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1부 제24회
다라국의 후예들
탁순국(진해)의 상단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잠을 잘 때도 효동은 잠이 오지 않아 후원 나무 밑에 앉아서 미파공주만 생각했다. 가끔 상단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풀기 없는 효동의 모습을 보고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저 고향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말할 뿐 미파공주의 얘기는 입에도 담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탁순국 상단의 대행수인 고방촌의 슬하에는 옥청(玉靑)이라는 외동딸이 있었다. 나이는 열 일곱인데 얼굴이 무척 예뻤다. 고방촌은 아들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더 늙기전에 데릴사위를 보아 이 상단의 대행수 자리를 넘겨줄 생각으로 마땅한 사위감을 고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외동딸이 좋아하는 남자도 없었다. 그날도 효동은 미파공주를 생각하면서 물건을 옮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효동의 걱정 따위를 알 까닭이 없는 잠자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나뭇가지 끝에 살며시 앉았다. 효동은 가만히 일어나서 잠자리에게로 다가갔다.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였다.
이제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거리였다. 손가락으로 집게를 만든 효동은조심스럽게 팔을 뻗었다. 잠자리는 거의 손 끝에 닿을 듯 하는데도 눈치도 채지 못하고 가을 바람에 날개를 흔들며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효동이 손을 내밀자 잠자리는 이미 날아가 버린 뒤였다.
“그것도 못잡느냐 뛰어난 검술이 아깝구나!”
효동이 뒤를 돌아보니 감해랑이었다. 옥청 아가씨가 찾으니 가보라고 했다. 효동은 옥청의 방으로 들어갔다. 옥청은 효동이 방에 들어서자 나비처럼 사뿐 일어나 효동을 맞았다. 효동은 옥청이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옥청은 아버지에게 잘 들었다고 하면서 임나국(대마도)에 두고 온 여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아마도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일가를 이루어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효동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르지 임라국(대마도)으로 돌아가서 미파공주를 찾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쯤 미파공주는 아기를 낳았을 것이다. 딸인지 아들인지는 모르나 아이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옥청은 효동의 칼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칭찬하면서 그런 분이라면 우리 상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더니 지금 탁순국은 매우 불안하다면서 사방에서 적들이 노리고 있다고 했다. 탁순국(진해)은 고차국(高嵯國 : 고성)과 수시로 전쟁을 하고 있다는 말도 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혼란스럽고 도적들도 들끊었다. 그래서 탁순국 상단에서는 무예가 출중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구나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하자면 무예가 출중한 호위무사는 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옥청은 효동에게 많이 도와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탁순국(卓純國)에서는 감해랑 장수와 싸워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도적들도 우리 상단을 해꼬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그런 감해랑 장수를 이긴 효동 이 자기의 상단에 들어와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