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칼럼-나에게는 두 사람 뿐인 사회

  • 등록 2011.01.31 08: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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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처음 상면하는 자리에서 “하루에 대궐을 드나드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명회는 ”두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수양대군이 “어째서 두 사람이냐?” 하고 묻자 한명회는 ”나으리에게 득(得)이 되는 사람과 해(害)가 되는 사람 두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 당시 대궐에는 하루에 2,000 - 3,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문답으로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가신으로 삼았고, 한명회는 계유정란(癸酉靖難)의 주도적인 인물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후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신임을 얻어 영의정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세조 - 예종 - 성종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으니 대단한 인물이다. 성종의 셋째 부인 공혜왕후가 바로 한명희의 딸이기도 하다.

과거시험에 8번이나 낙방하고 수양대군의 천거로 경덕궁 궁지기에 들어간 한명회는 38살의 나이에 영의정까지 올랐으니 특출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출중한 인물이라도 좋은 운이 따르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그 당시 한명희와 대적할 만한 인물로는 남이 장군이 있었다.

남이(南怡)는 이시애난을 평정한 장수로 왕(세조)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남이가 이시애난을 평정하고 두만강을 바라보면서 지은 시를 문제 삼은 것이다. -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모두 없애고 / 두만강 물은 말에 먹여서 없애리라 / 남자 나이 20세가 되어 나라가 평정하지 못하면 /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를 것인가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唯稱大丈夫) - 라는 내용이었다. 이 시에서 문제가 된 것은 男兒二十未平國이었다.

男兒二十未平國을 男兒二十得平國으로 즉 미(未)를 득(得)로 고쳐놓고 ‘남자나이 20세가 되어 나라가 평온한 뒤에는 누구를 대장부라고 부를 것인가’라고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대장부를 임금으로 해석하면 나라가 평온한 뒤에는 누구를 임금으로 부를 것인가로 해석되어 반란의 음모가 엿보인다. 이 문제로 남이는 반역을 도모한 죄로 참형되었다.

유자광이 남이의 시(詩) 가운데 미(未)자를 득(得)자로 임의로 고쳐 영의정 한명희에게 반역죄로 이실직고를 하자 한명희는 왕(세조)에게 반란의 음모로 처형을 건의한 것이다. 동학난을 일으킨 전봉준이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저격한 안중근 역시 출중한 인물이다. 그러나 시운을 잘못 만나 빛을 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매일 빈둥거리며 놀다가 부동산투기나 주가조작 등으로 한꺼번에 수십억을 거머쥐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손발이 터지도록 장사를 해도 일년에 천만원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대기업 간부로 잘 살아가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여 가진 돈 다 털어먹고 빈털털이가 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운은 물처럼 늘 흐르기 때문에 운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이나 판. 검사가 비리에 연루돼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형살이 운에서 충파를 만나 길흉이 뒤바뀌기 때문이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운에서 발생한다. 길운일 때는 나에게 득(得)이 되는 사람을 만나 좋은 일이 발생하지만 흉운일 때는 나에게 해(害)가 되는 사람을 만나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본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사업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자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어떤 사람은 성공을 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를 할까? 하는 점이다. 사업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출발은 같았는데 결과는 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실패하는 사람은 여러가지 이유를 거론한다.

즉 사업 실패의 이유로 시기가 좋지 않아서, 돈이 모자라서, 업종 선택을 잘못해서... 여러가지가 열거된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일 뿐이다. 만일 돈을 많이 가진 사람만이 사업에 성공한다면 돈이 적은 중소기업이나 작은 가게는 다 망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업실패의 진정한 이유는 운(運)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업뿐만 아니라 결혼도 운이 좋아야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지만 운이 나쁘면 불행하게 살거나 헤어지고 만다. 운은 쉬지 않고 강물처럼 흐르면서 길운과 흉운이 60번씩 교대로 바뀐다. 이것이 비로 육십갑자(六十甲子)이다.

우리는 늘 많은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해득실(利害得失)만 따진다면 나에게 득(得)이 되는 사람과 해(害)가 되는 두 사람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 살 수 있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왜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많을까? 그것은 자신의 운로(運路)를 모르고 욕망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타고날 때부터 운로가 다른데 남이 성공하니 나도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의 운로를 알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권우상 기자 kg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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