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權禹相) 연재소설 - 모란꽃은 겨울에도 핀다 제4부 63회분

  • 등록 2016.01.15 12: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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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연재소설 - 모란꽃은 겨울에도 핀다 제463회분

 

 

 

 

     모란꽃은 겨울에도 핀다

 

 

 

그러자 거사는

돌아가겠다.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는가.”

하고 삼태기를 거꾸로 털었습니다. 그러자 죽은 개가 변하여 사자보좌가 되었고 거사는 거기 올라 앉아 빛(佛光)을 내면서 사라져버렸고 하였습니다. 이 설화는 자장율사가 아주 훌륭한 분이나 아상(我相)으로 인해 문수보살을 뵙지 못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는 교훈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이 설화에서 겉모습으로는 진실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또 다른 교훈을 발견했습니다.

 

 

무타스님의 설법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속단해서는 백천겁이 다 가도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겉모습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은 지나쳐 사라지는 허망한 것입니다.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무상한 겉모습에 흘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무상한 겉모습 가운데 영원히 변하지 않은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거지차림의 겉모습 속에 감추어져 있었듯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의 겉모습 속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실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만물은 어느 것 하나 진리 아님이 없고 어느 것 하나 거짓이 아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풀끝 이슬 끝에도 부처님과 보살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범부 중생들은 어디에나 계시는 부처님 보살님을 보지 못하고 사물마다 간직된 진실함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중생들은 겉모습에 흘려 살기 때문입니다. 봄이 여름으로 여름이 가을로 가을이 겨울로 변하듯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겉모습만 보고 거기에 정신이 홀딱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중생들은 겉모습에 팔려 사느냐 하면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즉 삼독심(三毒心)으로 중생들의 본심을 뒤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진실을 볼 줄 아는 능력, 속을 들여다 볼 줄 아는 혜안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탐진치(貪嗔痴) 삼독심에 물들어서 타고난 반야지를 잃고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부의 삶은 고통스럽고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쫒다보니 마음이 바빠서 잠시도 여유가 없고, 내 것인가 했는데 뒤돌아보니 곧 남의 것이 되니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것입니다.”

 

 

설법은 계속되었습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 곧 종교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대부분 행복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이 지극히 행복하고 또 앞으로도 영원토록 행복이 보장된다고 하면 아무도 종교를 믿지 않을 것이며 종교 자체가 존재할 가치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행복하지만은 못하고, 비록 일시적인 행복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그 행복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되고 바로 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종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계속>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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