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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유혹은 권력을 향한 욕망의 표현이다

 

 

칼럼

 

                                   유혹은 권력을 향한 욕망의 표현이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로버트 그린’의 저서 ‘여성의 유혹’을 보면 고대에서 현대까지 여성들이 어떻게 권력을 잡는지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다. 예를 들면 ‘구약성서’의 밧세바. 트로이의 헬레네. 중국의 서시(西施)가 그런 여성이며 이 가운데 클레오파트라가 있다. 고대에서는 무력이나 완력으로 권력을 쟁취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현대는 심리전을 통해 상대를 굴복시켜 권력을 탈취한다. 여성의 능난한 유혹술이야말로 심리전에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 유혹술로 간첩에 미녀가 동원되기도 한다. 따라서 권력자 주변에 몰래 있다가 수면 위로 떠오른 여성은 혹여 간첩이거나 간첩에게 포섭된 인물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옛날에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수단은 물리적인 폭력과 강인한 힘이었다. 교활한 책락 보다는 폭력이나 무력이 효과적이었다. 왕이나 황제가 되려면 무자비하면 하면 그만이었다. 단지 소수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었고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권력을 잡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여성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남성들에게는 한가지 약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은 바로 만족할 줄 모르는 성적 욕구였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구를 이용해 다소나마 그를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성관계를 맺고 나면 주도권은 다시 남성에게 돌아갔다. 여성이 성관계를 거부하면 남성은 다른 여성을 찾든지 무력을 행사하든지 둘 중에 한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결국의 주도권은 일시적일 뿐 아니라 지극히 연약한 것이었다. 흔히 여성의 경우에는 외모를 남성의 경우에는 언어(구변)를 유혹의 수단으로 사용 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때로는 구별없이 이 두가지 유혹의 수단을 모두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유혹은 권력을 향한 욕망의 표현’이라고 한다. 간첩에 미인계를 이용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경우 여성은 성관계를 통해 남성과 가깝게 접근한다. 따라서 여성이 권력을 가진 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다. “권력의 세계에 들어서려는 자는 그 본질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권력은 제일이다.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네트워크(network) 속에서 벌어지는 게임(game)이다. 그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만이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권력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의 말이다. 권력은 네트워크(Network) 속에서 벌어지는 게임(game)이며 이 게임에서는 어리석은 뱃사공처럼 강풍에 대한 대비나 목표도 없이 오로지 눈앞의 잔잔한 물결만 보면서 삿대질을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누가 조직을 통제하고 있으며 누가 배후의 실세인지 파악해야 한다. 한 사례를 보자. 17세기 초 리슐리외는 프랑스 정치계에서 최고의 자리로 올라가고 있을 때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루이 13세가 아니라 바로 왕의 모후였다. 세상은 점점 세분화 되고 있다. 국가조직, 정치집단, 사회구조, 기업경영, 심지어 가정도 1인 핵가족으로 세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좋든 싫든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여기에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지능은 집중의 정도이지 확산의 정도가 아니다.” 베네치아 공작의 궁정에 있는 감옥에 수감된 카나노바는 친구의 배신으로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기수로 복역을 하다가 몰래 땅굴을 파면서 감방이 몇 번 바뀌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탈옥에만 집중하고 10년동안 계속 땅굴을 팠고 결국 탈옥에 성공했다. 그리고 세력을 결집하여 복수를 하면서 나폴레옹 전쟁이 발발했다. 만일 카나노바가 땅굴 파기를 중지했다면 탈옥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고 복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집중은 큰 힘을 얻는다. 한국 정치인 중에는 근공원고(近功遠交)란 어휘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 어위는 삼국지, 초한지에 나오는 말이다. 가까운 나라를 공격(멀리)하고 먼 나라와는 수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인 중에는 중국을 가까이 하고 미국을 멀리하는 자가 있다. 혹여 지정학적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식의 깊이가 매우 낮다. 지구상에서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국경 때문에 분쟁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는 것은 원공근교(近功遠交)의 대표적인 사례다. 1795년~1918까지 강대국인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약소국은 멸망했거나 폴란드처럼 러시아 등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그후 폴란드는 친미(親美)가 되어 미국의 안보 우산을 선택한 것이다. 정치인의 배신은 혹독한 댓가를 받게 된다. 한동훈은 국회의원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은혜로 대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은혜도 모르고 윤 대통령을 배신하여 결국 자신은 불행하게 되었다. 권성동 역시 윤 대통령을 배신하여 불행하게 되었다. 한동훈은 권력 탐욕의 칼을 너무 일찍 빼들었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윤 대통령을 밀어주면서 자신의 세력을 서서히 결집한 후 국민의 열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칼을 빼 들어야 했는데 권력을 위한 칼이 배신의 칼이 되어 자신에게 재앙으로 돌아온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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