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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 다라국의 후예들 제3부 67회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67회

 

 

다라국의 후예들

 

 

누나의 의도를 짐작할 만큼 철이 든 동생은 분해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부친의 큰 재산을 누이가 모두 가져 갔다는 사실도 세상 사람들을 통해 들어서 알았지만 이런 매정하고 야속한 누이와는 더 이상 말도 하기 싫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집을 나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나가라고 하니 잘 됐군요.”

선뜻 나가준다는 말이 좋아서 누이는 동생의 약간 비꼬는 듯한 말은 탓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가거라. 이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잘 간직했다가 네가 크거든 주라고 하신 물건이다.”

갓과 두루마기, 미투리신, 그리고 백지 한 권이었다. 동생은 얄미운 누이 앞에서 모두 팽개치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지만 돌아가신 부친의 뜻을 받들어 역시 소중히 받아두어야 한다고 마음을 돌렸다. 누이 집을 나온 소년은 그날부터 밥 먹고 잠 잘 장소가 막연했다. 떠돌아다니며 아기머슴 노릇을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갓과 두루마기와 미투리신..이건 아마 나더러 천하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라는 뜻이 아닐까..그리고 종이는 글공부 하라는 뜻이고..”

이런 생각도 했지만 그런 팔자 좋은 유람을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소년은 한 두해 고생을 하고 15살이 되자, 점점 누이가 혼자 차지한 부친의 유산이 억울해졌다. 그래서 소년은 용기를 내어 관가에 전 벼슬아치가 가고 새로운 벼슬아치가 부임할 때마다 호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재판에는 당사자인 남매의 말을 듣고 당시에 동석했던 증인들의 말도 들었으나 부친의 유언이 사실임이 증명되자, 누이가 가진 재산을 다시 처분할 수는 없다는 판결뿐이었다. 다만 남매의 의리상 동생을 동정해서 인정상 호의를 베푸는 것이 좋으리라는 권고에 지나지 않았다. 법적 제재력이 없는 벼슬아치의 권고는 욕심 많은 누이에게는 언제나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같았다. 그래서 이 남매의 소송사건은 효과없는 재판으로 오래도록 지연되었고 시간만 한 달 두 달 할 일 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엔 유명한 재판관이 온다니까 또 그 남매 소송사건이 문제가 되겠군...”

이미 시들해진 사람들의 관심이었지만 도부렴이 하도 현명한 재판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데다가 나라에서 재판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순회재판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흥미도 새로워졌다. 특히 원고인 소년은 큰 기대를 가지고 호소했다. 소년이 호소한 재판은 마침 읍내에 장이 선 날 열렸다. 이 날 장구경 겸, 재판구경 겸, 사방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어서 가희촌 마을은 큰 혼란을 이루었다. 그 고을의 행정과 사법을 도맡아 보는 관아의 동헌 마당에서는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로 모여 들었다.

“아무리 재판으로 유명한 도부렴일지라도 이 재판은 역시 형우제공(兄友弟恭)이란 케케묵은 오륜(五倫)의 도덕강의 끝에 누이의 욕심을 회개시키고 고작 화해 권고에 그칠 것은 뻔하지..도부렴도 대정통관에 없는 법으로 다수릴 수는 없을 거야..”

“암. 그렇고 말고.. ”

그런 부정적인 비판으로 쑥덕거리는 방청객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혹시 몰라. 억울하게 재판에서 지는 일을 막기 위해 나라에서 순회재판을 한다고 하니 혹시 도부렴이 죽은 사람의 지나간 사건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서 망자의 영혼까지 탄복을 시킬런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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