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1부 제23회
다라국의 후예들
하지만 지금쯤 미파공주는 자기가 죽은 줄 알고 몹시 비통해 할 것만 같아 그것이 가슴 아팠다.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더구나 곧 아이를 낳을 텐데 그것이 걱정이었다. 효동은 비단, 피륙. 곡물, 인삼, 약초 등 거래할 각종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넓은 마당에는 인부들이 짐을 이리저리 나르고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효동은 고방촌의 손을 잡고 제발 관아에 넘기지 말라 달라고 애원 했다. 그리고 자신을 상단의 호위무사로 쓰달라고 부탁했다. 호위무사라는 말에 고방촌은 무예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고방촌은 짐을 나르는 인부 한 사람을 부르더니 감해랑(甘海浪)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체격이 뚱뚱하고 키며 큰 눈이 부리부리한 감해랑이 나타났다. 고방촌은 효동을 가리키며
“이 자가 검을 할 줄 안다고 하니 검 솜씨를 보고 싶다. 네가 상대를 해 보거라”
하고 말했다. 감해랑이 대답을 하자 고방촌은 검투(劍鬪)를 지시했다. 일꾼들은 동작을 멈추고 넓은 마당 한 켠으로 물러나 무슨 일이 있는지 바라보았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체구가 건장한 감해랑(甘海郞)은 편곤을 손에 들었다. 고방촌이 검을 효동(孝童) 앞에 던지자 효동은 검(劍)을 냉큼 받아 쥐고 칼집에서 검을 쑥 뽑아 들었습니다. 칼의 섬광(閃光)이 햇살에 더욱 날카롭게 빛났다.
고방촌이 효동에게
“네 이름이 막동이라 했느냐?”
하고 묻자 효동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효동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이름을 막동이라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고방촌은 효동에게
“네가 이긴다면 오늘부터 우리 상단 호위 무사로 둘 것이지만 만약 진다면 수상한 자로 관아에 넘길 것이다.”
하면서 검투를 시작하라고 했다. 감해랑의 편곤이 얏! 하는 소리와 함께 효동을 향해 들어 왔다. 순간 효동은 몸을 옆으로 살짝 피했다. 이번에는 효동의 검이 서서히 감해랑 앞으로 향했다. 청룡등약세(靑龍謄躍勢)에서 춘강소운세(春江掃雲勢)로 전환했다. 효동은 감해랑이 왼쪽을 노리고 편곤을 날릴 심사임을 이미 간파한 터였다. 좌측을 방어하는 사이에 자편이 정수리를 날아들 것이었다. 필사의 공세였지만 편곤을 거두어 들일 때 짧은 순간이나마 허점이었다. 예상대로 편곤이 먹이를 본 뱀처럼 왼쪽 옆구리를 노리고 달려 들었다. 효동은 검을 내밀어 편곤을 간신히 막았다. 감해랑은 그 순간 의지하고 있던 손을 자편에서 편곤으로 바꾸어 들 찰나였다.
그러나 효동의 검이 그 보다 더 빨랐다. 미처 손을 바꾸기 전에 검끝이 걸린 편곤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고 효동의 검이 감해랑의 인중앞에 멈추어 섰다. 감해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효동을 쏘아 보았다. 검풍(劍風)이 일면서 효동의 검이 감해랑의 코앞에 닿았다. 고방촌은 칼 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하면서 효동에게 오늘부터 우리 상단의 한 가족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고방촌의 말에 효동은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 감사함을 표시했다.
이제 효동은 탁순국(진해) 상단에 있다가 상선이 임라국(대마도)으로 가는 날에는 그 배를 타고 가면 미파공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임라국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방촌은 자기 방으로 효동을 불러 탐라국 사람이 임라국까지 간 연유가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효동은 만일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탁순국의 미파공주와 도망친 사실이 밝혀지면 관아로 넘겨질 수도 있으니 그렇게 되면 자신은 탁순국 거타지왕에게 죽음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효동은 탁순국의 상단에 들어와서도 하루도 미파공주를 잊어 본적이 없었다. 자나 깨나 사랑하는 미파공주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