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생은 마음으로 사는 것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생은 여건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좋은 여건에서 살면서 행복하고 그 반대로 나쁜 여건에서 살면 불행하다는 논리는 수긍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건이 좋으면 행복하다고 할 것이다. 가끔 ‘마음이 편해야 살지!’ 하는 말을 듣는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은 돈만 행복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돈 잘 버는 어느 탈렌트나 재벌그룹의 어느 간부처럼 여건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인생을 비관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반면에 여건이 열악하다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거의 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 물론 어느 정도는 여건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지만 여건이 나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인생을 임종의 순간을 위한 것이라고 정의하는 철학가가 있다. 임종의 순간을 맞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이 하는지 의문이다. 비록 여건은 열악하지만 임종을 아름답게 장식한 사람들이 많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도 알뜰히 모은 재산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회에 기부하고 죽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
칼럼 3년을 날지 못하는 새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사냥놀이와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 3년동안 미녀들의 치마폭에 둘러 싸여 조정에도 나오지 않았다. 충신들이 장왕에게 조정에 나와 올바른 정사를 해 줄 것을 날마다 상주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더구나 매일 신하들이 와서 조정에 나올 것은 상주하자 귀찮아 아예 조문(朝門)에 표찰을 써서 걸어 놓았다. 「앞으로 과인에게 상주하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칠 것이다」그러자 간(諫)하는 신하들의 발길이 끊어지자 장왕은 밤낯으로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잔치를 벌이고 풍악을 즐겼다. 오거(伍擧)라는 신하가 장왕의 술판에 나타났다. 장왕은 왼쪽에는 진(秦)나라에서 맞아온 후궁을 안고, 오른쪽에는 월(越)나라에서 온 후궁을 안고 술에 취한 채 희희낙락 하고 있었다. “경은 어찌하여 들어 왔는가? 조문에 걸린 글귀를 보지 못했는가?” “보았사옵니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어서 왔는가?” “신은 술을 마시거나 직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수수께끼를 들려 드리려고 왔는데 알아 맞춰 보시겠습니까?” “수수께끼라, 그것 참 재미있겠구나!” 오거는 말했다. 어느날
칼럼 세계 책의 날, 우리를 일깨우는 스승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1995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세계인의 독서증진을 위해 매년 4월 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 정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4월 23일로 정한 것은 에스파냐의 카탈루냐 지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 축일과 1616년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 바로 이 날인 데서 유래한다. 국내에서는 2015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아 유네스코가 지정한 올해 책의 도시 인천광역시와 청계천 일대 등 전국 각지에서 독서 진흥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교육이나 교양의 목적은 지식을 통해 견식을 기르고 행위를 통해 덕을 기르는 데에 있다. 교양 있는 사람이나 이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니 하는 것은 반드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직시하고 올바르게 아끼고 보호하며 증오할 것은 증오할 줄 아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독서에서 얻어진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 생활에서 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버려진 쓰레기처럼 쓸모없는 지식을 껴안고 동거하는 것과 같다.
