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1부 스물 두 번째회 (22)
봉이 김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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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듬해인 무더운 여름 오후였다. 등에 봇짐도 없이 황해도黃海道 어느 주막 옆을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었다. 봉이 김선달이었다. 김선달은 한양에서 열흘동안 놀다가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길을 걷다가 똥이 마려워 길 옆 참외 밭에 들어가 똥을 한 무더기 싸놓고 오는 터이라 배가 훌쭉했다.
원래 노자라고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 김선달이라 주머니에는 땡전 한푼 들어 있지 않았는데 주막 옆을 지나다보니 목이 컬컬하여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다.
“ 목은 말라 막걸리 생각은 나고 돈은 없으니 이걸 어쩐다? ”
김선달金先達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 한 점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혓바닥으로 군침을 삼키면서 막걸리 한 사발 얻어 마실 생각을 하다가 버드나무 그늘 밑으로 발걸음을 들어 놓았다.
“ 어험.. 좀 쉬었다 갑시다 ”
김선달은 일부러 헛기침을 하고는 큰 소리로 말을 건넸다.
“ 그러시오! ”
대여섯명의 사나이들 중에 한 사람이 대답을 하자 일제히 김선달은 바라보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 여름은 여름인 모양이구나. 나무 그늘 밑이 시원한 걸 보니.. 여기서 황해도 구월산까지 몇 리나 됩니까 ? ”
급기야 땡전 한 푼 가지고 있지 않는 김선달은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 구월산이라... 여기서 구월산을 찾다니.. 아직도 까마덕 하오.. ”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사나이가 대답을 했다.
“ 아직도 까마덕 하다면 백 리쯤 남았습니까 ? ”
“ 이백 리 하고도 팔십 리 남았소! ”
“ 으음. 이백 팔십 리라.. 꾀나 많이 남았구만.. 그냥 걷을 것이 아니라 축지법을 써야 하겠구만.... 고맙소이다 ”
김선달은 점잖게 그 사나이에게 답례를 했다. 그러자 조금전에 대답을 한 사나이가 말했다.
“ 방금 축지법이라 하였소? ”
“ 그렇습니다만... ”
“ 축지법縮地法은 도사들이 써는데....”
그 말에 다른 사나이들은 김선달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의관衣冠을 갖춰 입고 말소리며 행동거지가 의젓한 데가 있으며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모습이 아무리 보아도 보통 사람 같지가 않았다. 더구나 구월산까지 간다고 하였으니 혹시나 도사道士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표정이었다. 처음 말을 한 그 사나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실례지만 선비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
“ 한양 삼각산에서 오는 길이오 ”
“ 삼각산에서? 삼각산이라면 유명한 산인데.. 삼각산에서 구월산이라... ”
사나이는 이 나그네가 혹시 산속에 사는 도사道士가 아닌가 하고 물었다.
“ 삼각산과 구월산이라면 거리가 무려 사백 리나 되는데 이 더위에 그리도 급히 가실 일이 있으십니까? ”
“ 지금 구월산으로 스승님을 뵈러 가는 길이오. 도道를 닦고 있는 몸이라 이까짓 더위가 큰 문제가 될 리가 없지요. 축지법縮地法을 써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당도할 것이오. 내 이곳을 지나다 보니 지세地勢가 아주 좋아 나라의 큰 사람이 나올 곳인 것 같아 잠시 살펴보고 가려던 참이오 ”
봉이 김선달은 시침을 떼고 이렇게 말하자 모여 앉은 사나이들의 얼굴에서는 갑자기 놀란 빛으로 변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