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 천.지.인.명(天.地,人.命) 제1부 네 번째회 (4)

  • 등록 2017.02.25 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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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 천.지.인.명(天.地.人.命) 제1부 네 번째회 (4)

 

   천. . .

 

 

이런 일을 꿈에도 짐작할 까닭이 없는 머슴 강만수는 오랫동안 마누라와 헤어지는 것이 다소 섭섭하기는 했지만 이 나라의 도읍지인 화려하고 찬란한 한양(漢陽) 구경을 하게된 것이 어찌나 좋았던지, 마누라 옥매(玉梅)가 훌쭉훌쭉 우는 것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을 따라 길을 떠났다.

이성계(李成桂)가 나라를 세운 조선(朝鮮)의 도읍지 한양(漢陽) 길은 멀고도 멀었다.

 

며칠을 두고 끝없이 남쪽으로 뻗은 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는 동안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의 머리에는 과거(科擧)를 보는 것보다 우선 아버지의 분부대로 머슴 강만수를 강물에 빠뜨려 죽이는 문제가 매우 큰 걱정거리여서 종일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머슴 강만수는 눈에 보이는 산천 정경이 하나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어서 마음 속이 상쾌한 김에 종일 흥겨운 타령이 입에서 흘러 나왔다.

 

이윽고 안주(安州) 청천강(淸川江)변에 이르렀다.

강을 건너 안주(安州) 고을에 들어가서 주막을 정하더라도 해가 서산에 넘지 않을 터인데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풍치가 좋다는 핑계로 굳이 강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자고 우겨댔다.

아직 봄이라고는 하나, 밤에는 몸에 스며드는 찬바람을 참기 어려운 때였으나 정대감의 아들이 고집하는데는 머리가 영리한 강만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저녁 밤도 먹지 못하여 배가 고파 시장기가 들었으나 푸른 강물이 세차게 흐르는 언덕에서 하늘에 총총히 뜬 별들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지내는 것도 뜻 깊은 추억일 것 같아 강만수는 별로 불평을 하지 않고 참았다.

그러나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당나귀는 언덕 위 버드나무에 매어 놓고 책과 돈을 언덕 위에다 쌓아놓게 한 후 자기는 책과 돈이 있는 쪽에 머리를 두고 발을 물 흐르는 쪽으로 향하여 누운 뒤에 말했다.

너는 내 발 밑에 누워 자거라. 아예 다른 것으로 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말하자면 물 흐르는 방향과 같이 가로 누워 자라는 말이다 알겠느냐?”

 

대답을 한 머슴 강만수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이 무슨 깊은 곡절이 있는 듯해서 못이기는 척하며 상진의 방밑에 바싹 눕기는 하였으나 불안한 마음에 잠이 들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후에 강만수(姜萬洙)는 가만히 일어나서 상진(相眞)의 머리 위에 쌓여 있는 책과 돈꾸러미를 자기가 누워 자던 상진의 발 밑에 바싹 가깝게 놓고, 자기는 상진(相眞)의 머리맡에 올라가서 자는 척 하고 누워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코를 드러렁 드러렁 골며 자던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

.....”

 

 

큰 기지개를 켜는 척하면서 자기 발밑에 있는 것을 힘껏 걷어찼다.

첨벙........”

묵직한 물건이 강물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다시 조용해지기는 했으나 하늘에서 별이 내려다보고 까르르 웃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

부시시 눈을 뜨고 일어난 정대감의 아들 상진(相眞)은 한참동안 입만 딱 벌린 채 아무 말을 못했다. 분명히 있어야 책과 돈이 없어지고 마땅히 죽어 없어져야 할 머슴(하인) 강만수(姜萬洙)가 머리맡에서 코를 골며 태연히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보게, 강서방, 일어나게,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응?”

무슨 말씀입니까?”

잠꼬대 같은 머슴 강만수의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돈과 책 말일세. 그것이 온데간데 없단 말일세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머슴 강만수는 짐짓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간밤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귀중한 책과 돈을 언덕 위에 놓아두면 도둑을 맞을까 걱정되어 도련님 발밑에 갖다 놓았던 것이온데, 아마도 도련님이 잠결에 발로 그만 물 속에 차 넣은 것이 분명한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책과 돈이 없어질 리 없습니다

상진(相眞)은 생각할 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책이 없으면 과거(科擧)를 보기 전에 무엇으로 공부하며, 돈이 없으니 아직 수백 리 한양(漢陽) 길을 돈 없이 어찌 간단 말인가. 참으로 난감하고 땅을 치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머슴 강만수를 나무랄 수도 없어서 상진(相眞)은 당나귀를 타고 안주(安州) 읍내로 힘없이 들어갔다.

간밤에도 요기를 못하였으니, 배고픔을 참기 어려웠다. 상진(相眞)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주머니에 든 돈이 몇 푼 안되므로 머슴 강만수와 함께 아침 요기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책과 돈을 잃게 한 머슴 강만수을 죽이고 싶도록 미운 터에 밥을 사먹이기는 더욱 싫었다. 이 놈을 어떻게 해서라도 죽이기는 해야 하겠는데 좋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주막집이 건너다 보이는 골목에서 상진(相眞)은 당나귀를 멈췄다.

 

 

여보게 강서방, 내 지금 읍내에 살고 있는 친구를 잠시 만나고 올 터이니 자네는 이곳에서당나귀 고삐를 꼭 불들고 기다리되 두 눈을 꼭 감고 있게. 절대로 눈을 뜨서는 안되네

눈을 감고 있으라는 것은 선비된 처지에 혼자만 밥을 사먹는 것이 겸연쩍어서 그렇게 시킨 것이다.

. 그러합지요

 

<계속>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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