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나를 살려준 남자 제6부 설흔 여섯 번째회 <36>
나를 살려준 남자
하지만 지금은 휴대폰이 꺼져 있어 통화할 수 없다고 했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를 해 봤지만 같은 말만 되풀이 되었다. 잠시 후 현관에서 벨 소리가 났다. 나는 문을 열었다. 김문석이였다. 밖에 나갔다 온 모양이었다. 그는 내 우울한 얼굴 표정을 보고 말했다.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네요.”
“요즘 나한테 좋지 못한 일이 생겼어..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집 가정교사를 그만 두었으면 해... ”
순간 김문석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그럼 저보고 지금 나가란 말입니까?”
“응.”
“도대체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단물은 다 빼먹고 이제 나가라니요...”
김문석의 격노한 목소리에 나는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단물을 다 빼먹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 보십시요. 그런가 안 그런가... 남편없이 사느라 혼자 외롭다면서 나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가 이제 와서는 나가달라니 그럼 나는 뭡니까? 고작 이 집에 와서 장난감 노릇이나 한 것 밖에 없자나요.. 섹스 파트로로 내가 노리개감이 되었단 말이자나요.”
“이봐 문석아!”
그는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김문석은 어디 안가고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요?”
“처음 문석이가 우리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올 때 평생 있자고 온건 아니자나.. 사실 나도 여섯달 정도만 있다가 보낼려고 했는데 막상 있다보니 내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벌써 여덟 달이나 되었어. 여덟 달이면 내가 봐줄만큼 봐 준거야.”
“참 많이 봐 주셨군요.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이왕 봐 주었으니까 딱 일년만 있도록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여덟 달 있었으니까 앞으로 넉달만 더 있도록 말입니다. 그동안 외로운 몸도 더 풀고요..”
이 말은 하고 싶은 섹스를 더 하라는 뜻이었다.
“정말 그렇게 해야 돼?”
“나는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약간 빈정거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 나는 갑자기 역겨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억지 비슷한 이런 태도는 없었기 때문이다. 순진한 시골 청년으로 믿고 있었던 내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보았구나 하는 자괴감마져 느껴졌다.
“만일 그렇게 안된다고 하면 어떡할거야?”
“안된다니요? 그렇게 해야죠. 그러니 앞으로 넉달만 더 있고 그 후엔 두말하지 않고 나가겠습니다.”
이거야 말로 야단났다고 나는 지레 짐작을 했다. 이런 사람을 더 이상 집에 두었다가는 또 무슨 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가정교사로 집으로 끌어들인 내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정말 내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구나 싶었다. 오로지 끓어오르는 성욕만 생각하다가 이런 처지에 놓였구나 싶었다. 나는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도대체?”
“원하는 게 있으면 들어 줍니까?”
“말이나 해봐 뭔지?”
“이집에서 강여사님과 함께 살면서 강여사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 공부도 가르쳐주긴 하지만 사실은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것보다 강여사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게 바로 내 마음이고 내 진실이고 내 의지입니다..”
김문석이 이렇게 나오자 나는 앗뿔사 이거 큰일났구나 싶었다. 내가 스스로 만든 함정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사람 됨됨을 모르고 가정교사로 끌어 들였다니.. 나는 황선엽에 이어 또 다시 김문석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늘 이렇게 속아서 살아가는 것이구나 싶었다.
나는 김문석 때문에 속이 몹시 상했다. 앞으로 넉 달을 더 김문석과 한 집에서 지낸다는 것도 별로 마음 내키지가 않았다. 혹여 남편이 곧 돌아 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때문이었다. 남편이 떠날 때 ‘어쩌면 일년 안에 귀국하게 될지도 모를거야’ 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날이 가면 갈수록 남편이 집에 올 때가 가까워진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이제는 김문석을 내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