칼럼 변화를 부르며 새 인생을 만들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태도를 갖고 있다. 태도(attitude)란 「우리가 사고(思考)를 처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적 여과정치」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일반인의 경우 매일 4만∼5만여 가지의 다양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서 판단했을 때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은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세상은 암울함과 파멸만이 존재하는 동굴속 같은 장소임에 틀림없다. 똑 같은 생각을 긍정적인 여과 장치로 걸러내는 사람에게 세상은 기회가 흘러 넘치는 밝고 모험이 가득한 장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쁜 태도와 좋은 태도는 어떤 것일까. 나쁜 태도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남을 탓하는 것이다. 좋은 태도는 실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쁜 태도는 변명을 하거나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좋은 태도는 결과를 창출한다. 나쁜 태도는 「가서 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좋은 태도는 「가서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쁜 태도는 인생을 참아야 하는 시련으로 받아 들인다. 좋은 태도는 인생을 즐겨야 하는 모험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나쁜 태도는 장미 넝쿨이 있을 때 가
칼럼 역사 왜곡 백제 지명 너무 많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 백제 지명에 왜곡된 이름이 너무 많다. 이는 삼한통일 이후 임의대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사록에 따르면 연산은 백제때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인데 신라때 황산(黃山)으로 고쳤고, 고려초기에 연산현으로 고쳤다. 이성(尼城)은 백제때 열야산군(熱也山郡)인데, 신라때 이산(尼山)으로 고쳤다. 태종때 석성(石城)과 합쳐서 이산성이라 일컫다가 다시 나누었다. 노산(魯山)은 노성(魯城)이라고도 한다. 부여는 백제때 소부리군(所夫里郡)인데, 사비(泗沘)라고도 한다. 성왕이 이곳에 와서 도읍하고 이름을 남부여라 하는데, 신라때 부여군으로 고쳤다. 반월(半月)은 여주(餘州)라고도 한다. 석성(石城)은 백제 때의 진악산현(珍惡山縣)인데, 신라때 석산(石山)으로 고쳤고, 고려 초기에 석성으로 고쳤다. 태종(1414)때 이산(尼山)과 합쳐서 이성(尼城)을 만들었더니, 후에 고다진(古多津)이 왕래하는 요충지라 해서 다시 나누어서 현을 만들었다. 비인(庇仁)에 성이 있다. 백제때의 비중현(比衆縣)이니, 신라때 비인으로 고쳤다. 남포(藍浦에) 성이 있다. 백제때의 사포현(寺浦縣)이니, 신라때 남포로 고쳤고 공양왕이 진(
칼럼 봄의 소중함은 겨울이 있기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람은 누구나 하루를 살면서 그 하루를 얼마나 참되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는 사람은 드물다. 하루 해가 넘어가면 하루를 살았다고 하는 것은 막연한 시간의 흐름에 자기를 던져버린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시간 속에 아름다운 언행(言行)을 다듬어 내는 것이 문제다. 조그만 선행을 베풀고서 최선의 일을 치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만족하는 병, 잘난 체 하는 병이다. <체병>이 큰 병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려면 언제나 자기 겸손이 앞서야 한다. 아무리 악한 도적이나 폭력배라도 겸손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주먹을 내밀 수가 없다. 우리는 항상 착한 마음으로 모든 대상에게 겸손한 손짓과 마음의 훈김을 보내야 한다. 도덕으로 쌓은 공덕이 있어야 그 삶의 질이 밝게 트인다. 탐욕에 사로잡혀 악습에 젖은 악행만을 일삼는다면 그 길은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 이르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지식과 판단이 흐린 사람이 마구 독선과 고집으로 온갖 일을 함부로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
칼럼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장자(莊子)가 산속을 거닐다가 나무들이 많이 베어진 곳을 발견하자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베어 나갔지만 한 그루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자가 그 연유를 묻자 벌목공들은 그 큰 나무는 규칙적으로 자라지 않아서 베어 보았자 사용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장자는 산에서 내려와 친구 집에 들렸다. 친구는 장자를 반갑게 맞아 주면서 대접을 하기 위해 마당에서 놀고 있는 거위를 잡으라고 하인에게 일렀다. 그러자 하인은 물었다. “가위가 세 마리 있는데 어떤 거위를 죽일까요?” 장자는 하인에게 물었다. “세 마리 다 우느냐?” “아닙니다. 두 마리는 우는데 한 마리는 울지 않습니다” “그럼 울지 않는 거위를 죽이거라”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죽어야 하는 생물이란 어떤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 많은 나무들 중에서 쓸모가 있는 나무는 모두가 베어졌고, 큰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 즉 쓸모가 있어 죽었다. 그러나 거위는 나무와는 반대로 쓸모가 없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쓸모가 있는 것」과 「쓸모가 없는 것」의 기준은 상황
칼럼 늙음의 미학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 문제가 하나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노인에게도 양극화가 되고 있는 모습이지만 연령의 관점에서 보면 동일하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의 나이테를 그으면서 늙어가게 된다. 늙는다는 것은 추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를 한 번 보라. 키가 작고 땅달막한 소나무와 수 백년 동안 풍상을 겪고 살아온 아람드리 소나무를 비교해 보면 어느 소나무가 아름다워 보일까? 아마 수백 년을 살아 온 소나무가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나무도 병충해에 말라 죽어 볼품이 없다면 누구도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세월의 늙음에는 어찌할 수 없다고 하지만 스스로 마음의 주름살이 쌓이지 않도록 푸르고 울창한 나무로 존재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이는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있다. 웨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은 어린 소년과 야구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가 되었다. 미국의 대학원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나 있는 교수의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
