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작소설 - 천.지.인.명 제2부 열 번째 (10)
천天. 지地. 인人. 명 命
강변에서 모래를 가득히 한 자루씩 담은 만 명의 대군이 어깨에 모래 한 짐씩을 둘러 메고 폭풍우같이 남대문을 향하여 달려 올 때는 벌써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문 안과 밖의 백성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서 눈을 휘둥거리며 떨기만 했다.
“ 난리다. 난리야 ! 피난가자 피난.... ”
“ 벌써 남대문까지 쳐들어 왔단다 ! ”
“ 원 세상에 이럴수가....”
허둥거리는 장안은 먼지로 자욱했다. 오직 동대문과 동소문만이 열렸다. 조정의 신하들은 조복도 미처 입지 못하고 평복에 맨발로 망건도 쓰지 않은 머리에 감투만을 겨우 올려 놓고 달음질쳐서 대궐로 달려 왔다. 어영대장은 명령을 전하여 남문을 수비하라고 했으나 영문(營門)에는 군졸이라고는 파수꾼 몇 명 밖에 없었다. 장안의 피난민들은 남녀노소가 서로 손목을 붙잡고 울며 불며 동대문이 미어져라 도망을 하고 있었다.
이완(李完) 대장의 군사들은 남문성 밖에다 모랫성으로 층대를 쌓고 어렵지 않게 성을 넘어서 수문장을 붙잡아 결박하고 남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물밀 듯 몰려 들어 온 이완(李完) 대장 인솔하의 만 명의 군졸들은 바로 쏜살같이 황토마루를 넘어 거침없이 대궐로 쳐들어 갔다. 창백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만 있던 조정 대신들은 급하고 당황하여
“ 상감마마 ! 지금 훈련대장 이완이가 영문 군사를 죄다 몰아가지고 대궐문을 침범하고 있사옵니다 ”
하고 효종(孝宗) 대왕에게 아뢰었다. 효종 대왕은 어젯밤에 그렇게 하라고 시킨 일이라 걱정은 안되지만 그래도 이와 같은 지나친 장난에 다소 당황한 빛이 용안에 떠올랐다.
“ 벌써 궐문을 뚫고 선봉이 대궐에 들어 왔사옵니다 ”
하는 신하의 말에는 효종 대왕도 그만 용상에 털썩 주저 않았다. 신하들의 통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완(李完) 대장의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본 효종 대왕은 멀리 손을 들어 멈추기를 명하였다. 그리고 내심으로 장난이 너무 심하였다는 것을 뉘우쳤다. 효종 대왕은 훈련대장 이완(李完)을 불러 칭찬하면서 상(賞)을 내리고 군졸들에게도 노고를 치하하고 돌아가게 했다.
이러한 훈련을 함으로써 효종(孝宗) 대왕은 일찍이 겪은 심양(瀋陽)에서의 굴욕을 씻기 위하여 왕위에 오르자 성(城)을 개수하고 군비를 갖추어 비밀리에 북벌(北伐)을 도모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