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3 (목)

  • 구름많음동두천 30.3℃
  • 흐림강릉 23.8℃
  • 맑음서울 31.0℃
  • 흐림대전 29.0℃
  • 흐림대구 30.3℃
  • 구름많음울산 29.0℃
  • 흐림광주 29.0℃
  • 맑음부산 31.7℃
  • 구름많음고창 29.6℃
  • 구름많음제주 29.1℃
  • 구름많음강화 29.5℃
  • 구름많음보은 28.1℃
  • 흐림금산 28.1℃
  • 흐림강진군 29.8℃
  • 구름많음경주시 29.3℃
  • 구름많음거제 29.1℃
기상청 제공

권우상 칼럼 = 전쟁의 배경과 드론 IT기술 강국 우크라니아

 

칼럼

 

 

                        전쟁의 배경과 드론 IT기술 강국 우크라니아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우크라니아는 구소련 해체 이후 NATO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러시아는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있다. 이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회원국과 심지어 한때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국이었던 발트 3국의 NATO 가입 등 동구권의 지속된 친서방 정책을 불러오게 되면서 러시아의 불만이 쌓이게 된 것이다. 구소련의 위성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초기에는 친러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러시아의 영향권 들어 갔었지만 러시아가 후원하는 친러 세력들의 정치적 무능에 회의감이 쌓이자 우크라이나 친러 세력은 그 영향력을 점차 상실해 갔다. 이것이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친러 정권은 우크라이나에서 붕괴 되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이탈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때 공교롭게도 러시아 내부에서는 푸틴 정권의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 결국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의 의지와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영향권에 종속시키려는 러시아의 욕망이 동시에 표면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것이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호응을 얻자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이라는 유혈 사태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크림반도 합병은 2014년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 운동과 전쟁으로 확산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고, 이 돈바스 전쟁은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빌미를 주었다. 즉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하는 것은 2014년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 운동과 전쟁으로 확대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는 이미 그 지역에 간첩과 관광객으로 위장한 첩보원을 활성화 해둔 상태였고 관공서를 장악하고 무기고를 탈취하거나, 온라인상에서 가짜뉴스를 확산시키고 방송사를 장악하여 러시아 방송을 송출하는 등 혼란을 부추기면서 폭력사태로 번졌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당국을 파시스트라고 맹비난하며 민병대를 조직하여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이처럼 내란이 적극적으로 번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군과 병력은 크림반도와 본토의 경계선과 폭동이 일어난 도시의 외곽에만 검문소를 설치하는 등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시위 진압을 맡은 경찰은 지방 정부에 그 책임을 떠넘기면서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았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정부가 소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첫째는 군과 경찰의 문제였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군비축소를 시행했고, 러시아의 침략 위협에는 전연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전쟁 준비가 전무한 상태였다. 게다가 야누코비치 정권의 사보타지에 가까운 군비축소와 부패는 우크라이나군을 출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는 유로마이단 혁명 직후 야누코비치 정권의 수뇌부가 인수인계나 사임절차 없이 해외로 도망친 상태였으며 군지휘 수뇌부와 국방부 고위직도 기강이 허물어진 상태였고, 군 내부에서는 러시아에 동조하는 반역자들이 많았다. 둘째는 당시 우크라이나는 혁명으로 대통령을 강제로 추방하고 유로마이단 혁명정부가 들어선 상태였다. (유로마이단은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로, EU-우크라이나 협정 서명 준비 중단과 정부의 부패·권력 남용 등 문제에 반발해 확산된 집회이며 민중봉기다. 시위는 키이우 독립광장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2014년 2월 야누코비치 축출과 의회 해임, 과도정부 수립으로 정권 변화가 일어났다.) 친러 시민들의 봉기를 통해 집권한 혁명 정부의 특성상 반대세력에 대해 군부대를 투입해 무력으로 소요를 진압하기에는 명분이 너무 약해 자칫 대응했다가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셋째는 오래전부터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지배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크림반도 주민들의 여론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로 기울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내에서 제대로 힘으로 저항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진 요인인 것이다. 이것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노린 것이었다. 러시아가 이러한 방식으로 타국에 개입한 국가는 조지아, 몰도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구소련 위성국가들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은 단순한 한 개의 섬을 차지한 성격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동부에 있던 친러 세력이 언제든지 무력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든 사건이란 점에서 크림은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특히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분리주의 세력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우크라이나군과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질 상황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군이 신속하게 투입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크림반도는 흑해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로 러시아가 흑해로 진출하여 따뜻한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우 소중하게 여겨 온 지역이다. 이때 젤렌스키 우크라니아 대통령은 NATO 가입을 추진하는 등 친미 정책을 펼치자 푸틴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림반도는 단순한 하나의 섬이 아니라 러시아가 흑해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와 남부 해양 전략의 거점지역이라는 점에서 러시아도 쉽게 포기할 문제가 아니다. 만약 우크라니아가 NATO에 가입하면 크림반도를 빼앗기 위해서는 NATO 회원국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크림은 러시아에게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남부 전선 보급, 군사 거점 성격이 강해 돈바스 전선과 물류, 허브 중심의 전략적인 요충지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포병대와 미사일 부대가 전면적인 포격을 시작으로 푸틴은 ‘특수군사작전’을 선포하고 기갑부대와 공수부대가 벨라루스, 돈바스, 크림반도의 3방향에서 우크라니아를 침공하여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우크라니아군이 군사 대국 러시아군과 싸워서 이긴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우크라니아는 미국과 NATO의 미온적인 군사지원으로 처음엔 매우 힘든 싸움을 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현재 NATO 회원국들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은 연 700억 유로, 즉 약 122조~123조원 규모로 논의됐고, 올해와 내년 합산 총 1400억 유로, 약 215조~246조원까지 확대된다. 이 자금은 EU 차입 300억 유로와 회원국별 배정 자금으로 구성되며,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무기 구매와 국방·무역 역량 강화에 쓰이는 지원이라는 설명이다. 오랜 전쟁 경험에서 얻은 우크라이나 드론 iT기술은 초기 개조품 수준에서 AI 자율 표적 추적, 재밍 회피, 장거리 자폭·요격, 민간 방공 통합까지 실전에서 빠르게 진화한 단계로 비약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3000km의 장거리 자폭 드론은 러시아 모든 영토에 산재하여 있는 대규모 정유시설, 석유저장시설, 무기제조공장 등을 연일 폭격하면서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다. 특히 크림반도 교량 6개를 모두 파괴하고 섬 전체를 초토화 시키고 있어 20만 명의 러시아인들은 크림을 탈출하느라 긴 행열이 늘어서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우크라니아는 전차·방공·전자전·AI 방산 투자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있어, 글로벌 방산 산업이 저비용 대량 드론과 IT기술 방어체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은 향후 전쟁의 승패는 드론 IT기술에서 결정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4년의 전쟁중 민간인 및 군인 사망자 수는 정확히 확인하기 불가능하지만 우크라니아측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사상자 수는 1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러시아의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다게스탄, 투바, 부랴티야로, 모두 소수 민족 지역이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