칼럼 역사드라마 왜곡, 무엇이 문제인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sbs 역사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출항하자 마자 암초에 부딪치면서 방영이 폐지된 모양이다. 문제가 된 핵심은 이렇다. (1) 중국 역사 드라마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등장 인물의 검(劍)과 의상 및 머리 스타일이다. (2) 퓨전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음식들 즉 중국 월병, 오리알이나 달걀을 삭힌 피단(송화단) 그리고 중국 술이 나온다. (3)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조선 왕실에서 중국의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은 드라마라고 해도 너무 엉터리다. 이런 것만 봐도 마치 중국에서 제작한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오늘날 한국 드라마는 비전과 철학이 없고, 희희낙락하는 흥미물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다. 드라마이든 소설이든 그것이 비록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창작된 픽션이라고 하지만 대중들에게 적지 않는 영향(파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한국 드라마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오락성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는 전연 보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는 곳곳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헤이나래'가 개그우먼 박나래의 수위 높은
칼럼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갈려는 태도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이 끝없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이 있다면 그것은 인격의 완성이요, 선(善)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생활에서는 행복이 무엇이며,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지 않으나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각자 나름대로 행복의 기준을 찾게 된다. 이는 자각의 능력이 없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어린이가 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양심의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김으로써 보다 원하는 삶을 터득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 해 있는 물질주의, 이기주의, 황금주의 등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급변하는 도시 사회와 산업화에 동반되는 물질생활의 변태적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는 가치관의 혼란과 전통 윤리 의식의 퇴조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탁한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자기의 위치와 역할을 알고 항상 남을 배려하며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칼럼 정부의 출산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오늘날 생명에 대한 위협과 공격을 정당화하는 데 자주 이용되고 있는 현상은 인구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 문제는 세계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양태로 생겨나고 있다. 부유한 선진국에서는 출산율의 심각한 저하나 폭락 현상이 일어나는 반면에 가난한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인구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낮은 경제와 사회 성장률 속에서, 특히 극도의 저개발 상태에서는 그러한 인구 증가율을 감당하기 어렵다. 과거 우리나라도 빈곤할 때 정부가 산아제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빈국을 탈출하는 2000년대 들어 온 우리나라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IMF 경제 위기와 같은 경제 문제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로 결혼을 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결혼을 하더라도 한 명의 자녀만을 출산하거나 자녀를 갖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낮아지게 되었다. 출산율의 저하는 미래의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출산장려금, 양육비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출산을 장려하지만 출산율의 증가는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2013년
칼럼 종교는 보험으로 생각하고 믿어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종교가 있는 것도이러한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천국 또는 지옥이 있다’거나 ‘인간이 죽으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등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천국이나 지옥 또는 환생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종교를 갖지 않는 것보다 갖는 것이 유리한 측면도 없다 않다. 천국이나 환생이 있는지를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면 사후에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환언하면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종교를 가지면 천국으로 가거나 환생하는 것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경제학의 기본원리가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제학의 기본원리에 의하면 미래의 불확실한 사고나 위험을 담보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자동차나 질병 등의 보험에 가입한다. 그러므로 사후의 불확실한 세계를 담보하기 위하여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험의 기본원리인 것이다. 천국이나 환생이 있는지 또는 지옥이 있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모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