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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생활 선(禪)과 믿음

 

 

 

 

칼럼

 

 

                                       생활 선(禪)과 믿음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찰나찰나에 우주의 진리 속에서 시공을 초월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우리의 생활 자체가 행선이자, 과학이고 진리이다. 그것은 바로 찰나찰나에 고정됨이 없이 시공을 넘어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했을 때, 꼭 집어서 「나」라고 할 것이 없다. 그냥 공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생활 선(禪)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그대로 선(禪)이요, 진리인 것이다. 이것을 알고 이것을 믿으면 먹고 자고 활동하는 것이 모두 다 선인 것이다. 내가 주인공! 하는 것은 모두가 공했다! 그래서 주인공! 이다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옳으니, 저것이 옳으니, 이것은 참선이고, 저것은 행선이라고 할 것 없이 주인공에게 일임하면서, 그대로 여여하면 참선도 되고 행선도 된다. 더 쉽게 말하면 일상 속에서 일하고 잠자고 식사하고 배설하면서 행선도 하고, 참선도 하는 것이다. 주인공을 「나」라고 고정할 것이 없으니 찰나찰나 한 전체가 공하여 돌아간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괴로운 일, 외로운 일, 고달픈 일, 즐거운 일 그 모두가 찰나찰나에 돌고 돌아서 내 속에서 나온 것이니까, 그게 더 할 나위 없는 생활 선(禪)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일 괴롭다고 울며 붙잡고, 좋다고 웃으며 놓지 않으려면 계속 돌아가는 맷돌에 계속 되넣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갈아져 나오는 것이 없는 이치와 같다. 나는 공(空)이다. 그러니까 내가 했다고 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내가 있음으로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찰나에도 고정된 것은 없다. 전체가 함께 돌아간다. 그러므로 슬프든, 괴롭든, 그것까지도 돌고 돌아가는 거기에 놓고 맡겨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맷돌에 콩이 갈려 나오듯이 업장도 소멸된다. 그것이 생활 선이고 와선이고 입선이고, 좌선인 것이다. 누구나 「나」라는 껍질을 믿지 말고, 진리를 믿으면 부처님의 속내도 알게 된다. 생활 선(禪)은 바로 그런 것이다. 한 사례를 보자. 어느 큰 회사의 공장장이 와서 ‘파업이 발생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을 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주인공이 있잖아요!’ 하고 대답을 하면 어떨까? 주인공이란 꼭 집어서 「나」라고 할 수 없는 그 체가 없는 마음 전체이기에 수만 명(종업원)이라도 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주인공’ 할 때는 바로 우주 전체의 중심이 된다. 즉 전체와 바로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 후에 이 회사의 파업은 해결되고 실적도 오히려 늘어나게 됐다.

 

 

 

우리 모두는 공심으로 공생공영하고 공식하는 공체로서 현재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흔히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하는 식으로 따로 따로 돌아가는 줄로 알 뿐 아니라,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갈라 놓는다. 좌파다 우파다, 기독교다 불교다, 카톨릭이다 이스람교다, 하고 편가르기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폭을 좀 더 넓혀서 너와 내가 함께 같이 돌아가고 좀 더 넓혀서 우주 전체가 같이 돌아가게 한다면 우주 전체가 인간 마음의 근본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근본이 결부되어 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이것을 믿고 마음 공부를 해 나가는 사람이 앉은 자리가 참선일 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런 생활이라면 그렇게 즐겁고, 좋을 수가 없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아 부처님! 생명이 내 생명이고, 부처 마음이 내 마음이고, 그 몸이 내 몸이니 거룩함을 알게 되고, 부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당신이 가슴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행하면서 참나를 발견해야 한다. 각자가 「나」라고 고집하는 것은 다 생명의 근본에 나(出)고, 들(入)고 하는 것이니까 내가 한다 네가 한다는 그 생각을 다 맡기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 가짜의 나가 아닌 근본의 나를 믿어야 한다. 믿어야 놓을 수 있다. 믿지 않으면 어떻게 거기에다 믿을 수 있겠는가. 「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다 받아 들이다가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은 자리 없으니」 달마대사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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