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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 다라국의 후예들 제3부 제76회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76회

 

 

다라국의 후예들

 

 

서량이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 그는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작은 공간이라고 있으면 서량(徐亮)은 그림을 그렸다. 서량이 그림을 그릴 때는 영감이 떠 올랐다. 그래서 서량에게 필요한 것은 화신(畵神)의 힘 뿐이었다. 물질적인 것은 불쌍하고 필요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서량은 아침 해가 뜨면 늘 나무 꼬챙이로 마당에서 그림을 그렸다. 하늘에 달아 다니는 참새나 까치등 새나 기어 다니는 개와 같은 동물보다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나무들을 그렸다. 때로는 냇가 개 모래밭에 나가 모래 고챙이로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때 서량(徐亮)의 그림을 보고 잘 그린다고 동네 아이들이 서량에게 칭찬을 해 주었다. 칭찬을 받을 때마다 서량은 더욱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졌고 더 잘 그릴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그림에 노력해도 누구 한 사람 서량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서운세만 서량에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가끔 동네 사람들은 서량에게 웃음을 던지기도 했다. 가난한 집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곡식이라도 한 톨 더 건져 올리는 것이 좋지 돈도 안되는 그림을 그려서 무엇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량은 가난해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서량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서량이 열 살 때였다. 어느 날 서량(徐亮)은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는데 그때 법당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불상 앞에서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고 있었다. 서량도 어머니 옆에서 불상을 향해 절을 했다. 그러면서 그림을 잘 그리도록 머리에 영감을 불러 넣어 달라고 부처님께 소원 기도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도 그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날 집에 돌아 온 서량은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서량을 넓은 바닷가로 데리고 가더니 그림을 그리는 큰 붓을 하나 주시면서 네 마음대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서량은 부처님이 주신 붓으로 넓은 모래밭에 그림을 그렸는데 파도가 밀려 왔다가 밀려가는 모습을, 그리고 바다위를 날라 다니는 갈매기도 그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마치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부처님의 계시(啓示)는 가끔 일어났다. 그래서 부처님이 서량에게 영감을 불러 넣어 줄 때마다 서량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어디든지 그림을 그릴만한 공간이 있으면 그림을 그렸다. 소나무도 그리고 참나무도 그리고 가을이면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도 그렸다. 하지만 서량은 산수화를 자주 그렸다. 사시시철 푸른 소나무가 좋아서 였다. 소나무는 다라국 사람들의 기백이기도 했다. 봄이면 꽃도 그렸다. 진달래꽃, 동백꽃, 개나리꽃 등 무엇이든지 그렸다. 그러나 아직은 서툰 솜씨지만 동네 사람들은 어린이 치고는 잘 그렸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럴 때마다 서량은 더욱 용기를 내어 더 잘 그릴려고 노력했다.

 

서량(徐亮)이 열 두 살 때 동생 거성(巨星)은 일곱 살이었다. 거성은 그림에는 소질이 없고 늘 막대기를 가지고 놀면서 아이들과 장난으로 칼싸움을 하곤 했다. 그리고 서량이 열 네살이 되고 거성이 열 한살이 될 때에는 서량과 거성은 완전히 다를 길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때 거성은 앞으로 장군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면서 가끔 동네 아이들과 싸우면 늘 이기곤 했다.

아이들과 놀아도 늘 우두머리 노릇을 했다. 그런 거성의 행동에 서운세는 만족해 하였다. 서량은 동네 아이들과 싸우면 늘 얻어 맞았다. 여러번 싸운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럴 땐 동생 거성이가 와가 서량을 때린 아이를 혼내주곤 했다. 서운세도 화가이지만 가난하게 사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서량은 가난해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죄 많고 불쌍한 중생들을 위하여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며 극락의 길로 안내하였으나 사람들은 부처님을 외면하고 고통과 죽음만 안겨주다. 서량은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그대로 사는 것이 이 세상을 오직 바르게 살아가는 길임을 믿고 제 모든 것을 이곳에 바쳤다. 전쟁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기도 한다. 전쟁뿐 아니라 육신의 고통은 부처님을 외면한 데에 비롯된 것이란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의지하며 산다는 것이 서량의 생각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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