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가지를 아시나요?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사람은 자기가 살아 온 주위의 환경과 경험에 의하여 상대방의 말을 받아 들이고 판단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여러분 각자가 받아들이는 판단 기준이 다를 것이다. 왜 다를까? 그것은 여러분들이 삶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의 바탕이 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즉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르다. 사람의 감정에는 일곱가지 정(情)이 있다. 기쁨(喜), 성냄(怒), 사랑(愛), 즐김(樂), 슬픔(哀), 미움(惡), 탐냄(慾)이다. 한 가족이 방안에 있어도 각자 생각이 다른 것은 일곱 가지의 정신작용 때문이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여자 한 분이 있었다. 이 여자는 고급 승용차를 갖고 50평 규모의 아파트에 살았다. 남편은 대기업 간부였고 1남 1녀를 둔 가정으로서 아파트단지에서는 잘 사는 편에 속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대학동창회에만 갔다오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내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녀의 말이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자기가 가장 잘 산다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데 대학동창회에 가면 60~70평 아파트에서 자기 보다 잘 사는 동창생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왜 위에만 보고 삽니까? 아래를 보고 사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자 그 여자가 말했다. “학교 다닐 때는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늘 말썽꾸러기였는데. 남편을 잘 만나서인지 지금은 나보다 더 잘 살거던요” 하면서 자꾸만 남을 비교하면서 그 여자는 몹시 속상에 하는 모습이었다. 이 세상 바가지 중에서 가장 무서운 바가지는 남과 비교하는 ‘비교 바가지’다. “저 집 남편은 돈을 잘 버는데 우리 남편은 왜 돈을 못벌지.” “저 집 남자는 회사 부장인데 우리 남편은 왜 말단 사원 밖에 못하지.” “저 집 남편은 부지런한데 우리 남편은 게을러.” “저 집은 50평 아파트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20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자나.” “저 집에는 자가용이 있는데 우리는 자가용도 없어.” “저 집은 잘 사는데 우리는 왜 못살지.” “저 집 남편은 회사 부장으로 승진 했는데 우리 남편은 지금도 계장이야.” 이러한 말을 하는 여자는 남편의 기(氣)를 죽일 뿐 아니라 달려가는 희망의 날개를 꺽고, 용기와 정력을 감퇴시켜 부부관계를 멀어지게 하여 결국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5년동안 이혼 문제로 상담한 여자분 중에서 70%가 남편이 무능하다는 문제였다는 것은 ‘비교 바가지’가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 지혜가 있는 사람과 지혜가 없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이와 관련하여 옛부터 전해오는 야담이 있다. 조선시대 임상옥이라는 가난한 보따리 장사꾼이 당대의 세력가인 박종옥 대감과의 만남으로 큰 갑부가 되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정경유착(政經癒着)이다. 처음 임상옥이가 박종옥 대감에게 큰절을 하면서 엎드려 있는데 박종옥 대감이 물었다. “하루에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임상옥이가 대답했다. “두 명입니다“ ”왜 그런가?“ ”대감에게 이로운 사람과 해로운 사람 두 사람 아니겠습니까?“ 임상옥은 박종옥 대감과의 이 대화에서 신임을 얻어 인연을 맺으면서 박종옥 대감은 임상옥에게 인삼판매 독점권을 주었다. 당시로서는 아주 대단한 특혜였다. 임상옥은 인삼 독점권으로 큰 돈을 벌어 갑부(甲富)가 되었다. 가난한 보따리 장사꾼이 임금의 외숙이며 세도가인 박종옥 대감과 친분을 쌓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임상옥은 안 먹고 안 쓰고 돈을 모아서 박종옥 대감의 잔치 때 부조금으로 몽땅 보낸 것이다.
금액이 얼마라는 기록은 없지만 상당한 액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 중에는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정이 묻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거북스럽고 여러모로 불편한 구석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다. 남을 편하게 해주는 첫째 자세는 얼굴에 정감이 묻어나고 입술엔 미소가 흐르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면 남을(우정) 믿어야 한다. 남을 믿으면 신뢰 받을 수 있다. 신뢰 받을 수 있고 또 남을 믿으려면 덕(德)을 갖추어야 한다. 이 큰 덕에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포함된다. 믿음 즉 신(信)이 으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믿음 즉 신(信)에는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남을 너무 믿어서는 안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는 일반적으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는 사람에게 거짓된 것을 말하는 것, 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해를 입힐 의도로 그렇게 하는 것이 관련되어 있다. 말로 하는 거짓말만 거짓말이 아니다. 거짓말은 행동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의 생활 자체가 거짓말일 수 있는 것이다. 잡지 깨어라!에 따르면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한다는 개념을 전달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카자브이다.(성서 잠 14:5)라고 한다. 또 다른 히브리어 동사 샤카르는 “거짓되게 대하거나 행동하다”를 의미하는데, 명사형은 “거짓말, 속이는 것, 거짓”으로 번역된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