쉴새없이 실천하면 편안과 복덕을 누릴 수 있다. 비록 작은 물방울이라도 계속 떨어지면 큰 바위를 뚫고 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그만 착한 일도 소흘히 할 수가 없다.

 

요즘 도시에서 살기가 어려워 농촌으로 귀향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각박한 도시의 생활에 환멸을 느낀 사람은 흙냄새가 물씬 풍기고 토담집이 조개껍질처럼 놓여 있는 시골 고향이 그리울 것이다. 어느새 봄이 왔는가 싶더니 여름의 더위가 느껴진다. 여름이면 어릴 때 마을 정자나무 그늘 평상에서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오수(午睡)를 즐기던 일이 생각난다. 사과나무 가지끝마다 생명의 노래 소리가 터져 나오는 농촌길에서 우리는 생명의 두려움과 삶의 정기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벼랑길 아래 맑게 흐르는 물굽이에 눈을 던져보면 거기에는 순수에 대한 향수가 묻어난다. 이 순수의 향수는 자연에서 마냥 얻을 수 있는 값진 것이다. 자연은 때가 묻지 않는 맑고 순수한 현상 그것이다. 여기에는 조금도 가공된 것이 없다. 만약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면 감동을 주지 않는다. 인간은 가식된 부착물을 증오한다. 언제나 본래 그대로를 갖고 싶어 한다. 이것이 고향을 자기 내재율 속에 담아 두려고 하는 원초적인 마음일 것이다.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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