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제7의 왕국 3부 51회
第七의 王國
이 때 김치양이 앉은 대전 기둥에 어디선가 화살이 날라와 박혔다. 화살에는 꼬기꼬기 접은 종이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김치양은 종이 쪽지를 보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 김치양은 억울하게 백성들에게 누명을 씌우지 마라. 그대는 헌애왕후와 부부연을 맺고 왕권을 독점하여 조정 신하들을 수족(手足)처럼 마음대로 주무리고 있다. 뇌물을 바치는 자에게는 벼슬을 주고 그렇지 않는 자는 벼슬을 박탈하는 김치양의 행동이 너무나 가소롭기만 하다. 그러한 횡포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 두고 볼 것이니 죄 없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지금 문초하고 있는 사람은 범인이 아니지 즉시 석방하라. 그렇지 않으면 김치양의 목숨은 없어질 것임을 경고한다 -
김치양은 보고 난 서찰(書札)을 구겨 손에 움켜쥐고 노발대발 하며 큰 소리로
“지금 곧 군사를 풀어 대궐 밖을 샅샅이 뒤져 수상한 자를 체포하라 !”
하였다.
군사들은 곧바로 대궐 밖을 샅샅이 수색 했으나 사람의 그림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일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잡혀 온 유사충은 풀려났다. 이 일이 있은 후 김치양은 신변 보호를 위해 항상 대 여섯 명의 호위 장수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뱀소동이 있은 후 헌애왕후는 늘 공포에 떨었다. 그래서 호위무사를 두고 자신의 신변을 철저하게 보호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임신(姙娠)을 하였다. 그리고 김치양은 등용된 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벼슬이 우복야 겸 삼사사에 오르고 인사권을 장악하여 백관의 임명권을 장악하여 손아귀에 넣었다.
이렇게 되자 전국에서 벼슬을 원하는 자들이 뇌물을 가지고 우복야(벼슬) 김치양의 집으로 몰려 들었다. 김치양의 집은 매일 곡물을 실고 들어오는 달구지 행열로 북적거렸고 심지어는 비단을 실은 달구지도 있었다.
일곱 칸이나 되는 김치양의 집 곳간은 거둬들인 뇌물로 발 붙일 틈이 없었다. 김치양은 이렇게 거둬들인 뇌물로 3백여 칸이나 되는 집을 짓고 정원에 정자와 연못을 꾸며 밤낮으로 헌애왕후와 놀아났다. 그 날도 우복야(벼슬) 김치양은 대궐을 능가할 만큼 호화로운 저택의 대청 마루에서 주안상을 차려놓고 헌애왕후를 비롯하여 여러 측근들과 히히락락 거리고 있었다.
이 때 담장 밖에서는 집안을 유심히 살피는 두 사나이가 있었다. 언젠가 궁안의 헌애왕후 침실에서 김치양이 헌애왕후와 동침할 때 몰래 독사(뱀)를 풀어 놓고 간 그 첩자였다. 한참 취흥이 돌아가자 한 측근이 김치양에게 아냥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젠 이 나라 조정은 대감과 천추태후마마의 것이 옵니다”
이 말에 다른 측근이 슬쩍 말을 건냈다.
“암요. 그렇고 말구요... 하온데 그런 대감께서 사당이 없다니 어디 되겠사옵니까”
“이왕 말이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이옵니다만 사당을 지으시옵소서...”
“그러하옵니다. 사당을 지으십시오..”
그러자 김치양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꼭 있어야 할 것이 없구만.... 그럼 사당을 짓도록 하지..”
김치양의 말이 떨어지자 다음 날 사당(祠堂)을 짓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다.
김치양은 자신의 사당(祠堂)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였으며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높아졌다. 백성들은 두 사람만 모이면 쑥덕거렸다.
“나라에서 짓는 사당도 아니고 개인이 짓는 사당에 어째서 우리같은 백성들이 부역에 동원돼야 하는지 모르겠구만...”
“그러기 말여... 참말로 알다가도 모르겠구만...”
“힘 없는 백성은 하라면 해야지 어쩌겠나...”
“임금이 나이가 어려 모후(母后)가 정치를 하니 나라가 이 모양 이꼴이 되었잖은가 말여..”
“헌애왕후가 섭정을 하면 다행이지... 우복야(벼슬) 김치양이 조정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네... 벼슬도 뇌물만 주면 시켜준다니 참으로 기가 막일 노릇이 아닌가. ”
“이부(吏部) 벼슬은 천냥.. 병부(戶部) 벼슬은 구백 냥.. 호부(禮部) 벼슬은 칠백 냥.. 형부(兵부)벼슬은 팔백 냥이라고 하더구만..”
“그렇다면 예부(禮部) 벼슬과 공부(工部) 벼슬은 얼마인고 ?”
“그것도 칠 팔백 냥은 될테지..”
“세상이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도 해야지 이래가지고서는 살 길이 막막하이...”
“참으로 나라꼴이 말이 나이구만..”
김치양의 권력독점으로 조정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자 목종(穆宗)은 김치양을 내쫓기 위해 여러가지 방책을 강구했지만 헌애왕후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했다.
김치양의 독선과 전횡에 목종(穆宗)은 자고 나면 늘 김치양을 쫓아내기 위한 궁리에 몰두 했다. 그날도 왕은 몇몇 측근들을 불러놓고 김치양에 대한 의논을 하고 있었다.
“김치양의 횡포로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경들의의견을 듣고자 하오”
왕의 말에 한 신하가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