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역사소설 - 남이 장군 제9회 (마지막회)

  • 등록 2016.10.26 15: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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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역사소설 - 남이(南怡) 장군 제9<마지막회>

 

남이(南怡) 장군

 

 

 

남아이십미득국(男兒二十未得國) 후세유칭대장부(後世有稱大丈夫)... 이건 남자 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후세에 어찌 대장부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말이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여기서 대장부란 말은 남이를 뜻하는 것이옵니다. 남이는 남자 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어찌 대장부가 될 것인가 하는 뜻입니다. 분명히 반란의 뜻이 담긴 것이오니 죄를 물어시옵소서.”

이 시를 어디서 입수했는가?”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킬 때 출정한 유자광이 두만강에서 남이가 직접 읊는 시를 들었다고 하옵니다.”

의금부에 지시하여 남이를 하옥하고 그와 연루된 자를 모두 잡아들여 문초하도록 하라.”

갑자기 분노한 왕(세조: 수양대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명회는 의금부에 지시하여 즉시 남이를 하옥하고 그와 연루된 자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남이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졸지에 역모자로 전락하고 남이는 즉시 의금부에 잡혀서 문초를 받았다. 이때 증인으로 나온 유자광은

남이가 말하기를 이시애난을 평정하기 위해 두만강가에 이르자 새벽 하늘에서 혜성이 출현했는데 이는 신왕조가 나타날 징조로서 이시애난이 평정되면 적절한 때를 이용하여 거사(巨事)를 하겠다고 말했사옵니다.”

하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본래 유자광은 서자 출신으로 남이와 마찬가지로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을 세워 등용된 인물이었다. 유자광은 천성이 간사하고 계략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자는 남이를 비롯하여 민허, 강순, 조경치, 변영수, 변자의, 문효랑, 고복로, 박자하 등이었다. 남이의 측근인 민허는 이렇게 진술했다.

남이의 집에서 북방 야인들에게 대한 방어계획을 논의 할 때 요즘 같은 천변은 반드시 간신(奸臣)이 일어날 징조이니 자신이 먼저 당할까 두렵다고 말하며 그 간신(奸臣)은 유자광이 아니라 한명회입니다.”

그러자 남이 측근들에 대한 문초는 더욱 강해졌고, 이 과정에서 당시 남이와 함께 있던 겸사복장 문효랑이 역모를 시인했다. 문효랑은 여진족 출신 장수로서 남이와 함께 이시애난을 평정한 인물이었다. 문효랑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남이의 침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남이는 하늘의 변화를 기회로 간신들이 모반할 징조가 엿보임으로 자신과 함께 이들을 몰아내 나라에 은혜를 갚자는 제의를 했으며 그리고 이 거사에 강순도 뜻을 함께 하고 있으니 왕이 산릉에 갈 때 도중에 두목격인 한명회 등을 제거한 다음 영순군과 구성군을 몰아내고 자신이 임금이 되겠다고 했사옵니다.“

한명회는 문효랑의 진술로 남이로 하여금 역모를 시인하게 만들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마당에 아니라고 진실로 버티어 봐야 가흑한 문초만 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이는 역모를 모두 인정하고 강순 역시 시인했다. 이 역모 사건으로 남이 장군과 이징옥 장군을 비롯하여 민허, 강순, 조경치, 변영수, 변자의 문효랑, 고복로, 박자하 등 40여 명이 처형당했다. 충신이 한 사람의 간신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 THE END )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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